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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호산아] ☆ 낙동강(洛東江) 1,300리 종주 대장정 (4)
생명의 물길 따라 인간의 길을 생각한다! 강은 드디어 바다가 되어 하늘과 만나게 되나니!
☆ [낙동강 종주 대장정 출발(제1일)] * 제1구간 (1) (황지→장성) ☆
▶ 2020년 08월 03일 (월요일)
* [황지를 중심으로 한 태백시]
☞ 태백시는 시의 북쪽에 백두대간 매봉산(1,300m)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에는 함백산(1,573m), 서남쪽에는 태백산(1,567m), 동쪽에는 연화산(1,171m)이 있으니 낙동강 물길[황지천]이 흘러가는 남쪽만이 큰 골짜기로 틔어있다. 지형으로 보면 태백시는 백두대간 매봉산-함백산-태백산 감아 돌아가고 동쪽은 높은 연화산이 솟아 있으니, 태백은 그야말로 산중 심곡의 분지이다. 철암역에서 연화산을 넘어 동해 삼척으로 넘어가는 동해선 철길이 연화산 동백산역에서 연화산 터널 속을 한 바퀴 또아리를 틀고 넘어가는 험난한 고지이다. 옛날에 장성광업소, 도계광업소 등 탄광이 한창 성업을 할 때 황지는 그 광업소 배후지역으로 남쪽의 장성읍과 함께 흥청거리는 산골마을이었다. 지금은 장성읍과 황지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개편되어 태백시(太白市)가 되었다. 남쪽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과 도(道) 경계를 이룬다. 그러므로 태백시는 강원도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이다. 그 태백시 한 복판에 황지(黃池)가 있다.
* [구국 기원 고천제(告天祭)]— 낙동강 종주 대장정의 출발지, 황지(黃池)
☆… 낙동강 종주에 앞서 태백산 정상 천제단(天祭壇)에서 고천제(告天祭)를 올리기로 했었다. 출발 하루 전, 태백산에 올라 ‘하늘에 고하는 제’를 올리고, 다음날 아침 황지(黃池)를 기점으로 대장정에 들어가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호우경보가 내려져 태백산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에 산을 오르지 못했다. … 오늘 아침에는 비도 그치고 하늘에 옅은 구름만이 드리워져 있어, 이른 아침, 태백산 산행 들머리인 유일사 입구(주차장)까지 나아갔으나 아직도 통제가 풀리지 않았다. …
어쩔 수 없이 태백 시내 황지(黃池)로 돌아와 ‘낙동강 1300리 예서부터 시작되다’ 빗돌 앞에 제단을 마련하고 고천제(告天祭)를 올렸다. 소박하게 차린 제단에 제주인 이상배 대장이 경건하게 술을 따르고 세 번 절을 올렸다. 그리고 필자가 작성한 ‘축문(祝文)’을 낭독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 권력의 독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실상을 하늘에 고하는 ‘태백산 고천문(告天文)’이었다. 구국의 염원과 함께 이번 대장정에 들어가는 대원들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했다.
☆ 태백산 고천문(太白山告天文) ☆
유세차(維歲次) — 단기 4353년 경자년 8월 3일, 이 강산과 이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배 대장을 비롯한「낙동강 1300리 종주」대원은 백두대간 태백산 천제단에서 삼가 하느님께 고(告)하나이다.
예로부터 산자수명한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불리어 왔으며, 우리의 국토를 하나의 축으로 잇는 저 장엄한 백두대간을 비롯한 모든 산수(山水)는 우리 민족 생명(生命)의 근원이며 삶의 터전입니다.
특히 낙동강(洛東江)은 태백시 서쪽에서 남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白頭大幹)과 태백시 동쪽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낙동정맥(洛東正脈) 사이의 모든 산곡(山谷)에서 솟아나는 물들이 모여 흐르는 장강(長江)으로, 총 길이 1천 300리, 510km에 달하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장장 1천 300리를 두 발로 걸어서 간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 여정입니다. 한여름의 비정한 폭양의 세례를 받으며 … 낙동강 물길을 두 발로 걸으며 낙동강이 우리에게 베푸는 미덕을 생각하며, 어기차게 살아온 우리 생애를 강물에 풀어보고자 하옵나이다. 그러므로 낙동강 종주는 겸허한 인생 순례(巡禮)의 길입니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물의 미덕(美德)을 다음과 같이 갈파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공을 다투지 않고, 모두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므로, 도(道)에 가깝다. 낮은 땅에 처하면서도 마음은 깊은 심연으로 향한다. 남과 함께 하면서 늘 한마음이 되고, 말을 하면 (말없이) 미덥다. 다스리면 잘 다스려지고, 일을 하면 큰 능력을 발휘하며, 움직이면 늘 시의(時宜)에 맞는다. 애당초 남과 다투지 않으니 … 허물이 없다.”
