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목양의 차이는 개인의 영성과 열심과는 별도로 이상과 빛비춤의 차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서 봉사하는 사람은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열심과 노력만으로는 할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도처에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열심으로 행하는 자들이 넘쳐나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자들아...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하실것이라는 말씀을 던져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상이 필요하고 이상을 따라 행하는 참된 목양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니골라당의 행위와 육체의 자랑이 만연한 종교안에서 푸른 초장인 교회안으로
우리를 목양하시기위해서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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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실행하는 길 4장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며 어떤 사람들에게 다른 가르침을 가르치지 말것을 명하라고
말하였다....모든 기독교의 교사들이 가르쳐야 하는 유일한 것이 무엇인가?
오늘날의 기독교의 교사들은 장로회, 물에 잠기게 하는 침례, 감독제도, 거룩함, 복음 전하는 법, 성경을가르치는 방법등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유대교의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확실히 잘못된 것이라는데에 동의 하겠지만,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무슨 잘못된 것이라도 있단 말인가?
우리는 복음전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 까지도 분열을 초래할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조금도 파괴하지 않고 항상 건축하고, 함양하며, 온전케 하는 오직 하나의 사역이 있다. 신약성경에서 옳다고 입증되고 장려되고 높혀지고 심지어 영광스럽게 된 유일한 사역이 있다. 계속해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4절에 다르게 가르치는사람들이 무엇으로 점유되어야 하는지 말해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경륜이다.
우리를 회복안에 있도록 보존할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유일한 사역이다. ...심지어 선하고 성경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약경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을 가르친다면 이것은 여전히 분열을 초래 할것이며 간교하고 악한 마귀에게 크게 이용될 것이다. 그러므오 우리는 반드시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건축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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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일방통행적이지만 목양은 상호적입니다.
목회는 은사위주이지만 목양은 생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업적이나 일을 목표로 하지만 목양은 존재를 관심합니다.
목회는 몇몇사람들의 신념과 인간관계에서 시작하지만
목양은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가능합니다.
목회는 한두사람의 영적거인들과 수많은 평신도들의 모임이지만
목양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신성한 생명의 교통입니다.
목회는 성공적인 목회와 실패한 목회로 나누어지지만
목양은 성공적인것도 실패한 것도 아닌 모든 것이 몸의 성장의 과정의 일부분입니다.
목회의 자격은 특정한 자격을 갖추거나 독선적이거나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지만
목양의 자격은 몸의 모든 지체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목회는 개인의 영성을 관심하지만 하나님의 경륜이 없고
목양은 동역이 있고 하나님의 경륜이 있습니다.
목회는 옳고 그름과 행위의 문제의 관점이며
목양은 생명과 건축의 관점입니다.
목회자는 갈수록 점점 커져서 자신이 숨을곳이 없지만
목양은 자신이 점점 작아져서 지체들안에 숨게되어 편안하게 됩니다.
목회는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사역도 끝나지만
목양은 자신이 없어도 사역은 남아서 계속 역사합니다.
목회의 기도는 개인의 신념과 의지와 자기 확신으로 하지만
목양의 기도는 자기부인과 몸안에 주어진 말씀과 빛비춤을 통해합니다.
목회는 감동시키는 설교는 있지만 레마의 말씀이 없고 빛비춤이 없습니다.
목양은 사역이 있고 흐름의 즉각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목회는 축복의 기준이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들이여야 하지만
목양은 환경을 통하여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겉사람이 깨어지고 속사람이 성장하며
생명의 변화와 성숙을 가져오므로 결국은 비밀한 단체적인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날 문제는 생명나무 노선과 선악지식나무의 노선의 문제이고 이것은 종교와 회복의 문제이고
회복의 문제는 교회생활안에 남아있는 종교성과의 싸움인데 이것은 목양의 관점과 목회의 관점의 빛비춤의 관점의 차이입니다.
어떤이가 교회안에서 자기열심과 종교적인 관념으로 행하려 할때
교회는 어려움과 갈등에 처해지게 될것입니다.
이러한 열심과 일은 자동적으로 편당을 나누게 하며 분열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것은 지방교회 사이의 심지를 간검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말씀과 빛비춤의 싸움입니다.
이 말씀과 빛비춤은 개인의 노력이나 개인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의 관점만이 아닌 자신이 서있는 위치의 문제이고 입장의 문제인데 이는 몸의 위치에 있을때만이 하늘에 속한 빛비춤을 얻을수 있고 이
위치에 있을때만 순수성과 변화와 성숙을 논하고 얻을수 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많이 전파하여도 몸의 위치를 떠나서는 목양이 아닌 본의 아니게 목회를 할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은 몸안에서만이 하나님의 경륜안에서의 시대적인 흐름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안에 있는 모든 일과 열심과 사랑은 건축된 방식과 건축의 열매로만 주님앞에 인정 될수 있습니다. 교회안에 필요한 것은 요한웨슬레나 마르틴 루터나 무디같은사람의 출현이 아니라 이상안에서 각자의 일들이 경쟁하지 않고 건축된 목양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는 늘 말씀가운데 전진하고 있고 우리 옛사람 또한 말씀이 전진하는 만큼
부인되어지고 그리스도를 얻을수 있음을 봅니다.
우린 다 목회자가 아닌 목양하는 자이고 목양가운데 있는 자임을 감사합니다.
첫댓글 이글을 통하여 목회와 목양의 차이를 보면서 주님의 확장의 비결을 볼수있었읍니다. 목양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믿는이들의 모두의 부담일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누구라도 그분의 사랑을 안고 그분을 더 많이 나눠줄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주님은 우리를 에덴동산에 두기 원했지만 간사한 사탄과 같은 우리는 그 좋은 동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그 좋은 곳으로부터 추뱡 당했지만 우리 주님은 우릴 버리시지 아니하고 품고 계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푸른초장인 교회 안으로... 아멘!
아멘, 주님의 확장의 비결! 유기적인 상호 목양!
아멘!!
신약 사역 유일한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