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에서 잃어버린 카메라●
이글거리는 햇살이 대지를 푹푹 복아 대던 6년 전 여름방학 때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기쁨 주는 산더덕’ 벗들 십여 명과 중국 백두산 근처로 해외여행을 갔다.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1시쯤 중국 단둥행 여객선을 타고 배에서 석식한 후 취침하고 아침 조식도 배에서 해결하고 정오 무렵 단둥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의 일행들은 큼지막한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이 처음인지라 내실 밖으로 나와 드넓은 서해 바다의 수평선과 비경을 감상하며 함께 가는 여행객들과 걸삼이 나서 온몸을 흔들흔들 움직이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그 당시 나는 학교에서 진도아리랑 조금 부른다고 소문이 나서 선생님들의 권유에 못 이겨 간판 위에 동행한 백여 명의 여행객들 앞에서 박자 소리에 맞춰 신명이 나서 어깨춤을 추며 이 노래를 맛깔스럽게 흥얼거렸다.
바알간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슬금슬금 기어가자 내실로 들어온 우리들은 중국술인 배갈을 취하도록 마시며 카드 놀이하다가 몇 숨 붙이고 일어나니 저 멀리 단둥항이 방금 시집 온 새댁마냥 단장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배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버스로 고구려 수도인 지안으로 이동했다. 지안은 고구려 초기의 수도여서 왕릉을 비롯한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 중에 광개토대왕릉과 장수왕릉은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관람 대상이었다.
이곳에 산재한 수많은 왕릉과 무덤 그리고 비석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고구려인의 웅혼한 기상과 정신을 배우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방문한 우리들에게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듯했다.
"중국에 빼앗긴 고구려 영토를 되찾아라.“
는 말씀이 메아리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지안 관람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려고 음식점에 들렀다. 가이드가 북한 국적을 두고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우리를 북한 사람들이 경영하는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음식은 우리 취향에 맞게 잘 숙성된 콩으로 만든 된장국과 산채백반이 차려졌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안내하는 아가씨들이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북쪽의 고위층 자녀 가운데 특별히 선발하여 데려왔다고 했다.
그녀들의 자태는 산도화 같이 화사하고 매너는 능수버들처럼 부드러웠다. 그 중에 한 여성이 고향의 봄을 죽석에서 노래하는데 마치 금강산 옥류동 계곡물 속에서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청아하고 영롱하게 소리를 뽑아 일행들 모두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내일은 백두산을 등반하는 날이어서 백두산 지근에 있는 통화시서 일박하고 아침 식사 후 버스로 천천히 천지를 향해 1시간 정도 달렸다. 여름이라 그런지 길 주변 초원에는 생전 처음 보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백두산을 오르는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한참 산기슭을 돌고 돌아 해발 2500미터쯤 되는 곳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300여 미터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차에서 내리니 고도가 높아 기온이 급강하해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천천히 천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일행 모두는 꿈속에도 그리던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기쁨에 한발 두발 오르는 발걸음은 힘이 넘쳤고 얼굴은 기쁜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 백두산 천지의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백번 천지를 오르면 두 번 정도만 맑게 갠 천지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천지 턱밑까지 다다르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애국가의 첫구절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아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를 씩씩하게 부르면서 정상에 이르렀다.
우리는 모두 애국가를 끝까지 부르고 "만세 만세 만세" 삼창을 하니 흥분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처럼 온몸이 상기되어 만세를 힘차게 외치며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소나기처럼 눈물을 후줄근히 뿌리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심신이 들뜬 채 주변 구경을 하고 있는데 우리말을 잘 하는 옛고구려 후예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천지에서 장뇌삼 먹으면 백수를 누린다고 하여 두 뿌리를 사서 하나를 입속으로 넣었다. 카메라를 조금 떨어진 곳에 두고 영험한 약초와 다양한 물건을 파는 조선족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메라에 신 경 쓰지 않고 천지 주변을 배회하다가 멋진 장면이 있어 사진 촬영을 하려는 순간 카메라가 보이지 않았다. 들뜬 마음을 가라 안치고 생각을 정리해 카메라 놔둔 곳으로 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천지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카메라는 꿩 구워 먹은 자리였다.
"선생님 제 카메라 혹시 못 봤어요?"
"어디에 두었습니까?"
"방금 이 근처 돌무더기에 올려놨습니다."
"못 봤어!"
"아저씨 여기 있었던 카메라 보셨어요?"
동행한 선생님들과 주변 관람객에게 여쭈어 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선생님들이 나의 우울한 기분을 이해하고 다가와 위로하기도 했다. 여행 분위기 깨지 않으려고 일부로 태연한 척했지만 올라오는 순간의 들뜬 마음은 찬밥처럼 식어버렸다.
나는 여행 마치고 소파에 누워 카메라를 누가 집어 갔을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 장뇌삼 팔았던 한국말 잘 하는 우리 동포가 가져갔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했다. 그러면서 카메라 팔아 살림 밑천을 하거나 아이들 교육비에 요긴하게 사용되길 바랐다
한편으로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후예로서 나라를 빼앗기고 큰 나라에 예속되어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동포에게 보시했다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기분이 그렇게 언짢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고자 노력하는 사랑하는 동포 형제여! 그대 들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을 지어라’
나는 이번 해외여행 중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에서 가멸찬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와 부지불식간에 카메라를 분실하여 아쉬움도 컸다.
하지만 천하를 호령하던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이 꿈틀대고 선인들의 영혼이 배어있는 지역을 두루 견문하면서 통일의 당위성을 인식하였고 하나 된 한민족이 세계무대에서 웅비하는 날을 상상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며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