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濯斯亭(탁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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濯斯亭(탁사정). !
忠北(충북) 堤川市(제천시) 鳳陽邑(봉양읍) 九鶴里(구학리) 山 224번지 강변 奇巖絶壁(기암절벽)위에 所在(소재)하는 亭子閣(정자각)의 名稱(명칭)이며 제천10경중 제9경 으로서 그 語源(어원)은 옛날 中國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정치가이자 당대(當代)의 시인인 굴원 (屈原) 의 창랑지수(滄浪之水 )에서 유래(有來) 하였으며 굴원은 회왕(懷王)을 도와 눈부신 정치 활동을 하였으나, 간신(姦臣)의 참소(讒訴)로 호남성의 상수로 추방을 당하여 방랑 생활을 하다가 울분을 참지 못해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졌다. 굴원(屈原)이 쫓겨나 강담(江潭)에서 노닐어 못가를 거닐면서 시(詩)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形容)이 생기가 없었다. 어부(漁父)가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닌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자, 굴원이 대답하기를,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만이 홀로 깨끗하고, 온 세상이 모두 취하였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으니, 이 때문에 추방을 당했노라.하였다.
어부가 이렇게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막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따라 변하여 옮겨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거든 어찌하여 그 진흙을 휘젓고 그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여러 사람들이 모두 취하였거든 어찌하여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지 않고,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하여 스스로 추방을 당하게 한단 말인가.
이에 굴원이 대답하였다.
내가 들으니,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한다. 어찌 깨끗한 몸으로 남의 더러운 것을 받는단 말인가. 내 차라리 소상강(瀟湘江) 강물에 달려들어서 강고기의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희디흰 결백한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인가.
이에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돛대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滄浪之水 淸兮(창랑지수 청혜 可以濯吾纓 가이탁오영, 滄浪之水 濁兮 창랑지수 탁혜 可以濯吾足 가이탁오족}. 창랑에 물이 맑으면 내갓끈을 씻고,창랑에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다.
滄浪之水(창랑지수) ! 이 탁사정 강물에는 폭포옆에 帒岩(대암)이란 자루바위가 있으며 그 곳에서 부터 맑은물과 흐린물로 물이 두갈래로 갈라져 흐르는데 그 물흐름의 來歷(내력)이 그 滄浪之水(창랑지수)를 聯想(연상)시킨다 해서 滄浪之水(창랑지수)에 근원(根源)을 하고 淸斯濯瓔 濁斯濯足 (청사탁영 탁사탁족) 을 引用(인용) 玉派(옥파) 元奎常(원규상)이 濯斯亭 이 라 이름하였다. 옛날 한양으로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이 들려 갓끈을 씻고가면 반드시 장원급제 하였다는 水晶(수정)처럼 맑은 강물과 이 지방에 가믐이들면 太守(태수)가 祈雨祭(기우제)를 지냈던 寄巖絶璧(기암절벽) 위 용복에 "濯斯亭" 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곳에는 지금도 옛 先人(선인)들에 자취와 時調加樂(시조가락)이 들리는듯 하다.
濯斯亭 重修記 ! 탁사정 중수기
本 濯斯亭은 宣祖19年,丙戌(1586年) 長興任氏 文忠公派 본 탁사정 선조 병술 장흥임씨 문충공파
12世되시는 諱,應龍 公 께서 全羅兵使와 濟州水使를 歷任하시고 휘,응룡 공 전라병사 제주수사 역임
堤川으로 歸鄕 하실 때 海松 여덟그루를 가지고와 심고 제천 귀향 해송
亭子를 創建 하여 八松亭이라 하였는데 정자 창건 팔송정
八松亭은 長久한 歲月의 흐름속에서 消失되었고 팔송정 장구 세월 소실
그後 1925年 (乙丑)에 公에 10代 後孫인 諱,允 根 이 후 을축 공 후손 휘, 윤 근
山水가 秀麗한 現 位置에 再建 하여 산수 수려 현 위치 재 건 中國 楚나라 屈原의 漁父辭 滄浪之水에 根源을 한 중국 초 굴원 어부사 창랑지수 근원
淸斯濯瓔 濁斯濯足 에서 청사탁영 탁사탁족
(맑은 물에서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서는 발을 씻는다.)
