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고 매끄러워야 할 것은 주얼리뿐만이 아니다. 이번 시즌 걸들을 ‘자체 발광’하게 해줄 소재들의 요건이기도 하다.
Fancy Glossy
페이턴트도 있고 글로스 처리한 가죽도 늘 있어왔지만 이번 시즌 글로시한 가죽에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할 듯하다.
샤넬 컬렉션에서 린제이 윅슨이 입은 레드 오버코트 속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얇은 양가죽 안쪽에 체크 패턴 안감을 덧대 안과 겉이 완벽히
드레스업된 럭셔리한 소재라는 것. 프로엔자 슐러 듀오는 반짝이는 가죽에 레이저 펀칭을 가미하거나 스네이크 스킨과 패치워크하는 방식으로 미래적인
무드를 내는 데 성공했다. 매 시즌 페이턴트를 사용하는 뮈글러 컬렉션에서도 한 가지 양념을 추가했다. 래커 처리를 한 듯 찐득찐득해 보일 뿐
아니라, 클라스 올든버그의 아트워크 같은 그래픽을 넣어 마치 프라이탁 가방을 연상시킨 것. 미우 미우의 페이턴트처럼 보이는 가죽의 정체는? 늘
신소재 개발의 사명을 안고 있는 미우치아 프라다의 신작인 시레(Cire)로, 폴리우레탄에 레진을 입힌 새로운 패브릭이다. 연약한 가죽보다
견고하며 동물 애호가들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
Plastic Girl
최근
주목받고 있는 사이몬 로샤의 플렉시 소재에 열광했던 소녀들은 이번 시즌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될 듯하다. 투명하고 반짝이는 플라스틱들, 아주
얇은 비닐 소재부터 딱딱한 PVC까지 투명 플라스틱 소재들이 대거 등장했으니 말이다. 헬무트 랭의 미니 드레스와 스커트에 쓰인 비닐 소재들은
슈퍼마켓에서 사용하는 봉투를 연상시켰지만 컬러 블로킹된 재킷이나 블랙 팬츠와 매치됐을 때 매우 쿨해 보였다. 노란 비닐 봉투 원피스는 이번 주말
바로 클럽에 입고 가고 싶을 정도. 버버리 프로섬의 PVC 케이프나 홀리 풀턴과 샬롯 론슨의 잘 만들어진 블루종은 단순히 레인코트라 칭하긴
아깝다. 앤 발레리 하쉬 컬렉션에서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빛깔로 보이는 비닐 블라우스가 등장했는데, 컬렉션의 테마인 ‘일렉트릭 누드’가 이번
시즌 비닐들이 어떤 위상을 갖는지 명확히 설명해준다. 커다란 유행인 퓨처리즘과 시스루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소재인 것! 비닐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보일 뿐일 수도 있다. 록산다 일린칙의 피날레를 장식한 비닐 드레스가 오간자 소재에 라미네이팅 처리를 해 바스락거리고 미끈거리는
효과를 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가공을 통해 쿠튀르 퀄리티를 지니고 있으니 무시하지 마시라. 발렌티노의 플라스틱 트렌치 코트는 뱀피를 믹스했고,
뤼 드 메일 컬렉션에서는 지오메트릭 비닐이라는 명칭하에 비닐 위에 자수나 아플리케로 그래픽적인 패턴을 넣었다. 플라스틱의 지위 상승은 런웨이
룩에서도 증명된다. 이들의 파트너는 가죽 뷔스티에와 이국적인 느낌의 가죽 스커트, 실크 슬립 드레스처럼 고상한 아이템이었으니까.
Foil For Me
버버리
프로섬의 색색깔 메탈릭 트렌치 코트 피날레는 앞으로 다가올 포일-라이크 패브릭의 역습을 예상케 했다. 버버리 프로섬의 트렌치 코트 소재는
금속사를 직조한 후 메탈릭 마감을 해 빛을 반사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여기에 스플래시 선글라스까지 쓴 모델들은 그야말로 포일 시크의 메신저들.
마치 평행 이론처럼 조나단 선더스 역시 미끌거리는 메탈릭 패브릭에 미러 선글라스를 매치한 ‘사이파이(Sci-fi) 메탈릭’ 콘셉트를 선보였다.
또 다른 포일 시크 전도사는 알렉산더 웽. 레이저 커팅된 딱딱한 실버 의상들은 마치 알루미늄 갑옷처럼 보였는데, 피날레 때 조명이 꺼지자
야광으로 빛나기까지 했다. 빅터 앤 롤프의 거울처럼 반짝이는 라메 드레스는 마치 머핀 컵 같았다. 쇼 타임은 이제 그만, 리얼웨이에서 포일
시크를 소화하기 위한 가이드도 있다. 리드 크라코프 컬렉션에서는 뱀피와 크로커다일 가죽을 은빛으로 코팅했는데 심지어 부드럽기까지 해 ‘슈퍼 럭스
패브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스타일링까지 슈퍼 쿨! 커피색 2호 스타킹을 연상시키는 시스루 톱을 매치한 룩은 이번 시즌 포일-라이크
패브릭을 어떻게 입으면 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되어준다. 조금 캐주얼한 자리라면 데렉 램 컬렉션처럼 베이식한 스웨트셔츠를 곁들이는
것만으로도 오트 캐주얼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Bubble Bubble
“나를
다룰 땐 조심해주세요!”라고 외치는 듯한 레이디들이 니나 리치 컬렉션에 등장했다. 취급 주의 물건을 포장하는 에어 캡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패브릭들이 트렌치 코트와 재킷, 스커트 수트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컬렉션 전체에 사용된 피시 넷 모티브를 메탈릭 패브릭에 엠보싱 처리한
것이다. 몇 시즌간 미끈거리는 소재를 믹스하는 재능을 발휘해온 페드로 로렌코 또한 퀼팅 처리한 메탈릭 패브릭으로 에어 캡 효과를 냈다. 마이클
코어스 역시 에어 캡 쇼츠를 선보였는데 이것은 앞의 예와 반대로 패브릭에 볼록한 시퀸을 달아놓은 것이다.
Rubber Lover
“걸들은
약간의 러버를 더한 걸 좋아하죠”라고 확신하는 크리스토퍼 케인의 이번 시즌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자신의 레이블에서는 전기 차단용
고무 테이프를 마구 뜯어 붙인 모양의 디테일로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으며, 머리를 묶는 고무 밴드를 엮어 만든 것 같은 이브닝 드레스를 선보였다.
레고 오타쿠들이 좋아할 만한 플라스틱과 크레욜라 컬러로 가득했던 베르수스 컬렉션에서는 니트와 실크 드레스에 고무 액을 덧입히는 기법을 활용했다.
이것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데도 기여했지만 반짝이는 효과를 내는 데도 성공적이었다. 조나단 선더스의 스트라이프 패턴 또한 새로운 라미네이팅
기법을 활용한 것인데, 마치 고무 테이프를 쫙 붙인 듯한 느낌을 냈다. 고무 놀이에 동참한 또 다른 이는 바로 질 샌더 여사. 비눗방울처럼
홀로그램 광택이 나는 도트 패턴은 코튼 피케 표면에 반짝이는 고무를 쾅쾅 찍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