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우리의 인생
-해운대-
박찬란
생활의 리듬을 잃어버리고 무엇인가 뚜렷한 이유없이 삶이 무료할 때는 동해 푸른 바다가 충전의 장소로 제 격이지만, 여건상 그럴 수 없어 집 가까운 영화관을 찾을 때가 종종 있다. 오늘도 그런 이유로 영화관을 찾았다.
한 편의 잘된 영화는 뭉클한 카타르시스를 일으켜 침울하던 마음바다에 다시 해가 떠오른다. 불볕더위를 피해 피서 삼아 가족과 함께 “해운대”를 상영했다.
여름의 날씨가 키다리 칸나처럼 붉게 작열한다. 그 절정인 계절, 휴가를 맞아 부산 해운대에는 물 반 사람 반들이 해수욕장을 찾아 신나는 물개처럼 즐거운 비명에 한가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피서철을 맞아 전국민이 해운대에 모인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산시에서는 국제적인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그야말로 성대한 잔치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대마도에서 발생한 강진, “메가 쓰나미”가 잠시 후면 해운대를 상륙할 것을 예고하는 해상탐지기 시계바늘이 심상치 않게 빠른 속도로 검색된다. 지질학자 박중훈은 매우 중대하고 시급한 사안이기에 시장을 찾아가 현 한반도 강진발생을 설명하고 대책을 세우기를 주문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라 치부하고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무시해 버린다. 이 일에 사명감과 보람을 느낀 박사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갈등을 초래하게 되어 결국 이별을 낳아, 딸의 탄생조차 모르고 일에 빠져 살았다.
바다가 삶이고 밥이고 희망인 어민들은 오늘도 생계를 위해 바다로 출항한다. 폭풍이 몰려올 것을 알면서도 선주의 채근에 떠밀려 바다로 나가지만, 거대한 폭풍 앞에 내 이웃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삶이 전쟁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하나라도 관광객들에게 더 팔기 위해 어업상인들의 힘겨루기와 이기주의는 불신의 씨앗이 되었다. 약육강식의 삶의 현장이 슬프게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생존이 이처럼 치열한지 영화를 통해서 더욱 피부로 느꼈다.삶이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바다는 우리의 인생이라면, 대륙은 목표로 하는 우리의 꿈이다. 특히 어민에게는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우리의 양식이 그곳에 있을 때는 부모처럼 고마운 대상이지만, 성난 파도를 만날 때면 악의 화신도 그것보다 무섭지 않다. 바다는 두 개의 얼굴이 있음을 어민들은 잘 안다. 그래서 바다가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그 성난 파도에서 이웃주민을 잃고 돌아온 사람은 삶도 바다만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생명을 가진 자의 영원한 비애는 물질만능을 채우려는 탐(貪).진(嗔).치(癡)에서 비롯되는 삶의 쇠사슬 때문이다.그것을 채우고자 욕망의 밥그릇 싸움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바다를 끼고 사는 해안 도시에는 그것이 유독 심한 듯했다. 그것은 죽음과 삶의 경계가 분명한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의 작은 아버지는 그 지방 유지이다. 돈도 많고 권세도 있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마다 주인공은 못 마땅하다. 작은아버지이지만 원수보듯 하며 살아간다. 가장 미워하는 이유는 폭풍이 몰려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바다로 어업을 나가라고 채근했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를 잃은 가진 자의 탐욕이 싫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잃고 힘들게 마을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당하며 행상을 해야 먹고살 수밖에 없는 그녀의 처지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 괴롭고 슬픈 일이다. 그래서 매일 화풀이로 싸움질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던 메가 쓰나미가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상륙했다. 집채만한 큰 파도가 해안 일대를 눈 깜짝할 사이에 물바다로 만들어 놓았다. 아비규환이다. 마치 상어가 큰 입을 벌리고 사람을 잡아먹고자 하는 형국이다. 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개미떼처럼 해안에서 멀리 높은 곳으로 아우성치며 뛰어보지만, 어디를 가든지 이미 도시 전체가 물위에 뜬 나뭇잎 같다.