濯斯亭이라 이름 하였고 탁사정
선비 들과 風流客 들이 學文과 風流를 풍류객 학문 풍류 論 하던 名所로서 그동안 론 명소
後孫에 의해 管理 保存되어 오던중 후손 관리 보존
1950年의 6,25 戰亂에 火災로인하여 破損된 것을 전란 화재 파손
1957年(丁酉) 公에 12代 後孫인 諱,聖 奎 가 再次 정유 공 후손 휘,성 규 재차
復原을 한후 50餘年의 歲月이 흐르면서 다시 복원 여년 세월
土木은 부서져 내리고 丹靑은 비바람에 깎이어 그 토목 단 청
退色함이 더 하더니 2005年(乙酉)十月 堤川市 에서 퇴색 을유 제천시
堤川十景 整備事業 의 一環으로 제천십경 정비사업 일 환
本 亭子의 重修를 施行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니 본 정자 중수 시행
우리가 옛 일들을 記憶 하듯이 기억
今日에 일을 記錄으로 남겨 後日의 자취로 삼고자 함이라. 금 일 기록 후일
2005年 (乙酉) 十 月. 長興任氏 堤川宗中 文忠公派 25 世孫 鍾 學 三加 書 .
濯斯亭 記 (原本) !
亭子를 씻을濯(탁)자로 이름함은 뜻의 由來(유래)가 있다. 濯의 근원이 모두 中國 楚(초)나라 屈原(굴원)의 漁父辭(어부사)를 노래한 滄浪之水(창랑지수)라는데서 나왔다. 魯鄒(노추)孔子와 孟子님에 훈계를 나도들어 알고 있다. 楚(초)나라에 屈原(굴원)이 漁父辭(어부사)를 지어 당대를 울렸고 唐(당)나라 두잠이는 百花潭水(백화담수)의 글귀를 지었고 宋나라 歐暘公(구양공)이 “邀我共作(요아공작)”이란 책을지었다. 歲月이 흘러 때는 옛이요 世代(세대)는 지금 이어서 그 자취에 흠뻑 젖어들지 못하고 말도 능히 새기지 못한지라 그 남긴 志趣(지취)와 前代(전대)의 風流(풍류)가 저와 같이 높으며 후배들이 바라봄이 이와 같이 얕은가. 堤川 西쪽 弓谷(궁곡)마을에 滄儂(창농) 任允根(임윤근)이란 친구가 살고 있으니 사람됨이 얽매이지 않고 뛰어나서 자못 二樂(이악)의 풍취가 있었다. 그 先代 十代組 諱(휘) 應龍(응룡)이 耽羅佰(탐라백)이 되었더니 벼슬을 마치고 오는날에 소나무 여덟그루를 마을뒤에 심으니 사람들이 耽羅佰(탐라백)을 비유하여 棠菜公柏(당채공백)이라 부르고 그로 인하여 八松마을 이라 부르니 어언 三百年이라 ! 그 圭蓽(규필)이란 늙은이가 이따금 전에 盛時(성시)에 일을 설명하니 弓谷(궁곡)東쪽 帒岩(대암)이란 바위가 있으니 바위形狀(형상)이 위로 磐石(반석)이요 아래도 磐石이며 중간엔 물이돌아 南쪽으로 굴을 이루니 사람들이 전대를 岩口(암구)에 달고 고기가 들어가기를 기다리니 이로인하여 帒岩(대암)이라 稱(칭) 한다고 한다. 그 아래로 물이 淸濁(청탁)으로 나뉘어 마치 하늘이 滄浪之水(창랑지수)한 구역을 베어다 놓은 것 같으니 任允根이 사는곳과 관역의 두어번 거리이라 일하고 여가에 골마다 찾아다녀 보니 험하고 푸르고 怪狀(괴상)함이 한폭의 비단이라 하늘이 빼어낸 곳이오 황패하여 버려진 터가 아니더라. 이로 말미암아 항상 그위를 방황하여 좋운계기가 되어 뜻을 정하고 靳木(근목)으로 돌을 뚫어두어간 亭子를 세울 기초를 얻었다. 이에 木工으로 亭子를 짓기를 말하니 南北의 모든 산봉우리가 賓主(빈주)의 서로 揖(읍) 하는 형상이니 九鶴(구학)과 鳳凰(봉황)이라 늘 큰 감음이 들면 太守가 용복에서 祈雨祭(기우제)를 올렸다. 돌이 뾰족 뾰족하여 하늘을 떠받들 기세가 三峰(삼봉)이라 바위길 소나무그늘에 날아갈듯한 姿態(자태)의 亭子가 있으니 바로 濯斯亭(탁사정)이라 千金의 費用(비용)을 아끼지 않고 하루에 이룬자는 亭子를 지은 任允根이다. 옛적에 임도란이란 사람의 시 에 “갈매기 일어남에 모래이슬 떨어지고 낚시배 뜨니 사람이 누어있네”라는 싯구가 있으니 이아름다운 景致(경치)를 이에홀로 님이 지나간 風流(풍류)라 하리오. 슬프다 사물의 興敗(흥패)와 사람의 盛衰(성쇠)를 누가 豫測(예측) 하리오. 