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질투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성경을 보면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이 너무나 다르게 느껴집니다. 신약의 하느님이, 외아들을 인간에게 보내시어 구원으로 이끄는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라면, 구약의 하느님은 분노의 하느님, 폭력의 하느님처럼 보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라는 말씀이 신약의 하느님을 상징한다면, 구약의 하느님은,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탈출 20,5)라는 구절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이중인격을 갖고 계신 분일까요? 이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의 질투하는 모습이 “비윤리적인 인간의 태도에 대한 반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질투’의 감정은 과연 어떤 감정일까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혼인으로 비유되곤 했습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호세 2,21) 한편 성경에서 질투의 감정은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할 때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질투(קנאה 킨아)’는 직역하면 ‘눈의 거슬림’입니다. 즉 하느님의 질투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에 마음 아파하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악에 빠진 인간이 회개하기를 바라는 애달픔, 아픔, 비통함의 감정인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 사랑의 중요한 조건이 ‘회개’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회개란 ‘돌아오는 것’, 회귀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돌아온 이들은 죄에서 자유로워지므로 다시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자, 바로 여기서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이 연결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셨으며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죄를 저지른 이들을 향해서는 단호하게 질책하십니다. 그가 회개하지 않으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어떤 것에 대한 비뚤어진 애착 때문에 (…) 인간의 본성에 상처를 입히고 인간의 연대성을 해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849항) 이러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결국 구약의 하느님 마음은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랑의 열정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돌아봅시다. 소위,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그리스도교인들조차 너무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용인하며 심지어 침묵합니다. 경험과 문화, 성향 등 여러 조건의 차이에 따라 가치 판단 또는 진실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에 〈사목헌장〉은 “사회, 정치, 종교 문제에서 우리와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한다.”고 언급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호의가 진리와 선을 무관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합니다.(28항) 과연 우리는 하느님께 얼마나 열정을 보이고 있는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2024년 11월 3일(나해) 연중 제31주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