만다라를 그리면서 / 문윤정
금색 커튼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티베트 스님들이 모래 만다라를 그리고 있다. 모래가 담긴 긴 깔대기를 막대기로 톡톡 쳐가면서 밑그림에 색을 입힌다. 집중하지 않으면 그림이 흐트러질 것 같다. 집중이 곧 명상이기도 하다. 만다라를 그리는 것도 수행의 하나이다. 지켜보고 있는 나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티베트 사찰에서 특별예식으로 보름 동안 모래 만다라 그리는 의식을 공개했다. 만다라를 그리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사람들은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지켜보았다. 신성함과 엄숙함이 깃든 예식에 참여하니 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유럽여행 중 미술관에서 본 수많은 성화(聖畫)가 생각난다. 성화를 감상하다 보면 화가의 영성이 느껴진다. 성화를 그리기 위해 오랜 시간 묵상했을 것이며, 묵상을 통해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예수를 그릴 때면 예수의 마음으로, 마리아를 그릴 때는 마리아의 마음이 되지 않는다면 신비롭고 신성한 느낌이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만다라 그리기는 사람의 일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만다라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밑그림은 설계도와 같은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우리는 엄마의 태에 들기 전부터 이미 자신이 이 세상에 와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온다고 한다. 자궁에 들기 전부터 인생의 설계도를 가지고 온다고 하니, 밑그림을 그려서 이 세상에 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운명은 내가 만든 것인가? 밑그림에 따라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다양한 색으로 색을 칠하듯, 자신의 삶에 색을 입힌다. 선사들은 어떤 삶이든 그것은 한송이 꽃에 비유될 수 있다고 했다. 꽃도 꽃나름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꽃은 생명이며, 생명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다라 꽃이다.
칼 융의 만다라는 유명하다. 프로이드와 결별한 후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던 칼 융은 아침마다 만다라를 그렸다. 만다라가 완전한 자아,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표현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만다라의 우주적이고도 영적인 의미를 탐구했다. 칼 융이 직접 그린 만다라 책 《레드북》을 보았다. 칼 융의 만다라는 심오하여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내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고, 만다라를 통해 영적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다. 칼 융의 책에서 찍어둔 만다라 그림 사진을 옆에 두고 그려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상징과 의미도 모르면서 따라 그린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만다라 컬러링 책을 구입하여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식탁에 앉아 만다라 책을 펴놓고 색칠했다. 어느 날은 촛불을 켜놓고, 어느 날은 향을 피워놓고 그리기도 했다. 나만의 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만다라를 색칠하는데 흠뻑 빠졌다. 때때로 새벽을 넘기기도 했다. 내가 직접 도안을 그리지 않았으니 내 마음을 상징하는 장치는 없다. 그냥 색칠하는 수준이지만 들뜨고 산만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만다라 그림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삶에도 균형이 이루어져야 함을 배운다. 밝음과 어두움, 선과 악, 풍요와 결핍, 남자와 여자 등 상반된 것들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세상살이에서도 균형감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티베트 사찰에서 행해지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만다라가 완성되자마자 손가락으로 그림을 망가뜨렸다. 나중엔 발로써 그림을 다 뭉개고 말았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모래를 빗자루로 쓸어내고 나서는 밑그림까지 깨끗하게 지웠다. 그리고는 물로 원형 나무판을 씻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무(無), 무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숨탄 것은 모두 멸이 있는 것. 어떤 삶이든지 죽음과 동시에 완성된 삶은 허물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세상에 왔다가 간 흔적이 깨끗하게 지워진다. 나의 삶도 언젠가는 저렇게 말끔하게 지워진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올라온다. 무상함을 뼈에 새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다라 컬러링 책의 앞부분은 단순한 문양으로 되어 있지만, 뒤로 갈수록 복잡하다.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진 사람이라면 복잡한 문양을 색칠하다 보면 몰입하게 된다. 몰입도 마음치유에 도움이 된다. 때론 복잡한 도안을 보고 있으면 복잡한 삶을 보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진다. 도안대로 그리지 않고 내 멋대로 단순하게 칠하기도 했다.
만다라 명상을 하면 단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된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인생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곁가지를 쳐내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 현자들에게 배웠다. 감정과 생각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인간관계와 삶의 방식도 단순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소유가 인생의 본령인 것처럼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겐 소유욕을 낮추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만다라를 내포한 상징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산책길에 나뭇잎과 돌멩이를 모아서 만다라를 그렸다. 돌멩이를 중심으로 분홍빛 자귀나무꽃을 둥글게 놓고, 그다음엔 벚나무 잎사귀를 놓는다. 좀더 커다란 원형의 만다라를 만들고 싶어 자귀나무 잎사귀를 한 바퀴 더 돌린다. 만다라가 완성되면 잠시 기쁨을 느끼다가 그대로 두고 떠난다. 누군가의 발걸음에 의해 곧 망가지게 될 만다라. 난 짧은 순간 우주의 시간 속으로 몰입할 수 있었고, 즐거움으로 잠시 나를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