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메뉴 대구탕 |
대구탕이 삼각지에 처음 자리 잡게 된 것은 1979년. 고 손양원씨와 김명희(77)씨가 이 골목에 처음으로 ‘원대구탕’이라는 옥호를 걸었다. 경남 밀양에서 자란 손씨는 경상도식으로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여주던 어머니의 대구탕 맛을 그대로 재현했다. 당시만 해도 대구탕은 뚝배기에 담아내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집에선 테이블에서 바로 끓여먹게끔 큼직한 대구를 냄비에 담고 채소를 푸짐하게 올려 내놓자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 집의 소문이 자자해지자 인근에 대구탕집 몇 곳이 문을 열어 대구탕 골목을 이루고 오랫동안 성업 중이다.
처음에 이곳의 대구탕이 유명해진 데는 군인들 덕이 컸다. 주변에 국방부, 육군본부 등이 있어 군인들이 주요 단골이 되었다. 전출과 파견이 많은 군인 특성상 그 맛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외지에 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오는 단골들은 부대에 복귀하기 전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이곳을 찾아 대구탕 한 그릇을 먹고 들어갈 정도였다. 손씨는 한창 잘 먹는 군인들 생각에 공깃밥을 무제한으로 제공해주었다. 그런 따듯한 밥 인심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법. 전역한 군인들이 손주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아 대구탕 냄비를 앞에 놓고 옛 추억을 꺼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골목의 원조인 ‘원대구탕’은 현재 2대 대표인 손석호(50)씨가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가게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도왔던 그는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생선을 다루다가, 스물두 살부터 본격적으로 원대구탕 일을 도맡아온 대구탕 전문가다. “대구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생선이에요!”
대구는 입과 머리가 크다 해서 ‘大口’라고 불리는 한류성 어종이다. 겨울철 최고의 별미인 대구는 머리가 특히 맛이 있어 ‘어두육미(魚頭肉尾)’라는 말이 대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정도다. 대구는 ‘애’라고 불리는 간과 수컷의 정소인 꼬불꼬불한 모양의 ‘이리’까지 버리는 것 없이 모두 요리에 사용된다. 이리를 곤이라고 흔히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곤이란 알집을 의미한다. 대구 아가미도 따로 떼어 무와 함께 절였다가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내는데, 짭조름한 이 아가미김치야말로 이 집의 별미반찬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려시대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귀한 생선이었던 대구는 1980년대 중반부터 어획고가 크게 줄면서 서민들이 더욱 맛보기 힘든 귀한 어종이 되었다. 대구 가격이 크게 치솟자 어민들이 치어방류사업을 벌여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남 연안에 대구가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석호씨는 비록 예전보다 어획량이 늘어 생대구가 흔해졌다지만 아직도 국내산 생대구는 사계절 안정적인 수급이 어렵고 가격 대비 매력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전 그대로 러시아산 선동(船冬) 대구를 사용한다. 선동이란 배에서 생선을 잡자마자 급속냉동하는 방식으로, 육지로 가져와서 냉동시키는 방법보다 신선도와 맛이 훨씬 좋다. 대구는 크기가 클수록 국물 맛이 좋아지지만 육질까지 고려해 마리당 4㎏ 내외로 준비한다. 대개 일 년에 두 번씩 톤 단위로 구입해 전용냉동고에 넣어두고 일주일치 분량씩 가져다 쓴다.
국물에 밥 말아 아가미무김치에…
대구는 무엇을 먹고 자랐는가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석호씨의 경험에 의하면 작은 새우를 먹고 자란 대구에서 가장 맛있는 향이 난다고. 운 좋게 그런 대구를 만나는 날이면 ‘오늘 우리 집 손님들 정말 맛있는 대구탕 먹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고 한다.
원대구탕에 들어서면 마치 김장이라도 담그는 집처럼 마늘, 생강, 미나리 등 신선하고 향긋한 양념과 채소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이 집의 메뉴는 대구탕, 내장탕, 맑은탕 등 오로지 대구로 만든 요리들로 구성된다. 내장탕에는 이리와 애가 들어간다. 살보다 내장이 더 비싼데도 석호씨는 주방식구들에게 단가를 비밀로 한다. 단가를 알면 아무래도 재료를 아끼게 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로 머리, 살, 내장을 조합해서 주문할 수도 있다. 보통 3인분을 주문하면 대구 머리를 반 개씩 넣어주고 2인분일 때는 요청할 때만 알맞은 크기의 머리를 넣어준다.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대가리만 오롯이 들어가는 대가리탕도 있다. 가격은 대가리탕을 제외한 모든 탕이 1인분에 1만원. 면사리와 볶음밥이 1000원씩이다. 만원의 행복이랄까! 이만하면 주머니가 좀 가벼울 때도 보글보글 끓이면서 먹는 즉석 대구탕의 따뜻하고 푸짐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겠다 싶다.
주문을 하면 매일 담가 알맞게 숙성시킨 동치미와 아가미무김치를 세팅해준다. 이어서 대구탕 냄비가 나오는데 미나리, 다진마늘, 고춧가루 양념이 듬뿍 올려져 있다. 처음에 뚜껑을 열면 자칫 콩나물 비린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콩나물이 익을 때까지 열지 말아야 한다. 국물이 팔팔 끓어 육수가 뽀얗게 우러나면 양념을 풀고 한소끔 더 끓여 먹으면 된다. 먼저 미나리와 콩나물 등 야채를 건져 소스에 살짝 찍어 먹고 그 다음 내장, 대구살 순으로 먹으라고 귀띔해주는데 국물부터 자꾸 숟가락이 간다.
마늘과 고춧가루의 강한 양념이 녹아든 이 집 대구탕 국물은 진하고 구수하면서 칼칼하고 시원하다. 술을 부르는 맛이랄까! 그래서 애주가들의 발길이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지는가 싶다. 추운 날씨에도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다. 겨울미나리가 유난히 향긋하고 부드러워 더 달라고 청하면 수북하게 또 얹어준다. 개운한 매운탕 국물에 밥을 말아 아가미무김치를 올려 먹는 맛이란! 두툼한 대구살도 퍽퍽하지 않고 탱글탱글해서 입안이 즐겁다. 비결은 가능하면 손을 덜 대는 것이라고. 언 상태를 유지하면서 재빨리 손질해두었다가 요리하기 직전, 염도 맞춘 소금물에 잠깐 담가서 신선하게 준비한다.
얼큰한 대구탕은 장년층이 더 선호하는 음식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흠씬 녹아든 이곳엔 오늘도 개운한 국물 맛에 오랜 단골이 된 어르신들부터 속풀이 해장하러 오는 손님들, 삼삼오오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들의 훈훈한 이야기꽃이 가득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