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주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종일 분주한 삶을 살다가, 자녀들을 재우고 나니 여력이 생깁니다. 뒤돌면 해야하는 집안일들이 있지만, 눈을 감습니다. 주님께 눈을 뜹니다. 주님, 주님을 사랑하고싶은데 종일 저는 주님이 아닌 것으로 가득합니다. 부끄럽고 비참하지만, 이 모습 이대로 주님께 나옵니다. 욥기를 통해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가길 기도합니다.
@말씀주해: (조목사님 주해 읽음)
욥은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영적인 고통의 삼중고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영적인 고통의 삼중고였다.
1) 육체적 고통: 그의 머리는 가시면류관으로 피를 흘리고(마 27:29), 그의 몸은 채찍에 맞아 갈기갈기 찢기시고(마 27:26)
2) 더 가혹한 정신적 고통: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어 경멸하였고(막 14:65),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하며 욕하였다(막 15:32). 군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자색 옷을 입혔다가 벗기면서 그를 희롱하였다(막 15:17-18). 그가 사랑했고 그를 따랐던 제자들도 다 도망하였다(막 14:50).
3) 하나님께 버림받는 영적 고통: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빌닷의 발언에 대해 욥은 또 괴로워한다. 세 친구들은 욥에 대해 지지와 공감하기 보다는 정죄하며, 그들은 욥보다 낫고, 욥은 죄의 결과로 심판이 온 것이라고 한다. 욥은 그들의 말로 모욕감을 느끼고 학대받았다고 여긴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욥이다. 그는 구원자되신 하나님을 찾는다. 그런 고통 속에서 계속 하나님을 찾는 일이, 일반적인 사람들은 가능할까? 의인인 욥도 그랬고, 일제시대 때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문을 참았던 신앙인들 중에서도 너무 심한 고초에 결국 하나님을 배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을 두고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작은 고통에도, 작은 아픔에도 엄살부리는 내가, 욥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는 있을까?
-욥은 친구들에 대한 기대를 접어, 그들은 본인에게 고통을 줄 궁리만 한다고 여겼다. 칠 구실만 찾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실 심판을 두려워하라고 한다.
-예수님 또한 욥과 같은 고통을 겪었다. 조목사님이 잘 정리해주신 것처럼 3가지의 큰 고통 안에 있었고, 가장 큰 고통인 하나님과의 분리를 겪고,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결국 끝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지금이야 결론을 나는 알지만, 하나님이 왜 그러시는지도.. 하지만, 알고도 겪을 수 있는 고통일까? 예수님을 아셨지만, 그래서 끝내 잔을 마시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셨지만, 끝내 잔을 마셨다. 고통의 잔, 하나님과의 분리의 잔, 온갖 죄악의 잔을.. 내가 진 죄도 내가 한개도 책임지려하지 않고 변명하는 나인데, 내가 짓지도 않은 죄와 억울함을 어찌 감당할 수가 있지? 신이, 인간으로 와서, 인간의 온갖 고통을 경험하시면서 공감하신다.
[welove 공감하시네]
혼자서만 세상을 사는 듯이
주가 멀어보이기만 할 때
우리는 바라보야 하네
우리게 오셨던 그 주님을
주님이 우리의 아픈 맘을 아시네
가까이서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시네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던 그 주님이
우리의 모든 상황에 공감하시네
@나의묵상 및 기도: 욥이 고통을 다 알수는 없지만, 분명 그는 육체적-정신적-영적인 3중의 고통을 동시에 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 안에 있는 고통이긴하나, 육을 입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예수님의 고난을 예표하는, 어찌보면 억울한 고통일 수 있으나 그는 같은 고통 중에 있고, 겪기 힘들 뿐만 아니라, 참을 수가 없는 고통인 것이다.
고통 속에 있을 때, 누군가 내 힘듦과 상처를 몰라줄 때, ‘주님도 몰라주시겠지’ 라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목사님들 설교나 찬양 가사에도, 주님은 다 체휼하신다고 하시고 공감해주신다고 하셨지만 마음으로 느끼지 않고 동의가 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나는 참 많이 감정적인 F유형이라 그런지, 느낌을 너무 중요시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일을 그르칠 때도 많고..
그런데, 나의 어떤 느낌이나 감정보다, 말씀에서 말씀해주신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아들로서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순종하신 것. 아버지의 뜻을 너무 잘알아서,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어 피조물과 똑같이 살고 경험하고, 모든 피조물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아픔과 고통까지 겪으면서까지 동일해야하셨던 이유. 우스갯소리로 ‘출산하고 육아도 안했으면..’ 라고 말할때, 더 심한 십자가형의 죽음을 겪으셨고, 하나님과 끝내 분리되는 고통까지..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그는 끝까지 공감해주실 수 있는 것이다.
주님, 저는 아직도 미숙하여 계속 주님을 알아가는 중입니다만, 그래서 그동안 오해도 많고 억울함도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남아있고요.. 그런데 주님은 인격적이셔서 한개도 억지로 알게 안하십니다. 오늘도 손톱의 때만큼 주님을 알아간다면, 배워간다면, 교제함으로 생명에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하십니다. 말도 많고 감정적인 저를, 실수도 매일 많은 저를, 늘 변명 늘어놓고 투덜대는 저를, 공감하시며, 예수님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계시고, 아버지 되시며, 창조주 되시니 감사합니다. 가수 박진영이 모 인터뷰에서, 이젠 어디에도 ‘하나님 아버지’를 제외하고 자기를 설명할 수가 없다고, 그런데 방송에선 그것 딱 하나만 말을 못하게 한다고.. 그런데 자기는 그것 딱 하나가 전부라고 했습니다. 저도, 제 삶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어떤 것을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10년만에 만난 이전 교회 후배와 대화하면서, 그간의 10년간의 제 삶을 주님 빼고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주님을 찾고, 회복할 수 있어서, 주님이 생명되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