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2:13~18
우리들은 지나온 모든 시간을 혼자 걸어오지 않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알 수 없는 시간의 길도 여전히 혼자 걸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함께 동행 해 주실 것이고, 저와 여러분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앞서 준비해 주셔서 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에 우리들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헌신의 모습을 소유하면 되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그 어떤 자리나, 위치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의 생활이 되기 위해 마리아와 요셉처럼 여호와를 기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기관장님들과 주향기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예수님의 잉태 소식과 탄생이 기쁨과 꿈과 희망의 소식이었지만, 고난의 시작점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기본적으로 행복, 기쁨, 설렘만 있을 것 같은데 실제 마리아와 요셉에게는 고난이 더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헌신의 생활엔 항상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저와 여러분에게 푸른 초장이 되는 발판과 쉴만한 물가로 이끄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현재 겪는 고난과 앞으로 겪게 될 고난 너머에는 항상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과 사랑이 언제나 우리 안에 충만히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마음과 눈과 귀가되어 언제나 여호와께서 저를 기뻐하시면이 되는 믿음의 고백이 있는 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축복이었을까요? 불행이었을까요?
이 물음을 살펴보기 전,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탄생에 요셉이라는 남자를 선택하셨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받을 준비가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 마리아는 결혼 전 아이를 가졌는데, 이 시대 문화는 결혼 전 다른 이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해야하는 것이었고, 또한 남자와 그 집안의 명예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요셉은 이런 모든 것을 감당하고 품어 안을 준비가 된 남자였고. 예수님 탄생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동방박사 여기까지는 해피 엔딩. 고생 끝 행복시작 인 것 같던 것이 돌변하여 불행의 시작으로 나타남> 이 모든 것을 감당 할 수 있는 남자인 요셉을 하나님이 선택 하셨고, 요셉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그 길이 힘들고 어려웠을 지라도 항상 피할 길과,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 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이것이 헌신이고, 이와 같은 헌신을 주향기교회와 그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이십니다. 그렇기에 요셉과 마리아가 걸어간 그 헌신의 생활이 우리들의 생활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축복이었을까요? 불행이었을까요? 고난의 연속이었죠.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말씀 하신 모든 것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좋고 희망적인 것만 보려는 마음 때문에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오늘 기관장 헌신예배로 드리면서 각 기관장으로 세워주심에 감사드리고, 올 한 해를 위한 기관장 헌신예배를 통해 주향기교회와 모든 성도님들의 헌신이 하나님의 생각에 맞춰지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헌신은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의 임하는 자세와 생활은 언제나 주께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주의 일을 할 때 이렇게 하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엡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6:7]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러면 주께 하듯 하는 헌신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마리아와 요셉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들의 일부분만 보면 모든 영광과 축복을 한 몸으로 받은 것으로 보이기에 부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가브리엘 천사에게로부터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임심하였는데, 그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당연히 좋았겠죠. 만왕의 왕이 자신의 아들이잖아요. 그런데 그 생각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현실을 맞이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 헌신으로 인한 어려움과 고난을 인내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는 올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자신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현실을 맞이할 때 언제나 바울 사도가 말하는 주께 하듯 하는 생활처럼 포기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자신들이 가야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헌신의 생활을 살아갔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랬기에 지금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끝없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요셉이 마리아를 맞이할 때 감당하기 어려운 비난을 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 문화 통념 상, 혼인 전 임신 즉, 요셉을 통한 임신이 아닌 상황에서 아내를 맞이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결정하고 견뎌내는 것 역시 힘들 것입니다. 아무리 천사를 통해 전해 들었어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주께 하듯 하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현실일지라도 그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헌신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헌신입니다. 이 헌신의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더 좋은 것을 받고, 누릴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헌신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것은첫째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는 힘을 보유하는 것이고, 셋째는 변함없는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보다 좋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감사함으로 헌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물로 우리들이 연약하여 주께 하듯 하는 길에서 헤맬 때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내 안에서 주의 사랑을 찾아 내셔서 여전히 힘이 되어주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 숙명적으로 내 삶의 시간에 펼쳐져야 하는 것입니다.<숙명 = 날때부터 타고난 운명, 피할 수 없는 운명)
마리아와 요셉의 고난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헌신의 길이 어려웠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동방박사들의 선물을 받았을 때 행복의 시작이라 생각했지만 그 행복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헤롯 왕이 죽이려했기에 지낼 곳이 없는 이스라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도망치는 험난한 생활을 살아야 했습니다.
애굽에서의 생활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아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타국 생활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이 보여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의 생활의 열매는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구원의 축복의 장이 되었습니다.
오늘 기관장님들의 헌신 예배를 통하여 마리아와 요셉이 보여준 헌신의 생활이 우리 주향기교회 기관장님들로 시작되어 모든 성도님들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갈 앞으로의 모든 시간들이 언제나 주께 하듯 하는 헌신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혼자 두지 않으시는 축복으로 내 생활의 결실로 수확되는 앞으로의 모든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