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37「선유」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꿈속은
쪽빛 바다
파도가 출렁이고
때로는
비바람치고
삼킬 듯한 태풍 분다.
이 속에
노를 저으면
처용이 가고 있다
- 최정란의 「선유」
태풍 속을 노를 저으며 가고 있다. 처용이 가고 있다.
왜 여기서 처용이 나오는가.‘선유하다 들어와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갑자기 뒷통수를 얻어맞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느닷없는 처용의 등장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종장에서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뜬금없어야하고 엉뚱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놀라고 당황한다. 무슨 말이 장황한가. 말을 질질 끌고 다니지 말라. 시간만 끌 뿐이다. 뒤집기 한판, 업어치기 한판이면 그만이다. 이것이 시조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둠이 짙어와서
그리움 한소쿠리
무릎 아래 부려지고
빈 가슴
슬몃 드는 초승달
눈물 마른 쪽잠 하나
- 김대식의 「실루엣, 봄 저녁」
그러거나 말거나 겉으로 무심한 체 했다. 그런데 가슴에 슬몃 초승달이 들어와 시인은 쪽잠이 들었다. 눈물이 말랐다. 초승달과 쪽잠 그리고 어둠과 그리움. 시인은 언어를 부릴 줄 안다. 시조를 안다. 이런 여유만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시조의 매력은 이런 것이 아닐까.
말 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그 차이는 무엇일까. 시인은 말했는데 분명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는데 분명 말을 했다. 논리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다. 불이(不二)의 세계 같은 참으로 묘한 엠비규어티이다. 이것이 시조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