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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오케톡톡 친구 여러분- 어제 축구 정말 근사했죠? 오늘 아침 잠꾸러기 꼬마녀석을 깨워도 이 녀석은 "5분만, 5분만"하며 영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자애로운 모친 엄하게 질타했죠. 그러자 이 녀석- "엄마, 내가 늦게 일어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어제 누나랑 요앞 공원에서 12시까지 월드컵 응원하느라고 너무 힘들었어요" 어쩝니까? "아-그러셨냐"고- "빨리 학교나 가시라"고 할 수 밖에요. 저도 사실 어제 특파원으로 떠나는 기자송별회 자리가 있어 그만 눌러앉아 '토고전'을 보고 늦게야 집에 들어왔거든요. 2대1의 멋진 승리 - 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무려 2만명의 교포응원단(신문에는 15000명이라고 하지만 독일현지에서 경기를 보신 분은 오늘 전화로 2만명이라고 하시네요)이야말로 제게는 '감동'과 '감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간 응원단은 천명 남짓, 나머지 그 거대한 응원단은 유럽 각지에서 모인 우리 교포분들이었습니다. 이국에서 고국을 생각하며 얼마나 목이 터져라 응원했을까, 또 2대1로 승리했을때 그 분들이 얼마나 기뻤을까는 상상하고도 남습니다. 한국땅에서 즐겁게 신나게 응원하는 우리보다 더 깊고 복잡한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일본 특파원 시절 '가장 기뻤던 날'을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것은 바로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날'이었습니다. 타국살이의 설움과 고단함이 한방에 날아간 가슴뛰는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황영조선수처럼 날다시피 뛰어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힘이 넘치더군요- TV화면 경기장 관중석에서 보이던 꽤 나이든 교포분들- 보도에 따르면 베를린, 라이프치히에서 8시간 넘게 차를 몰고 '민족의 대이동'을 한 셈입니다. 간호사로 광원으로 그 옛날 이국땅을 밟았던 분들에게 8시간, 500킬로미터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옛날 그토록 머나먼 고국땅에 비하면 말입니다. 이분들은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해준 분들입니다. 그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이분들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빌렸습니다. 당시 간호사, 광원으로 독일에 온 우리 교포들과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 생각만 해도 이 글을 쓰는 저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참 어렵게 만들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 오빠 그리고 누이들이 지킨 대한민국입니다. 자신을 위해 단 한푼도 쓰지않고 모조리 동생 공부시키고, 집안살림을 위해 모조리 송금했던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바로 어제 '월드컵'토고전의 거대한 대한민국 응원단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 분들이야말로 오늘의 우리를, 우리나라를 있게 한 영웅들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유신때 대학을 다닌 저는 반박정희주의자였습니다. 독재정권으로만 저는 박정희시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뒤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비교하고 견주어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만일 우리 시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산업화의 공은 박정희 대통령만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산업화의 탁월한 리더'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존재를 부인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시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는 이 나라와 비슷했겠구나, 이 나라 처럼 됐겠구나- 하는 '현실'에 바탕을 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40이 훌쩍 넘어서야 비로소 박정희 대통령과 '화해(?)'를 할수 있었습니다. 그의 공과 과, 빛과 그림자를 공평하게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풍요'의 꿈을 꾸게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솔직히 박정희 대통령시대가 없더라도 우리 나라의 상류층이나 중산층은 그럭그럭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뼈빠지게 일하고 그럼에도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이들에게 박정희 시대는 '할수 있다'는 희망과 더불어 가난을 벗어나게 했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모순을 품고 있습니다. 박정희 시대는 계층화니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본다면 박정희대통령은 '가난'을 면하게 한 시대적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즉 가장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큰 일'을 한 셈입니다. 그리고 산업화세대는 유럽의 월드컵 응원단도 가능케 했고 우리 동네 아직 철모르는 꼬마들에게 신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게 했습니다. 월드컵의 열기속에서 저는 우리나라의 과거를 통해 이제 미래를 보려 합니다. 페어플레이의 스포츠처럼 이 땅의 모든 일이 땀흘리는 이들에게 감동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물론 가져봅니다. 다시 한번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감사합니다. 2006년 6월14일 전여옥 올림 “후손은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게…반드시…“ 朴대통령 말에 모두 눈물 |
첫댓글 good.
당근입니다..뭐가 서럽다 서럽다 해도..배고픈것 만큼 서러운것이 없다고 했읍니다.울나라 지금의 젊은이들은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하였읍니다ㅣ,그래서 배고픈 서름을 전혀 모릅니다..늘 빵과 쌀이 넉넉 한줄만 알았지요..\ 박대툥령 은 우리나라에 중시조 입니다..진정한 대한민국을 밝혀준분이십니다.
박대통령이었기에....오직 가능했든것이라 생각함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없었다면,,,뭐 4자로압축하면 ----쪽빡찻찌 여자들은 회외로나가 허드렛일 남자는..3D업종에 일하며 개패듯 마구두들겨맞겠지 그리고 서러워 흐는껴울겠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