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이광범, '최순실' 박영수, '드루킹' 허익범
모두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등 추천
이명박‧박근혜‧문재인은 거부권 행사 않고 수용
최순실 위헌 제기에 법원 '기각'…헌재 전원 '합헌'
"특검 독립성 확보 등 고려해 국회가 결정할 사항"
"여당이 추천하면 이해충돌, 특검 도입 목적 저해"
윤 정권은 우격다짐식 '위헌 타령' 고장 난 레코드
언론의 '야당 입법 폭주' 보도 유도하며 국민 기만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오후 김건희 특검법(정식 명칭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세 번째로 거부권(재의요구안)을 행사했다. 취임 이후 통틀어 25번째 거부권 행사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을 세 번째 발의해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고, 정부는 26일 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윤석열 정권은 거부권 행사의 근거를 이것저것 끌어모아 나열하고 있지만 핵심 사유는 '특검을 야당이 추천하는 건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번 특검법은 수사 대상을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개입 의혹과 명태균 씨 관련 의혹으로 대폭 축소했으며, 특검 후보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방안을 반영해 제3자인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양보하되, 야당이 재추천을 요구할 수 있는 '비토권'을 담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이조차도 위헌이라고 규정했다. 포장을 어떻게 했든 특검 추천을 야당이 좌우할 수 있으니 절대 안 된다는 논리다.
한덕수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야당이 그 위헌성이 조금도 해소되지 않은 특검법안을 또다시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이라며 "제3자 추천의 형식적 외관만 갖췄을 뿐, 실질적으로는 야당이 특검 후보자 추천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 수호 의무가 있는 대통령은 위헌적 요소가 있는 법률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위헌이라는 요지의 이완규 법제처장 주장을 제목으로 뽑아 보도한 한국일보의 인터뷰 기사.
법무부도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이날 A4 용지 5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내고 "특검법안의 수사 대상인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중"이라며 "관련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대법원 수장이 수사를 맡게 될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주장했다. 또 "야당은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자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할 경우 야당이 원하는 후보자가 추천될 때까지 '무한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결국 '제3자 추천'이라는 무늬만 갖췄을 뿐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부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정권의 '법기술' 행사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이완규 법제처장 역시 지난 24일 한국일보 인터뷰를 통해 "(김건희 특검법의) 결정적인 문제는 특별검사를 실질적으로 야권에서 추천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며 "고발인(야권)이 특검까지 정하는 건 '적법절차의 법리'에도 어긋난다. 헌법 수호의 책무를 가진 대통령으로서는 거부권 행사가 당연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본인이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사실상 특검을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 명백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삼권분립 체계에 위반되기 때문"이라며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자체가 기본적으로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고 항변했다. 나아가 "이건 사법 작용이 아니라 정치 선동이다. 인권 유린이 될 수 있다"면서 "헌법을 수호할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윤석열 정권이 이렇게 '야당 추천은 물론 대법원장 추천 특검도 위헌'이라는 소리를 고장 난 레코드처럼 무한 반복하는 이유는 다수 언론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해줌으로써 국민들을 속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대 특검법에서 대법원장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이 특검을 추천하도록 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헌법재판소도 이를 합헌이라고 더할 나위 없이 명쾌하게 결론 내린 바 있어 윤 정권이 내세우는 위헌론은 의도적인 궤변이자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
우선 대법원장의 특검 추천 사례를 보면, 과거 윤 대통령 본인이 파견 검사로 참여했던 BBK 특검(2007)의 정호영 변호사는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추천해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이어 스폰서 검사 특검(2010)의 민경식 변호사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추천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고, 디도스 특검(2011)의 박태석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천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사표(師表)처럼 추종하는 MB도 대법원장 추천 특검을 잇따라 수용했던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권이 막무가내로 부정하는 야당 추천 사례도 세 차례나 존재한다. 그 첫 사례였던 내곡동 사저 의혹 특검(2012년)은 '피의자'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이었던 만큼 공정한 수사를 위해 특검을 야당에서 추천할 필요가 있다는 당시 민주통합당의 요구를 여당인 새누리당이 받아들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민주통합당은 특검 후보로 김형태‧이광범 변호사를 추천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을 향한 특검 수사에 불만은 있었지만 '대승적으로'(당시 청와대 측 표현) 결단해 두 후보 가운데 이광범 변호사를 낙점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수사팀 주축으로 활약했던 '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특검(2016년) 때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3당이 조승식 변호사와 박영수 변호사를 추천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자신과 측근들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두 후보 중 박영수 변호사를 임명해 역대 최대 규모의 '슈퍼 특검팀'이 출범하도록 했다. 박영수 특검은 야3당 중에서도 국민의당이 추천한 인사였다.