해수욕장 사람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높은 데를 향하여 무작정 뛰었다. 시장 상가는 이미 쑥대밭이 되었다. 주택과 아파트는 장난감처럼 부서졌다.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가족과 사랑하는 여인을 챙기느라 아우성이다.
도시 전체가 물바다에서 물귀신이 되기 직전,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은 순한 양이 되었다. 성차별은 일하는 가정에서 부부에게 제일 큰 갈등 요인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는 언제그랬냐듯이 아이의 생사여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미 조건없는 용서가 이루어졌다.
구두 한 켤레가 없어 입사면접을 갈 수 없다던 아침, 아들이 한 소리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 어머니는 마을 주민 모두가 관광을 가기로 한 차에 오르지 않는다. 그 값을 아껴 시장으로 달려가 아들구두를 산 어머니의 구두 한 짝이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물에 구슬프게 떠내려 간다. 그토록 평생 미워하던 작은아버지가 전신주에 매달린 조카를 건지고, 등을 두드려주며 자신은 도시 전체가 이미 물바다로 감전된 강물 위에 버들잎처럼 손을 흔들며 웃으며 떠내려간다. 그제서야 남자 주인공은 작은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뼈저리게 느끼고 진돗개처럼 컹컹 짖어대며 울부짖는다. 가족은 이처럼 자신이 어려울 때 가장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사는 동안에는 개인의 아집과 이기주의에 빠져 분쟁의 골만 깊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현대인의 사는 모습을 거울 비추듯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비로서 혈육의 진한 사랑을 느끼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다. 먹고사는 게 참으로 슬픈 운명처럼 느껴진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이념과 사상의 차이로 평생 갈등하며 충돌하며 괴롭게 사는 것이다. 돌아보면 국민 모두가 한 가족의 확장인데도 말이다. 나만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가치관이 가장 큰 문제이다.
노인과 아이들만 구조되고 모두 쓰나미 앞에 목숨을 잃으며 사랑을 느끼지만, 이미 소중한 사람이 없는 허허로운 공간이다. 우리는 가족의 사랑을 잃고서야 비로소 가족애를 느끼는 참으로 우둔한 사람들이라 하겠다.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우는 사람들이 많다. 잘난 사람은 더 가지려 몸부림치고 그릇용량이 적은 사람은 모자라는 사고로 한 세상 살기도 어려운데 강자에게 선택권마저 강탈 당하니 분하고 억울하기는 이를 데 없다. 세상 살기는 모두가 힘들지만, 천재나 바보들이 한 세상 살기가 더욱 어렵다 하겠다. 그것은 자아와 세계의 격차와 차별이 유난히 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으로 이기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와 다른 타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모든 세상이치를 나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세상 갈등과 전쟁은 피하기 어려운 숙명 같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모두 이해될 일을 나 중심으로 우주의 수레바퀴를 돌리려는 그 가치관으로 인해 고해로 짧은 시간 동안 진정한 사랑 한 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는 인생이 의외로 많다.
세상일로 힘들고 겹겹이 쌓인 고민이 많은 사람에게 꼭 이 영화를 권장하고 싶다.
사는 것 별 것 아니다. 일 욕심만 조금 줄이면 육신이 편할 것이고, 마음을 하루하루 비우는 연습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작은 것 하나라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오히려 사랑이 충만해져 오는 작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 하겠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근원적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살 때가 종종 있다.
눈앞에 보이는 실체는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마음이 변할 때마다 사물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물질만능을 쫓아 가려는 방편의 우매함을 꼬집는 화두가 주제이지 않나 싶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 가장 소중한 것들을 평상심으로 바라볼 수 없는 슬픈 현실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 화두를 가지고 이 영화가 제작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앞으로 어디에 목적을 두고 살것인지 영화관을 나올 때는 그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으니 한 번쯤 시간 내서 상영한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강하게 믿는다.