옛적에 洪 處士(처사) 玉壺(옥호)가 이곳에 亭子를 세우니 이름하여 玉壺亭(옥호정) 이라 하였다. 당시에 좋운일이요 風流(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에게 名聲(명성)있는 장소였다. 사람도 이미 옛이요 땅도 이미 荒廢(황폐)하여 여운이 다한지라 고을에 버려진 터에 함께 산보하며 자취를보니 비길대가 없더니 今日(금일)에 어찌 그 이땅이 復興(부흥) 할줄 알았으리오. 옛적에 耽羅佰(탐라백)이 八松을 심으매 手澤(수택)을 얻어 마을 모양이 의구하더니 그後로 늦게 옛자취로 인하여 또 어찌 滄儂(창농)任允根이 十代後에 태어나 다시 이러한 일로 十代 先祖를 빛낼줄을 알았으리오. 멀리 점치면 운이 오래되어 돌아옴이 분명하다. 經淸(경수)는 맑고 渭濁(위탁)위수는 흐린 것은 愚夫愚婦(우부우부)도 구별할줄 알거늘 아버지는 밭 일구고 자식은 씨앗뿌리면서 꽃하나 돌하나도 즐거이 타인에게 허여하니 잠시도 濯斯亭이요 급하여도 濯斯亭이라 조심하고 부지런함이 濯斯亭가운데서 나오지 않음이 없으니 비로서 천지만물이 각기 주인이 있음이라. 그렇다면 맑은 물에 갓끈을 씻고 흐린물에 발을 씻는다하니 어찌 그리 공평하지 못한가 가까이 보면 炎凉(염양)을 茹吐(여토)에 비교함이니 人性(인성)의 淸濁(청탁)이 水性(수성)의 淸濁(청탁)과 같아서 물과 사람이 피아의 사이가 없어서 淸濁(청탁)을 어찌 가릴수 있겠는가. 人性(인성)은 天機(천기)의 부림을 받는바요 水性은 天機(천기)를 보존하는 바니 그 부리키는바 성품으로 보존하는 성품을 해친다면 이것이 人慾(인욕)을 먼저하고 天理를 뒤로함이 없겠는가 갓끈과 발은 나에게 있고 淸濁은 저에게 있으니 그 나에게 있는거로 보면 일동 일정을 이 가히 버릴수 없고 저기에 있는거로 보면 一朝一夕에 변화가 無窮(무궁)함이라. 이 그 버리지 못하고 無窮함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사람과 물은 장차 한가지로 混沌(혼돈)한 틈으로 들어갈 것이다. 千萬年이 지나와도 三才(삼재)와 五常(오상)이 어찌 기리 어두운 이치가 있으리오 또 古語에 이르기를 “한물결이 일어나면 만물결이 따르고 바람과 조수 요란하고 混濁(혼탁)함을 누가 막을수 있겠는가?“ 그맑기를 기다리고자 함이 黃河가 맑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음이니 세상이 이미 흐려져서 장차 모두가 즐겨 물에 빠질지경에 이르러서 또 이미 큰물결이 거꾸러저 때로 심술이 있음을 보아도 어지럽지 않거늘 하물며 어느 겨를에 濯斯亭의 탁을 얻어 씻겠는가 그렇다면 뜨거운 것을 잡은자 어찌가서 씻기을 생각하고 스스로 깨끗하려는자 또한 샘에서 씻음을 생각함이 있지 않겠는가 物外(물외)에 뜨고 잠기며 사방에 티끌을 물가나 바다 가운데 푹적시어 是是 非非 營營 苟苟 전부를 돌아가는 구름과 지나가는 바람으로 보낸즉 어찌 어딜가나 滄浪之水(창랑지수)여서 또한 해롭고 해롭지 않은 것을 씻지 않겠는가 모든사람들에 善과 惡을 滄浪(창랑)에 비유하여 스스로 얻는다면 사람이 물에 얻음이 있다는 말인가? 물이 사람에게 스스로 얻는 形狀(형상)을 보여 준다는 말인가? 이에 다만 마땅히 사람의 龜鑑(귀감)이 물에 龜鑑인가 그렇다면 두말의 이 疑惑(의혹)을 나는 스스로 얻는뜻을 濯斯亭을 지은이에게 質問(질문)하여 그 얻는바 解法(해법)을 얻고자 하노라.
乙丑 (西記 1925)年十一月 冬至日完山人 靑隱(청은)李炳善 : 記
2005年 (乙酉)7月 24日 堤川鄕校 申恒善 (飜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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