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는 ‘숲의 요정’이라 불립니다. 학명과 영명 모두에 요정을 뜻하는 ‘nympha’와 ‘fairy’가 들어가기에 붙여진 별명일 것입니다. 팔색조는 여덟 가지 색을 지닌 새를 의미합니다. 색깔을 어떻게 세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제는 그보다 색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또 적어 보이기도 합니다. 숫자 8은 분명 여덟을 뜻합니다. 하지만 숫자 8에 ‘여러 가지’라는 뜻도 있으니 굳이 팔색조가 여덟 가지 색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겠습니다. 팔방미인의 팔방(八方)이 꼭 여덟 가지 방향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팔색조의 영어 속칭은 일곱 빛깔의 새(seven-colored bird)입니다. 몸길이는 약 18cm입니다.
세계의 미조(美鳥) 중 하나로도 꼽히는 팔색조는 우리나라의 여름 철새입니다. 5월 중순 경 우리나라에 와서 여름을 지나며 숲에서 번식을 하고 찬바람 술렁이는 가을이면 떠납니다. 이렇듯 팔색조는 분명 우리나라의 숲에서 여름을 지냅니다. 그러나 마주하기 쉬운 새는 아닙니다. 탐조가의 만나고 싶은 여름 철새 목록 첫줄에 자리 잡을 새이지만 그 만남이 성사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팔색조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 몇 가지를 꼽아보겠습니다. 우선 개체 수 자체가 적습니다. 전 세계의 서식 개체를 최소 2,500 개체에서 최대 10,000 개체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나마 서식지 파괴로 인하여 급격한 감소추세에 있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의 적색목록에 올라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 한라산 둘레에 위치한 남사면, 거제도 동부면 학동, 전라남도 진도 등의 섬에서 번식하는 희귀한 새로서 1968년 천연기념물 제204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전라도 내륙, 충청도내륙, 경기도, 심지어 강원도 지역에서도 번식 개체를 확인한 바 있으니 서식 범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확대되었다 여겨집니다. 그렇더라도 팔색조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에는 그들의 서식환경 또한 한 몫을 합니다. 팔색조는 인적이 지극히 드물거나 아예 끊어진 깊은 산 속 음습한 지역에서 삽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제대로 열린 한낮에도 컴컴할 정도의 숲이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깊은 산 속을 더듬듯 뒤지다 ‘호이잇, 호이잇’ 팔색조가 내는 울림이 큰 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모습 한 번 보지 못하고 소리를 들은 것으로 만족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팔색조는 까칠한 새를 대표할 정도로 무척 경계심이 강합니다.
팔색조는 이미 대나무 숲 경사면에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일단 철수합니다. 대나무 숲에서 이뤄지는 관찰이니 제대로 전략을 짜야할 상황입니다. 움막을 짓는 것은 기본인데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게다가 대나무 몇 개는 잘라야 하겠으니 소란을 떨지 않고 움막을 지을 길은 없겠습니다. 움막을 짓는 시간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둥지를 막 짓기 시작했을 때 움막을 짓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 차선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팔색조의 포란 기간은 17일 정도입니다. 언제부터 알을 품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알 품는 일정을 간섭하는 것은 피하기로 정합니다. 부화한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기까지는 약 18일 정도가 걸립니다. 부화 초기도 간섭은 피하기로 합니다. 먼발치서 위장천 뒤집어쓰고 지켜보다 부화가 일어난 후 5일째 되는 날 미리 정한 곳에 가능한 빨리 움막을 짓기로 합니다.
움막이 완성되었습니다. 짧은 소란도 끝나 이제는 원래 대나무 숲의 고요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다행스럽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자 팔색조가 경계심을 풀고 먹이를 문채 둥지 앞 대나무에 내려앉습니다. ‘호이잇, 호이잇’.
팔색조가 어린 새를 키우기 위해 잡아오는 먹이의 95% 정도는 지렁이입니다. 거의 지렁이를 먹인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입니다. 나머지 5% 정도는 애벌레와 거미를 포함하여 번식지의 환경에 따라 다양한 곤충을 잡아옵니다. 성체의 주요 먹이 역시 지렁이입니다. 주식이 지렁이다 보니 둥지는 지렁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습하고 음침한 숲에 자리합니다. 번식 시기 또한 우리나라의 장마철과 겹칩니다. 모두 주요 먹이가 지렁이인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처럼 팔색조의 둥지는 낮에도 음침한 숲에 위치하는 데다 장마까지 겹치니 번식 일정에 동행하는 관찰자로서는 최악의 조건일 때가 많습니다. 둥지는 경사진 땅, 굵은 나뭇가지 사이, 바위 위에 나뭇가지를 엮어 짓는데 어느 곳이라도 모양은 윗부분이 둥그런 돔(dome) 형태입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팔색조의 체형 또한 지렁이를 잘 잡도록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땅을 헤쳐 지렁이를 잡아야 하니 다리가 무척 길고, 꼬리 깃은 땅에 끌리지 않을 만큼 짧습니다. 화려한 몸 색에 비해 꼬리가 너무 짧아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부리 역시 땅을 뒤져 지렁이를 잡는데 맞춤형입니다. 팔색조가 지렁이를 잡는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땅바닥에서 통통 튀듯 이동하며 낙엽을 헤치고 지렁이를 잡으며 옆으로 던져놓습니다. 그렇게 금방 예닐곱 마리의 지렁이를 잡은 뒤 땅 위로 던져놓은 지렁이를 한꺼번에 수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