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9/06 11:26
현역 군복무의 공백기간은 선수들에겐 치명적이다. 제대를 하고 돌아오면 불러주는 팀이 없을 뿐더러 설사 야구를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마음과는 달리 몸과 기량이 따라주지 않는다. 새로운 선수의 등장으로 설 자리도 좁아져 2군을 전전하다 유니폼을 벗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은 군복무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부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 과정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해 감동 스토리를 전해주는 선수도 있다. 역대 프로야구 선수 중 촉망받는 선수였다가 일반 현역병으로 입대한 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사례와 현역 군복무의 공백을 이겨내고 팬들의 가슴에 이름을 새긴 선수들을 살펴보자.
◇ 군복무는 선수생명의 무덤
프로야구 원년 멤버 중에 빼어난 기량을 발휘하다가 군복무 후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들이 제법 있었다. 82년 OB 주전 3루수로 활약한 양세종은 빼어난 기량과 핸섬한 마스크로 수많은 팬을 몰고 다녔다. 첫해 승리타점 1위(9개)를 차지하며 OB의 원년 우승에 기여한 그는 84년 0.301의 타율에 6홈런 47타점을 기록하며 올스타와 함께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골든글러브 시상식 다음날 논산 훈련소로 직행했다. 자랑스러운 예비역 육군병장으로 3년 뒤 프로야구에 복귀했지만 이름 없이 90년을 끝으로 은퇴하고 말았다.
롯데 원년 멤버인 정학수도 군복무로 선수생명이 단축됐다. 작달막한 키에 독특한 타격폼으로 롯데의 1번타자를 맡았던 그는 82년과 83년 수준급 타격을 겸비한 2루수로 맹활약한 뒤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86년 다시 돌아왔지만 89년까지 그저 그런 선수로 지내다 유니폼을 벗었다. 빠른 발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외야수 김재상도 85년과 86년의 군복무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91년 태평양에서 선수생활을 마쳤다.
이밖에 현재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바람에 팬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는 선수도 있다. 두산에서 불펜투수로 활약한 뒤 특전사에 들어간 잠수함투수 장성진이 대표적이다. 2001년 두산 1차지명 선수인 투수 한규택과 그해 2차지명 포수 이대현은 지금 군복을 입고 내년 2월에 제대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궁금하다.
◇ 무덤에서 피어난 꽃
단기사병이나 공익근무요원, 상무 입대가 아닌 현역병으로 군대를 갖다온 뒤 프로야구의 스타로 우뚝 선다는 것은 사실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이들에게는 또다른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올 시즌 신인왕 후보로 급부상한 중고신인 권오준이 대표적인 선수다. 권오준은 선린상고 시절부터 ‘제2의 임창용’으로 평가받았다. 99년 졸업과 동시에 당시로서는 거액인 2억4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지만 팔꿈치 수술 후 사실상 선수생활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고향인 강화도 해병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했다. 그는 “3개월쯤 지나자 야구를 너무 하고싶었다. 집으로 출퇴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웨이트트레이닝과 수영으로 2시간 이상을 쏟아부으며 몸을 만들었다. 부대에서 시간이 나면 동료들과 테니스 공으로 야구를 하는 게 전부였지만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그는 입대 전까지만 해도 70㎏ 중반대의 몸무게였으나 지금은 80㎏ 후반대의 건장한 체격으로 변했다.
롯데 노장진은 원조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입단 이듬해인 94년 입대해 1997년 2월 제대할 때까지 유격대 조교로 활동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제대 후 군인정신을 살려 고교시절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답게 일급투수로 성장했다.
◇ 야구를 다시 시작했지만
전남 신안 출신의 기아 최향남은 ‘제2의 선동열’로 불릴 정도로 공이 빨랐지만 90년 해태에 입단한 뒤 이듬해부터 현역으로 입대했다. 태권도 유단자가 돼 돌아왔지만 설 자리를 잃고 헤매다 20대 후반의 나이가 돼버린 97년 LG로 트레이드된 뒤부터 제대로 된 공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는 2000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은 뒤 현재 기아에서 선수생명을 겨우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 양평의 모 기계화 보병사단에서 철모를 쓴 양용모(현 삼성 2군 배터리코치)는 군 복무 후 선수생활을 계속했지만 활약은 미미했다. 그는 “다시 야구를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야구를 알 만 했을 때 군대에 입대해 인생을 놓고 방황했다. 다시 야구를 하기까지 그 어려움과 설움은 말로 못한다.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욕심을 내다가 다치고 결국은 백업요원으로 선수생활을 끝냈다. 그래도 야구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96년 사실상 테스트를 받고 삼성 2군으로 들어가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노장진은 특별한 경우다”고 고백했다.
이재국 기자
첫댓글 준혁아빠(No.10)도 있는데 거론조차 안됐네 ㅠ.ㅠ
양평 모 기계화사단. 나도 거기서 한달간 있었는데-.-
저는가평 모기계화사단에..한달간있었는데..-_-
서용빈선수도 가평 모 기계화사단에 한달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