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38「이별」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계절처럼 겸손한 속도로 찾아왔으면
눈물보다 조금 적은 웃음도 있었으면
가만히 뒤돌아 서서 잠시 머물러 줬으면
- 이태정의 「이별」전문
계절처럼 겸손한 속도, 눈물보다 조금 적은 웃음. 빠름과 느림, 슬픔과 기쁨이 어찌 궁합이 이리도 잘 맞을까. 언어와 언어가 결합할 때는 섬광 같은 스파크가 생긴다. 빛의 색깔도 각양각색이다.
이별했는데 뒤돌아서서 머물러 줬으면 싶다니 아무 소용도 없다. 떠난 사람은 왔다 해도 또 떠난다. 그걸 알면서도 미련이 남는다. 사람의 본능이다.‘이별의 아픔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화학반응도 절제하고 있음을 본다.
이별을 안 해보곤
시 쓸 생각 말란 말에
임이 떠난 후라서
한 줄 겨우 쓰려는데
연정도
가져가 버려
끝내 쓰지 못하네
- 천금태의 「연시」전문
쉽게 썼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필 같은 붓 가는대로 쓴 글이다. 가만히 들여다보자. 맞는 말이다. 이별을 하지 않고 이별의 시 쓸 생각을 하지 말아야한다.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것을 안다.
연정이야 어찌 가져갈 수야 있겠나. 그런데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시를 못 쓰겠다는 것이다. 마음이 순수하지 않다면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없다.
빵은 물질적 양식이나 사랑은 정신적 양식이다. 신은 우리들에게 사랑의 기쁨과사랑의 슬픔을 함께 주었다.
씨줄과 날줄로 짜아가는 피륙은 시인들의 몫이자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주간한국문학신문, 2024.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