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35「대꽃-난중일기 24」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죽창 거두시고 꽃으로 벌하였으니
준엄한 신의 형벌 달게 받겠나이다
절개를
지키지 못한
한 가문의 멸문지화
- 이달균의 「대꽃-난중일기24」
준엄한 신의 형벌을 달게 받겠다는데 죽음 대신 대꽃으로 벌했으니 불명예를 어찌 씻을 수 있으랴. 절개를 지키지 못한 한 가문의 멸문지화이다.
구차한 삶을 이어가는 것은 죽음만 못하다. 대꽃으로 그것을 풍자했다. 지금의 정치 상황과 무엇이 다르랴. 벌을 받아 마땅한데 버젓이 대로를 활보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존심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을 시인은 가슴 아파하고 있다.
단시조는 촌철살인이다. 한 마디 대꽃이 그것이다.
왜 이리 깜박 깜박 잊을 때가 많은지
잠깐 깜박하면 영원히 작별인 걸
며칠 전 좌회전 깜박이를 깜박한 이가 떠났다네
- 이달균의 「깜박이」
잠깐 깜박하면 저승이다. 깜박깜박 잊을 때가 많다. 며칠 전 좌회전을 깜박한 이가 떠났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들은 먼 데가 아니라 바로 옆이다. 망연자실, 깜박했다간 영원한 작별이다.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바람직한 삶을 제시하지 않았다. 일어난 한 사건만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것 하나면 되지 나머지는 구차한 변명이다. 알아서 살라는 얘기이다. 살아가는 방법은 각자의 책임이다. 시조 한 수에 여백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주간한국문학신문,202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