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은 조선 왕조 최대 위기였던 임진왜란(1592~1598)을 배경으로 조정을 이끈 선조와 재상 류성룡(柳成龍·1542~1607)을 비롯한 조정 중신들의 사투를 쓴 이야기로 류성룡이 전쟁 후에 집필한 책이다.
KBS는 정통 사극의 부활을 알린 '정도전'의 성공 방식을 다시 꺼내 들었다. 사료와 고증에 충실한 대본은 물론, 왕이 아닌 신하가 주인공이고 기존 사극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들을 재조명한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1회에선 선조시기 동서붕당(朋黨)과 기축옥사를 다루면서 서인의 막후 실세로 활동해 '조선의 숨은 왕'이라는 평까지 받는 송익필이 비중 있게 등장했다.
"이순신 장군은 당연히 나오지만, 주인공은 아닙니다." 연출자인 김상휘 PD는 "'불멸의 이순신'이나 '명량' 등 기존의 임진왜란을 다룬 작품이 이순신 위주였다면 징비록은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다"고 말했다. '징비록'은 사극에서 조연에 머물던 류성룡을 주연으로 내세운 첫 드라마다. 덕분에 '징비록' 제작 소식이 알려진 작년 6월 이후 지금까지 시중에 출간된 징비록 관련 도서만 15종에 이를 정도로 류성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드라마도 임진왜란의 개별 전투보다 선조와 류성룡이 펼친 외교에 방점을 찍는다. 김 CP는 "준비를 하면서 보니 임진왜란은 한·중·일이 얽힌 국제전이더라"며 "각국 지도자들이 전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벌이는 수 싸움을 조명하는 데 비중을 뒀다"고 말했다.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 이순신에 가려졌던 선조 역시 재조명된다. 선조 역을 맡은 김태우는 "전쟁 초기 선조의 몽진(蒙塵) 때문에 '나라 버린 왕'이란 이미지가 있다"며 드라마를 통해 그의 고뇌와 그런 결단을 내려야 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징비록'이 역사에 충실한 사극을 내세우고 있지만, 함정은 여전히 있다. 1·2회에서 동·서인 간 갈등을 그리면서 동인인 류성룡의 반대편에 선 정철 등 서인들이 음모가처럼 묘사되는 것이 그 예다. 드라마의 뼈대인 책 '징비록'도 류성룡의 편향이 들어갔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김시덕 교수는 류성룡이 '징비록'을 쓰면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사건을 해석하거나 후일 가필(加筆)한 부분도 있다며 주인공을 무조건 미화하기보단 당대의 복잡한 상황을 두루 보여주는 게 더 정확한 드라마를 만드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