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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힘겨운 한 해를 보낸 한국 경제가 2017년에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성장을 받쳐준 내수는 소비심리 위축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불확실한 대외여건으로 인해 수출에서도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경제 예측 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한다. ‘사상 첫 3년 연속 2%대 성장’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로 제시한 곳은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뿐이다. 지난 10월 3%를 전망했던 IMF는 올해 4월에 하향조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은행은 2.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현대경제연구원은 2.6%, 한국금융연구원·산업연구원은 2.5%, LG경제연구원·한국경제연구원은 2.2%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를 제시했다. 그마저 정치적 불확실성을 반영하지 않아 2%대 초반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 전망 기관들의 성장률 평균치는 2.58%로 다소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2%대 성장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전망 기관들이 전망치 하향조정을 반복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성장률도 1%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 가장 낮은 전망치를 제시한 LG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 전망을 작성한 시점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인 지난 10월 초다.
올해 우리 경제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우선 내수는 소비 유인책이던 정부 정책 효과가 소멸하면서 소비 주체의 힘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 급증한 가계부채가 지갑을 억누르는 가운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국제 유가가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치 리스크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도 부정적인 요소다.
글로벌 투자 위축에 타격받고 있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부동산 경기도 둔화될 전망이다. 또 소비가 부진해 서비스 경기 성장세도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작년부터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수출은 반등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 기조가 수출 증가에 암초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수출이 회복되더라도 2011~2014년의 1조달러에는 못 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올해 우리나라 수출은 반등하겠지만 내수 경기는 부진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주요 산업별 전망도 암울하다. 수출 반등, 국제 유가 상승 등을 등에 업고 정보통신(IT)·석유화학·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이 긍정적인 성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올 3분기 성장을 견인했던 건설 투자는 올해 증가세가 축소될 전망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수 부진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로 생산과 소비 활력이 약해져 우리 경제의 저성장 우려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산업들이 경제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의 틀을 바꾸고 경직된 사회구조도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 경제 위협 요인으로는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충격’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결정되기까지 국정혼란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한 가운데 올해에도 국내 정치적 혼란이 지속될 경우 소비가 위축되고, 투자가 지연될 것은 뻔하다. 이미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국내 정치 불안 이후 소비심리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수준에 근접하게 떨어지는 등 국내 실물경제 위축이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에다 경제 컨트롤 타워 부재에 따라 위기대응, 성장동력 마련과 경제정책 수립 등에도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된다. 정치적 리스크가 국내 경제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면 2%대의 성장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해외 기관의 시선은 싸늘하다. 무디스는 최근 한국과 대만의 신용등급을 비교한 보고서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치적 리스크가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정치상황으로 인한) 정책 지연이 경제·재정 지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연관된 현재의 스캔들은 이런 전망을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탄핵과는 별개로 올해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도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대선이 치러지는 해의 경제성장률이 평년보다 0.5%포인트 하락한다고 발표했다. 대선으로 인해 정책적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소비와 기업 투자 역시 부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우선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리스크로 꼽힌다.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공약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무역환경에 적신호가 켜졌다.
무역 제재 등 보호무역주의 확산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지난 수년간 통화 가치 절하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던 세계 각국이 이제는 점차 내수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등 선진국에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중국과 함께 무역 제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철강·화학·전기전자 등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단가 경쟁이 심한 산업의 수출 차질이 예상된다.
최근 미국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 최대 수준에 근접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적자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반덤핑 조치 등 미국의 대중국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하면 미·중 간 통상마찰이 깊어진다. 결국 중국을 우회한 한국 제품 수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를 강하게 반대하는 중국의 보이지 않는 보복성 움직임도 걸림돌이다. 한류나 한국산 제품을 금지한 한한령(限韓令)·금한령(禁韓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한국산 전기차 배터리 인증기준 강화, 한국산 폴리실리콘 반덤핑 조사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비관세장벽 확대는 올해에도 수시로 재현될 전망이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각국이 자국 산업 위주의 성장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며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나서고, 중국·멕시코에 대한 관세장벽 강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미국은 소비·고용은 회복세를 지속하지만 저유가 및 대외 여건 악화로 투자·수출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 신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유념해야 한다. 미국 신정부의 정책은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부동산 과열 위험과 부채 리스크로 성장률 하락세 지속이 불가피하다. 특히 중국 기업의 부채 리스크가 우려된다. 2015년 말 기준 중국 총부채는 GDP 대비 254.8%에 달하며, 이 중 67%가 기업 부채다. 부채 증가보다 더 큰 문제는 중국 기업들의 수익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차원의 정책 대응도 마땅치 않다. 