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24]
탐정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의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너를 선대하리라 하매..."
본절에 기록된 사건은 여리고 정탐시에 기생 라합에게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하다. 아무튼 이는 요셉 족속이 어떻게 견고한 요새 벧엘을 정복하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또 벧엘 정복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요셉 족속과 함께 하셨음도 잘 보여 준다. 성읍의 입구 - 이것은 성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벧엘 사람들이 요셉 족속의 성문 출입을 허용 할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는 요새화된 벧엘에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 루트나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선대하리라 - 원문을 직역하면 '자비를 보이겠다'. '은혜를 베풀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비', '은혜'에 해당하는 원어 '헤세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긍휼' 또는 인간과 인간 간의 '변함없는 신뢰'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는 정탐꾼이 벧엘 거민에게 제시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강조적 의미로 쓰였다.
[삿 1: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이에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 이 벧엘 사람은 요셉 족속의 정탐꾼으로 말미암아 신변의 위협을 느꼈으므로 이처럼 성읍의 입구를 가르쳐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탐꾼이 그에게 정중히 도움을 요청한 점으로보아 자발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즉 그는 여리고 성의 라합처럼. 이미 하나님께서 요셉족속과 함께 하심을 감지했기 때문에 정탐꾼의 요청에 협조했을 것이다.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 - 라합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켰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 전가족의 구원과 멸망이 좌우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대표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과거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오늘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된 것이다.
물론 구원은 최종적으로 개개인과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타인의 구원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쳐 구원에로 인도할 수는 있으므로, 성도의 힘쓸 의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삿 1:26]"그 사람이 헷 사람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날까지 그곳의 이름이더라..."
헷 사람의 땅 - 헷 족속은 인도 유로피안 족이다. 이들은 B.C.1800-1200년 사이에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역에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었다.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족장 시대나 모세 율법시대에 일어난 사건들과 헷 족속의 법률이나 관습들, 특히 이들의 종주권계약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한편 시리아 지역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헷 족속의 온 땅'으로 불리워졌다.
따라서 본절에서 벧엘 거민이 이주하였다는 '헷 사람의 땅'은 시리아의 어느 한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 이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정착지에 다가 벧엘의 옛이름인 '루스'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떠나다'라는 뜻 외에도 '편도나무'라는 뜻을 지닌 '루스'라는 이름에 근거해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즉 편도나무로 유명했던 고대 헷 족속의 땅으로는 북부시리아의 '쿠프로스'가 있으므로 이곳이 곧 루스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삿 1:27 ]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본절은 벧엘의 운명과는 대조적으로 므낫세의 영토내에 있는 많은 가나안 인들의 성읍들이 그대로 존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들 성읍들은 '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스르엘과 에스드렐론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이 도시들 중 몇몇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되었으나, 나머지 성읍들에 대한 정복기사는 아무 데도 없다. 아마 그들은 철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쉽게 이스라엘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성읍들까지도 곧 독립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본절의 끝 부분에 나오는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라는 말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저항이 막강하였음을 의미한다.
벧스안 - 요단 계곡과 이스라엘 골짜기의 교차 지점, 곧 요단 강 서쪽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주요 요새이다. 라암세스 3세 때(B.C.1175-1144)까지 이곳에 애굽 수비대가 상주했었으며, 그 후 블레셋이 이곳을 점령했었다. 그 향리 - 즉 큰성읍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형성되었던 촌락이나 위성 도시를 가리킨다. 다아낙 - 므깃도 남동쪽 8km 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다. 역사상 이 성읍은 당시 에스드렐론 계곡에서 샤론 평야에 이르는 남서 통로를 지배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돌 - 가이사랴 북방 약 13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 팔레스틴 해안에 위치한 요새화된 성읍이다. 이곳에는 그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이났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해 살았었다. 한편 솔로몬 당시 돌과 그 인근지역은 솔로몬 왕국의 제4행정 구역에 편입되었던것으로 전해진다. 이블르암 - 샤론 평야 동쪽, 이스르엘 골짜기 남쪽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성읍이다.
오늘날에 '길벳 빌 암메'와 동일시 되는데, 이는 므깃도 남동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므깃도 - 하이퍼 남동쪽 약 30km 지점의 이스르엘 평원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이곳은 B.C. 12세기 중반까지 애굽의 지배 하에 었었다. 고고학자 스트라툼 7세는 므깃도가 갑자기 멸망당했음을 밝혀냈는데, 그것은 5 : 19에서 암시하고 있는 드보라의 숭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삿 1: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본절에서 사사기 기자는 므낫세 뿐만아니라 다른 지파까지 포함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가나안 인들을 그 땅에서다 쫓아내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져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쫓아낼 수 있을 즈음에는, 가나안인들을 쫓아내기 보다는 오혀려 그들을 부려먹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즉 강성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라 보다 가나안 인들의 사역을 통하여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성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 - 정확히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물른 이스라엘의 국력이 최고로 신장된 때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기(B.C.1005-931)이다. 그러나 사사 시대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꾸준히 국력을 길러 왔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때는 이스라엘이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다 쫓아낼 수 있을 만큼 국력이 신장된 때임에 만은 분명하다.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인들을 사역시킨 경우는 이미 여호수아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다. 즉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 조약을 맺었던 기브온 거민들을 이스라엘의 노예로 삼았었던 것이다. 또한 솔로몬은 자신의 건축 사업에 가나안 인들을 동원, 인부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가나안땅에서 모든 원주민들을 멸하고 쫓아내는 것이었지 결코 그들을 남겨,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잘못이 있었는 바, 이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이방 우상 숭배와 사악한 풍습에 점차 물들어 가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