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기념공원은 고흥과 보성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넓게 차지하고 있다. 가게들이 잘 되는 듯하다가도 또 폐허처럼 조용하더니 얼마 전 지나다보니 간판도 붙고 차들이 여럿 서 있었다. 쏟아지는 소나기 사이에 차를 두고 뛰어 건물 처마로 들어간다. 어디가 식당인지 잘 모르겟다. 안미라가 직접 가꾼 채소부페식당으로 쭈볏거리며 들어간다. 사람들이 많다. 만원을 내고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소주도 보이지만 운전 때문에 참는다. 제육볶음을 가져다가 여러 쌈채소에 먹으니 맛있다. 식혜도 먹고 나오니 빗줄기는 더 세어졌다. ㄷ자 건물을 돌아 차로 가는데 한참 빗줄기 구경을 한다. 물흐르는 땅을 달려 차 시동을 건다. 옆 서재맆 기념관 으로 가니 하늘은 어느새 파래졌고 흰구름도 여유롭다. 송재사까지 현판들을 보며 들어간다. 송재 서선생의 초상화는 유리에 반사되어 잘 찍히지 않는다. 기념관 안에 들어가니 한남자가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어두운 전시실로 돌아 들어가니 불이 켜진다. 나의 관심은 가닥이 없다. 호남의 유학자 의병, 당대의 인물군상에 대해 알고 싶지만 움직이지 않고 욕심만 부린다. 그러고 보니 내 자신의 역사도 벌써 잊혀진다. 내 부모 형제 이웃들의 모습도 아득하다. 2시가 가까워져 가내마을로 올라간다. 천상재 앞 주차장엔 차가 거의 다 찼다. 조심스레 올라가 서명을 하니 머리가 흰 어른이 어디서 왔느냐 한다. 고흥이라 하니 어찌 알고 왔느냐고 자발적으로 와 주셔 고맙다 한다. 처음 온 이를 소개하겠다고 이력을 묻기에 전직 초등교장이라고 말한다. 낯이 간지럽다. 안동교 선생은 내 연배로 보인다. 미암 유선생과 부인 송덕봉의 이야기를 세세히 해 주신다. 시간이 모자라다. 담양 대덕의 연못 안에 있는 모현관을 멀리서 보기만 한 적이 있다. 환로와 유배를 겪은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도 이젠 재미있어진다. 처음 말을 걸어준 이가 이 강좌를 주관하는 이남섭 선생이다. 그는 이교문 선생의 후손이라고 알고 있다. 복내 이병천 의사의 증손이 오셨다고 소개를 한다. 다음엔 기세규 선생의 인륜 강의가 있으니 그 때도 와 달라 하신다. 그 날은 여수에서 처형제와 놀고 먹고 자기로 한 날이다. 가내마을을 한바퀴 돌고 싶은데, 내일 장모님 깁스를 풀러가는데 목욕을 해 드려야 한다고 바보가 한시간 일찍 퇴근한다고 해 보성으로 바삐 운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