그렇습니다. ‘물’은 생명 그 자체이면서 그것이 지니고 있는 물성이, 곧 천지자연의 이치이고 인간이 살아가야 할 도리인 것입니다. 낙동강은 무한한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생명의 강물입니다.
이렇듯 낙동강은 자연과 인간의 도(道)가 도도히 흐르는 물길입니다. 이번 ‘낙동강 대장정’은 조상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나아가 앞으로 사람다운 사람의 길을 구하고자 하나이다.
백두대간의 맑은 정기가 솟아나온 낙동강! — 물은 생명이요, 강은 생명의 길입니다. 그 맑은 물이 수많은 지류를 받아들이며, 하나의 장엄한 강물이 되듯이,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지혜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저 양양한 한마음의 바다로 가고 싶습니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말처럼 천하의 모든 강물은 산(山)으로부터 흘러나와 온전히 한 몸이 되어 흐릅니다. 그러므로 ‘산이 물이요 물이 곧 산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낙동강을 따라 걷는 것은 일상 속의 한 열렬한 지향이고, 순수한 생명에 대한 동경이며, 그래서 마음이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작금 이 나라엔 전대미문의 코로나 역병(疫病)이 만연하고 거기에다 정치적 광풍(狂風)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분열의 정치, 온갖 권모술수로 국정을 농단하는 정권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입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편향된 이념'이 상식과 진실을 짓밟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온갖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무엇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입니다.
아아, 하늘이시여! 대한민국이 수렁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부디 굽어 통찰해 주옵소서!
성현이 이르기를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데가 없다.(獲罪於天 無所禱也)”고 했고, 또 “하늘을 따르는 사람은 살고, 하늘을 어기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고 했습니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모인 여기 태백산에서, 자비로운 하느님을 우러러, 눈물겨운 심정으로 국가의 위기를 하느님께 고(告)하니이다. 부디 이 아름다운 강산을 지켜주시고, 우리 국민을 코로나 역병에서 구해주시고, 나아가 우리 지도자의 마음을 바로 잡아주시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한민국을 구해 주시기를 피 끓는 심정으로 호소하나이다.
단기 4353년 8월 3일,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과 우리의 강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상의 뜨거운 숨결 따라 ‘1천 3백리 낙동강을 종주’에 들어갑니다. 우리의 ‘구국기원 국토순례 대장정’이 무사히 이루어지기를 삼가 하느님께 머리 숙여 비나이다.
— 상향(尙饗)!
* [황지, 오전 10시] — 낙동강 1300리 종주 대장정, 역사적인 장도에 오르다!
* [오늘의 여정 ①]▶ 태백시 낙동강(황지천] 강변도로→ 황지천 ‘한마음교’ 앞→ 태백 상장동 벽화마을(화방재 소도촌 합류)→ 웰빙쉼터(거송)→ 태백종합경기장→ 고원체육관→ 태백영락교회-장성여고→ (하문곡교 앞) [강 따라 구 도로→ 동아공업사(구조물)→ 생명샘교회]→ 태백초등학교→ 금천 합류(태백산 금천골 들머리)→ 보드미교-장성 태백병원 / 소방서-장성읍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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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 정각, 조촐하지만 경건하게 고천제(告天祭)를 올린 이상배 대장과 오상수 대원을 비롯하여 기원섭, 이진애, 김옥련 대원은 태백시 황지(黃池)에서 낙동강 종주 대장정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낙동강 대장정 제1구간 강원도 황지에서 출발하여 장성과 구문소를 경유하여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까지 내려가는 여정이다.[지도] 다행이 비는 오지 않았다. 살짝 구름이 드리워져 있지만 쾌적한 날씨. 비온 뒤 강산은 맑았다. 약간의 서늘한 바람기도 있어 걷기에 아주 좋다. 출발점 황지를 떠나, 아름답게 정비된 골목으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를 따라 진지한 행보를 시작했다.
* [낙동강의 원류 ― 태백시 황지천(黃池川)] ☞
황지(연못)의 에메랄드빛 맑은 물이 낙동강의 본류인 황지천(黃池川)에 흘러들면서, 수량이 풍부해진 물줄기는 힘차게 흐른다. 실제 황지천의 발원지는 태백시 북쪽 매봉산(梅峰山) 천의봉(天衣峯)에 있는 ‘너덜샘’이다.(지리학계에서는 이곳을 낙동강의 발원지로 규정한다.) 우리가 걷는 길은, 좌측으로 청랑한 낙동강(황지천), 우측은 차들이 다니는 도로이다. 우리의 여정은 이 31번 국도의 보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어제는 폭우로 인해 누런 황톳물이 강둑을 가득 채워 넘실거렸는데, 하룻밤 사이,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강물은 어느 정도 정화(淨化)되었고 수량도 거의 원상에 가깝게 줄어들었다.