우리 삶의 평가는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아름답고 행복한 일을 많이함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사뭇 다르다. 개관사정은 사랑과 봉사의 다다익선의 결과이다. 죽음을 보면 그 사람의 생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보인다. 또한 죽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문 밖에서 항시 상주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죽음과 쓰나미는 어느 한순간에 나를 삼키는 사자이다. 아무리 큰 삶의 고통도 죽는 다고 생각하면 저 하늘의 구름 같이 허허로운 것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바다는 우리의 인생이다. 한순간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한창 밀물이 밀려들 때는 바닷물이 곧 대륙을 집어삼킬 것 같지만 결국 대륙의 기슭을 핥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죽을 만큼 크게 느껴지는 고민도 이와 같다. 또한 한창 썰물이 빠져나갈 때는 바다가 곧 다 마를 것 같아도, 바다의 수위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선에서 물의 흐름은 멈추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으로 불타오를 때는 거센 태풍에 금방이라도 침몰되어 버릴 것 같지만, 고작 대륙의 기슭을 강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연은 이처럼 태연자약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이 쉼없이 흔들리는 파도로 사니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욕심을 버려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나의 용량만큼 평상심을 갖고 살 수 있다. 욕심부리다 주어진 밥그릇도 제대로 못 찾아먹고 억울하게 갈 수 있다. 어젯밤 사이에 집채만큼 큰 바다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듯이 평온하다. 우리가 무얼 먹고 마실 것도 시간이 지나면 채워주는 세상진리를 좀더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관조하며 살 일이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운 바다가 생각날 때면 찾아가도 바다도 늘 그 자리에서 출렁이면 위로와 무심을 준다. 그것이 때로는 잔잔한 힘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삶의 바다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다. 지금 이시간 함께 보낼 수 있는 가족만으로도 감사와 행복을 느껴야 한다. 가족도 시간이 지나면 뿔뿔이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삶의 진정한 소중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가족애를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상영했으니 느낌도 모두 다르리라.
한 편의 메시지 깊은 영화 관람으로 인해 가족애를 재충전 할 수 있었던 한여름 밤 시간은 짧지만 고맙기만 하다. 행복한 하루였다.
첫댓글 바다와 인생 참으로 섬세하게 그리셨습니다. 푸른 바다위로 둥둥 떠있는 갈매기처럼 날아보는 상상도 해봅니다.. 저는 바다로 여행하신 줄알았는데 영화를 보며 아름답게 사색을 하셨군요, 어젯밤 사이에 집채만큼 큰 바다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듯이 평온하다. 우리가 무얼 먹고 마실 것도 시간이 지나면 채워주는 세상진리를 좀더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관조하며 살 일이다. 감상 잘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을 한 번도 뵙지 못했는데 쪽지 받고 신뢰감이 드는 기운을 느껴서 글을 올렸습니다. 늘 푸른솔을 위해 애쓰시는 그마음이 참 곱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사람이 되소서!
오랫만에 선생님 글을 대합니다 영화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갑니다
향나무님 참 오랜만 입니다. 더우신데 잘 지내시는지요? 반갑습니다. 선선한 계절에 만나요? ㅎㅎㅎ
평상심으로..용량만큼...배우고 갑니다.
랑랑님 반가워요? 깨달음과 행복은 각자의 몫입니다. 늘 건강 하세요. ^^*
^^..저도 일전에 같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단순하게 영화로만 보았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많이 배우고 갑니다..
박재명 선생님! 같은 성이셔서 그런지 더욱 호감이 가네요. 보셨군요. 전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살아간다는 것이 슬픔을 먹고 사는 듯하여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 하였습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 아귀다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 영화장면이 우리 서민의 삶이 밥그릇 싸움이 굉장한 슬픔으로 다가오데요. 애정어린 댓글이 많은 힘이 됩니다. 좋은 날 되세요. ^^*
저도 그 영화 보고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선생님
상냥한 이미지가 각인된 선생님 댓글 감사하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