유럽과 일본은 마이너스금리까지 시행하고 있지만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임금 및 물가상승 우려로 미국은 오히려 금리를 올리고 있다. 지난해 이후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완화에 따른 은행 대출 증가가 경기 개선을 뒷받침해 왔으나, 저금리로 은행 건전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추가 완화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올해 중 정치·사회적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투표 가결에서 보듯이 경기부진 장기화, 난민 및 테러 문제 등으로 각국의 극우정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 자국중심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올해로 예정된 유로존 각국의 선거 및 브렉시트 협상을 전후로 보수화 경향이 표출되면서 탈EU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유지호 포스코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치·사회적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유로존 투자가 위축되고 소비심리도 저하될 것”이라며 “이러한 리스크는 한국 수출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유가다. 원유가가 오르면 석유 수출국에 대한 경제 전망이 밝아진다. 반면 한국과 같은 석유 수입국은 원유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월 15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직후 “유가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며 “유가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국 정부와 산업계는 유가 동향에 관심을 기울인다. 지난해 초 배럴당 29달러까지 급락했던 유가는 지난 12월 13일 56달러까지 치솟았다. 18개월 만에 최고치다. 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원국의 감산 합의와 트럼프 당선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감에서다.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세가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여전히 많은 원유 재고량과 셰일가스 증산 가능성, 미국의 금리인상 등은 유가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세계에너지기구(IEA)는 OPEC 감산 합의 이후 첫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의 추가 상승은 OPEC 회원국의 감산 합의 이행에 달렸다”고 예상했다. 앞서 IEA는 올해 하반기까지 원유 시장이 공급과잉 상태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애널리스트들은 OPEC의 협약 이행 가능성에 비관적이다. 원유 중개업체인 PVM은 “OPEC의 큰형 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추가로 생산량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반대로 보면 사우디의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사우디를 비롯한 OPEC 회원국이 변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석진 원자재해외투자연구소 소장도 “올해 국제 유가는 배럴당 40~60달러의 박스권에 머무를 것”이라며 ”최근의 유가 급등세는 공급 감소 기대감에 따른 것일 뿐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이어 “중국의 원유 수입 감소 추세와 선진국 위주의 경제 회복세는 원유 수요 확대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공급 측면에서 미국 셰일 가스 업체의 생산 재개 여부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제 유가가 50달러 중반대를 넘어서면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국제 유가가 오르면 미국 업체들이 셰일가스 생산에 나설 것이고, 이는 다시 공급에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금리인상 리스크 역시 최근 고조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12월 15일 기준금리를 0.25% 인상했다. 이번 금리인상은 예상된 절차라 단기 충격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부터다. 미국 금리인상 속도가 빠르면 신흥국의 자본 유출이 심각한 수준까지 갈 수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외환위기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국 경제 역시 어려움을 겪을 여지가 많다.
대부분 기관들은 12월 금리인상 이후 미국의 금리는 아주 완만한 속도로 인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기 호조세와 국제 유가 및 물가 상승의 영향으로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리스크 고조
국내 금리 상승의 경우
부실 기업, 부실 위험 가구 급증으로
은행위기 발생 가능성도 생겨
신흥국 경기 침체로
한국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
골드만삭스는 2017년 미 연준의 금리인상 횟수가 최대 4회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JP모건은 각각 3회, 2회에 걸쳐 인상될 것으로 봤다.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미국이 올해 최소 2회 이상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미국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국내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실물경제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국내 경기가 장기간 침체된 가운데 미국 금리인상 여파로 돈줄까지 말라버리면 국내 경기는 급속히 냉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라 국내에서도 금리가 상승할 경우 한계기업의 부실이 증가하고 13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로 인한 부실 위험 가구도 급증하는 등 은행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수출 다각화를 모색해 온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신흥국 경기침체를 유발해 우리 수출에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對)신흥국 수출비중은 총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올해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을 기대해온 중남미·아프리카 등은 미국 금리인상으로 경기회복 시점이 늦춰지면서 한국 기업의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 대만, 아세안 국가 등이 연쇄적으로 금융불안에 빠지면 국내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등 업종의 타격도 불 보듯 뻔하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치 불안,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급랭 가능성 등 국내 경제 리스크가 미국 기준금리인상과 결합하면 국내에 주는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흥국의 외환불안 가능성도 여전하다. 그동안 선진국의 저금리를 바탕으로 누적된 신흥국의 부채가 미 금리인상과 맞물릴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이너스금리 정책이 은행 수익성 저하로 이어지면서 위험기피 경향을 확대시키는 등 정책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특히 유럽 은행들의 손실이 확대될 경우 기존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불안이 확산될 우려도 있다.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전문가들의 주문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다. 나라에서 지금보다 돈을 더 풀라는 얘기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앞서 반세계화 정서, 보호무역주의 심화 기조에 대한 경고와 함께 한국 등 재정여력이 있는 국가들이 세계경제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한 바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공공 인프라 구축 등에 투자를 늘리는 방법으로 적극적인 재정 지출 필요성을 역설했다.
OECD 역시 최근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적정 수준의 총수요 관리를 위해 지금보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 등을 언급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위협할 우려가 있으니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덧붙였다.
KDI도 팽창적인 재정정책과 함께 상반기 추가경정예산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준경 KDI 원장은 “국내외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팽창적인 재정정책 등으로 노후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경제 주체들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경제활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