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초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러시아군의 강력한 요새에 막혀 지지부진한 가운데, 전선이 흑해 해상으로 급격히 확대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군은 13, 14일 연이틀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 흑해의 제해권을 틀어쥔 러시아 흑해함대와 그 본거지인 크림반도를 집중 타격했다.
우크라이나의 해상 공습은, 부진한 지상 반격 작전에 대한 비판을 만회하기 위한 '의도적인 도발'이라는 해석도 있고, '흑해 곡물 협정'의 파기 이후 러시아의 흑해 해상권에 도전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로제(자포리자)주(州) 남부 전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또 하나의 전선'을 열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의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공습 장면들
엄밀히 말하면, '흑해 해전'은 우크라이나 반격 작전의 3가지 전술 중 하나로 보인다.
러시아 온라인 매체 rbc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 4일 현지 전문가들을 인용, "우크라이나군은 반격 작전에서 3가지 접근 방식을 쓰고 있다"며 △최전선의 지뢰 제거와 △러시아군의 (후방) 물류망과 지휘 센터 파괴, △크림반도및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드론 공격'이라고 간파했다. 지난 4일은 우크라이나 반격 작전이 4개월째(6월 4일 시작/편집자)를 맞는 날이다.
니콜라이 벨레스코프 키예프(키이우) 국립 전략연구소 연구원(сотрудник Киевского национального института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은 FT 측에 "크림반도 드론 공격은 양측이 (군사적 공세의)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흑해 해전'은 크림반도 등을 겨냥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의 일환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동안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우크라이나군의 흑해 해상 공격은 지난 13, 14일 이틀간 집중됐다. 흑해함대의 본거지인 크림반도내 세바스토폴이 주요 표적이 됐다.
우크라이나군의 해상 공세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인지 여부는 이번 공격의 성격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반격 작전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도발'이라면 앞으로 일정한 휴식기를 가진 뒤 또다시 공격에 나설 것이고, 러시아의 흑해 해상권에 대한 도전이라면 조만간 또 미사일·드론을 날려보낼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군의 장거리 미사일·드론 보유량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수상 드론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사뭄'호/사진출처:텔레그램
스트라나.ua는 15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국가보안국(SBU)의 소식통을 인용, 우크라이나 수상 드론(러시아어 표기로는 Морской малюк)이 전날(14일) 크림반도 세바스토폴만 입구에서 러시아 전함 '사뭄'(Самум)호를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사뭄'호는 선미 오른쪽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SBU측은 주장했으나, 러시아 국방부는 거꾸로 적 수상 드론을 파괴했다고 반박했다.
SBU는 또 우크라이나 수상 드론이 러시아 전함을 공격하는 영상을 전격 공개했다. 이 영상은 우크라이나가 수상 드론 3대와 장거리 미사일 10기를 동원해 세바스토폴을 공격한 13일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측이 공개한 수상드론 공격 모습
러시아 잠수함 로스토프나도누/사진출처:위키미디어
이날 공격으로 세바스토폴의 흑해함대 수리기지(Севморзавод)가 타격을 받았고, 잠수함 ‘로스토프나도누’(Ростов-на-Дону)와 상륙함 ‘민스크’(Минск)가 손상됐다. 또 24명이 부상했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미사일 7기를 격추하고, 수상 드론 3대를 모두 파괴했다고 발표했는데, 결국 방공망이 놓친 미사일 3기가 각각 수리기지와 잠수함, 상륙함을 때린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가 쏜 미사일은 영국이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 ‘스톰 섀도(Storm Shadow)’였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니콜라이 올레슈크(Николай Олещук)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관은 15일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흑해 함대를 겨냥한 '스톰 섀도' 공격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공군은 점령군(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서방 측의 두 가지 순항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며 "영국의 '스톰 섀도'를 수호이(Su)-24M 전폭기의 왼쪽에, 프랑스의 '스칼프'(Scalp)를 오른쪽에 걸어놓는다"고 말했다. "독일 미사일을 위한 자리도 남아 있다"고 했다.
미하일 포돌랴크 젤렌스키 대통령의 보좌관은 이번 공습을 “흑해 곡물 협정을 파기한 러시아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자 아프리카 등지로 지속적인 곡물 공급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러시아의 흑해 제해권에 대한 도전을 강조한 셈이다.
스트라나.ua는 "'스톰 섀도'와 같은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이 우크라이나로 이전할 당시, 키예프가 세바스토폴 주변의 흑해함대 함선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자주 논의됐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도 즉각 반격을 시작했다.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을 탑재한 수호이(Su)-24M 전폭기를 추적하는 보복 폭격을 15일 단행했다.
폭격기에 탑재된 스톰 섀도/사진출처:위키피디아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유리 이그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은 이날 "흐멜니츠키 지역이 다시 공격을 받고 있다"며 "적(러시아군)은 흑해 함대 피격 이후 우리 폭격기를 어디에 숨겼는지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격에 나선 러시아 샤헤드 드론 17대를 모두 격추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군의 크림반도 공습에서 또하나 주목을 끄는 것은, 러시아의 최신 방공 미사일 S-400 '트리엄프' 시스템 공략이다. 우크라이나군은 14일 새벽 세바스토폴에서 북쪽으로 60㎞떨어진 '예브파토리야'(Евпатория)에 있는 S-400 방공체계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드론이 러시아 방공 시스템의 레이더를 먼저 공격해 대공 탐지 능력을 무력화한 뒤, 순항미사일 '녭튠' 두 발로 S-400 방어시스템을 파괴했다"는 구체적인 설명도 겯들였다.
S-400은 러시아의 최신 중·장거리 지대공미사일로,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불린다. 저고도로 비행하는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하고 요격하는 역량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도 S-400 피격 사실을 확인하면서 크림반도의 방공망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일 일간지 '빌트'의 시각은 달랐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빌트는 15일 "러시아 본토에서 온 한 관광객의 사진이 우크라이나가 S-400 미사일 단지를 파괴하는 데 도움이 됐을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지난 8월 감사를 표시한 사진 한장을 거론했다. 그 사진은 수영복 차림의 한 남성이 S-400 미사일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감사하며 조롱한 문제의 관광객 사진/텔레그램 캡처
당시 국방부는 조롱하는 투로 "예브파토리야 근처에서 러시아 방공망 단지를 촬영한 이 관광객처럼 계속 좋은 일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그러나 "이 사진은 지난해 공개된 사진"이라며 "이 사진과 S-400 방공망 공격 사이의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