드루킹 특검(2018)은 대한변호사협회 추천이라는 한 단계를 더 거치긴 했지만 야당이 2명의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기본 골격은 동일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배제된 상태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등 교섭단체 야3당은 대한변협에서 국회에 추천한 김봉석·오광수·임정혁·허익범 변호사 등 4명의 후보 중 청와대 추천 대상으로 임정혁·허익범 변호사를 추렸고, 문재인 대통령은 공안 검사 출신 허익범 변호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친문 핵심이던 김경수 경남지사의 투옥으로 이어져 특검 수사 및 판결 내용을 둘러싼 여러 의문에도 불구하고 문 정부에 큰 타격이 됐다.
이렇게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 또는 측근들에게 닥칠 위험에도 불구하고 대승적이든 마지못해서였든 야당 추천 특검을 받아들였다. 이전 대통령들은 모두 국회의 의사 결정을 존중해 설혹 여당 일각에서 반대가 있었더라도 표결을 거쳐 본회의를 통과한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일절 하지 않았는데, 유독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과 배우자가 수사 대상인 채 해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에 각 3번씩, 무려 6번이나 거부권을 휘두르는 전대미문의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국정농단 특검법의 야당 추천 특검 조항이 합헌이라는 2019년 2월 28일 헌법재판소 결정문 일부.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 케이스노트 화면 갈무리
야당 추천 특검이 위헌이라는 윤 정권의 생떼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는 바로 그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보면 더없이 명확해진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는 지난 2017년 3월 7일 박영수 특검팀의 출범과 활동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국회가 정치적 상황의 중대성과 특수성 등을 고려해 특검 후보자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추천하도록 한 것이 명백하게 자의적이거나 현저히 부당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최 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최 씨는 같은 해 4월 21일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으나, 헌재는 2019년 2월 28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법'의 야당 추천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것도 헌법재판관 9명(유남석‧서기석‧조용호‧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기영) 전원 일치 의견이었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헌재 전원재판부 결정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특별검사 후보자의 추천권을 누구에게 부여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특별검사를 임명할 것인지에 관한 사항은 사건의 특수성과 특별검사법의 도입 배경, 수사 대상과 임명 관여 주체와의 관련성 및 그 정도, 그에 따른 특별검사의 독립성·중립성 확보 방안 등을 고려하여 국회가 '입법 재량'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다.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이 특별검사 후보자를 추천함으로써 이해충돌 상황이 야기되면 특별검사제도의 도입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 여당을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권자에서 배제하고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두 야당으로 하여금 특별검사 후보자를 추천해 2인 중 1인을 대통령이 특별검사로 임명하게끔 규정했다고 해서 합리성과 정당성을 잃은 입법이라고 볼 수 없다." (2017헌바196)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수사 대상이기 때문에 이해충돌을 피하고 특검의 독립성을 기하기 위해 여당인 국민의힘 추천권을 배제하는 건 상식적으로 너무도 당연하다. 이해하기 복잡한 사안이 전혀 아니지만 윤석열 정권은 우격다짐을 끝없이 되풀이함으로써 마치 일리가 있는 논리처럼 언론에 주입하고 '야당의 입법 폭주'라는 식의 보도를 유도해 여론을 선동하려 한다. 왜 이리 필사적일까. 윤 대통령 본인이 그 답을 가장 잘 알고 있다.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를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선대위 출범식에서 여야의 대장동 특검 및 고발사주 특검 공방과 관련해 "떳떳하면 사정기관을 통해서 권력자도 조사받고 측근도 조사받고 하는 것이지,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라고 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