* [태백시 상장동 소도천 합류 ― 강 따라 가는 길, 웰빙로드] ☞
태백소방서 앞을 지나니, 낙동강은 상장동 삼거리에서 백두대간 ‘화방재’에서 내려오는 ‘소도천’이 합류한다. 이제 시내를 벗어난 도로[31번국도, 태백로]이다. 우리가 걷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보도를 걷기에 편안하게 우레탄으로 포장하여 ‘웰빙 로드’로 정비해 놓았다. 길을 따라 한 구비 돌아 한참을 내려오니 장대한 거송이 두어 그루 서 있는 강변에 이르렀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산뜻한 공간을 만들어놓고 ‘웰빙쉼터’라고 적어 놓았다. 물이 흐르는 강 건너편은 숲이 우거진 절벽,이다.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더욱 청랑하다. 맑은 기운이 감도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쉼터는 거송 아래 나무테크로 마루를 깔고 앉을 자리까지 깔끔하게 조성해 놓았다. 대원들이 출발 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휴식을 취했다. 고천제에 올린 제물과 막걸리로 음복을 했다. ‘천리를 가는 길이니, 마음 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금물입니다. 천천히 천천히 강산을 음미하면서 걸으세요.’ 이상배 대장이 말했다. 하루의 일정을 생각하여 보속을 조절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앞서서 걷지 않았다.
* [31번 국도 ― 태백시종합경기장, 고원체육관] ☞
웰빙쉼터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종주(從走)에 들어갔다. 오른쪽에서는 자동차들이 오고가지만, 가까운 거리의 물소리가 더욱 청랑하게 들린다. 간밤에는 적응되지 않은 잠자리와 빗소리, 그리고 고질적인 객수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런데도 오늘 몸 상태는 아주 양호했다. 맑은 공기 때문일 것이다.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걸어가는 대원들도 모두 건강한 발걸음이다.
길은 강물을 따라 크게 한 구비 돌아간다. 강 건너편에 '태백시종합경기장'이 보인다. 다리[문백교] 건너면 연화산 유원지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거기, 종합경기장 위쪽에 두 개의 보조 경기장(축구장)이 있다. 프로축구팀이 청정지역인 이곳에 전지훈련을 하도록 기획한 시설이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니 역시 강[체전교] 건너 산기슭에 체육관(고원체육관)이 보인다. 우리가 걷는 길목에는 문곡광산 근로자 임대아파트가 있다.
* [장성여고 ― 태백영락교회] ☞
강(江)의 한 구비를 돌아내려오니 강[문양교] 건너 완만한 산기슭에 고원아파트가 타운을 이루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어도 낙동강은 흐른다.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이 우리의 걸음보다 빠르다. 우리가 가는 길[태백로]은 강을 따라 크게 S자를 그리며 돌아간다. 강[일광교] 건너편에 ‘장성여자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고, 태백산 골짜기에 흘러내려오는 지천이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면, 엄청난 수량이 휘감아 돌아가는 강의 절벽 위에 우뚝 ‘태백영락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강물은 교회 아래 절벽을 치면서 멀어져 가고 우리의 길은 직진한다. 조금 내려오니 우회하여 내려온 강을 다시 만난다. 길은 ‘하문곡교’를 건너서 직진하는 도로로 나아간다.
* [하문곡교 얖 ― 물길을 따라가는 구도로] ☞
우리는 직진하는 다리[하문곡교] 앞에서, 오른쪽 물길을 따라 난, 구 도로로 들어섰다. 직진한 도로와는 어디에선가 만날 것이다. 호젓한 구 도로는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한참을 우회하여 가는 길이지만 차들이 다니지 않은 쾌적한 강변길이다. 두어 차례 크게 구비를 돌아가는 물길은 아주 길었다. 그러나 호젓하고 상쾌한 길이다. 동광사 입구의 표지판 앞을 지났다. 강물도 완만하게 휘어지면서 조용히 흐른다. 강[문곡교] 건너편에 문곡아파트군이 있고,좀 떨어진 곳에 거대한 철제구조물이 보인다. 이 구조물이 유명한 장성광업소 수직갱(垂直坑)의 리프트를 운행하는 철탑으로 생각된다. 구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물길은 길었다. 완만하게 휘어지는 물구빗길을 돌고 마을 앞을 지나기도 했다. 정류장이 있는 것을 보니 마을버스들이 다니는 길이다.
* [신흥교 ― 태백초등학교, 태백문화원] ☞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니, 직진해 오던 도로가 강[신흥교]을 건너오면서 우리와 합류했다. 오른쪽 언덕에 새로 지은 듯한 새 아파트군이 있다. 아파트는 제법 산뜻하게 정비된 도시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도로의 건너편, 알록달록 예쁘게 단장한 ‘태백초등학교’가 시선을 끈다. 학교는 싱그러운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그 정취가 자못 산뜻하고 아름다웠다. 역시 초등학교는 시골에 있는 학교가 명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앞에 ‘태백문화원’이 보인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문화원으로 들어갔다. 마스크를 했다. 여직원 한 분이 포장작업을 하고 있었다. 방문자 명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서 화장실을 이용했다. 손을 씻고 소독약을 발랐다.
* [계산교 ― 태백산 '금천골' 입구 ― 장성 태백병원] ☞
그리고 다시 길 위에 섰다. 휘어지는 길, 도로의 보도를 따라 다리[계산교]를 건너. 한 구비를 돌고 나니, 오른쪽으로 다리[금천교]를 건너 산속으로 쭉 들어가는 도로가 보인다. ‘태백산 국립공원’ ‘금천골’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반나절을 걸어 왔는데도, 아직 태백산 산역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다시 직진하는 길이다. 강은 이제 길의 오른쪽에서 흐른다. 고개를 들고 보니 강 건너 저만치 비교적 큰 백색의 건물이 보인다.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도시가 ‘장성읍’이다. 우리가 걷는 보도에서 도로를 횡단하여 ‘보드미교’를 건너 읍내로 들어갔다. 장성읍은 태백시 안에서 황지를 제외하고 가장 큰 부락이었다. 장성광업소가 성업 중일 때는 가장 큰 산중 도시였다.
* [아, 장성, 장성광업소] ― 여기가 어디인가!
그런데 이곳 장성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눈물겨운 추억이 있는 곳이다. 나는 일찍이 정성광업소 채탄부 막장까지 들어가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 시절은 나에게 지하의 막장만큼이나 참 암울하고 힘든 시기였다. 1963년 중학교 3학년 초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연로하신 아버지와 갓 스무 살 넘은 바로 위의 누나와 함께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다. 누나가 편물을 하여 근근이 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지역의 명문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고등학교 진학할 형편이 못되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 지역 고등학교에 3년전 광산과(鑛山科)가 새로 생겨 거기를 지원하게 되었다. 공립 ‘문경종합고등학교 광산과’였다.(1964~1966) ‘거기 졸업하면 취직이 잘된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한 것이다. 다행히 장학금을 받게 되어 3년 동안 크게 도움을 받았다.
당시 형편이 어려운 농촌지역의 (공부좀 하는) 많은 친구들이 광산과에 다녔다. 당시 문경에는,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 흑연을 생산하는 봉명광업소[성균관대학교 전 법인을 맡았던 봉명그룹의 모태기업] 그리고 연탄산업으로 재벌이 된 대성산업(주) 불정광업소 등이 성업 중이어서, 지역의 명문 인문계 고등학교에 광산과, 건축과, 토목과 등을 개설하여 '종합고등학교'로 교명까지 바꾸었다. 당시는 산에서 나무베는 것을 금지하고 모든 가정에서 연탄을 연료로 쓰던 시절이어서 석탄 수요가 급증, 탄광 산업이 크게 번창했다. 당시 탄광이 성업하여 문경의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광산과 재학 중에는 탄광에 견학이나 현장실습을 나간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견학을 나갔지만 방학이 되면 일주일나 한 달 동안 직접 작업현장에 실습을 나가게 된다. 나는 광산과 2학년 겨울방학 때 같은 과 친구 다섯명과 한 조가되어 이곳 강원도 장성광업소로 한 달 동안 실습을 나온 적이 있다. 55년 전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의 광산촌은 차갑고 엄혹했다. 세상은 온통 눈으로 덮혀 있고 길바닥은 얼어서 얼음장이었다. 인생이 추웠다.
당시 이 지역은 파기만 하면 광맥이 발견되어 곳곳에 탄광이 개발되었다. 당시의 광산은 사갱(斜坑)[경사진 갱도]을 만들어 지하로 파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장성광업소는 1964년 우리나라 최초로 첨단의 수직갱을 뚫어 채탄 작업과 운송의 효율성을 기하고 있었다. 1km 이상을 뚫고 내려간 수직갱의 중간 중간에 수많은 수평갱을 뚫어 탄맥을 찾아 석탄을 캐어 나오는 시스템이다.
1965년 그해 겨울 나도 안전모와 마스크를 쓰고 고글과 헤드램프를 장착한 후, 지하 1km의 땅 속으로 수직갱의 리프트를 타고 들어가 지하 막장에서 에어콤프레서 드릴로 채탄하는 작업을 도운 일이 있다. 탄맥을 찾아들어가는 좁은 굴 속, 지하의 뜨겁고 음험한 기운과 탄가루가 자욱한 막장이었다. 땀이 온몸을 흥건하게 적시는 캄캄한 막장에서 드릴과 곡괭이에 찍혀 떨어져 나오는 석탄 원석들, 그 석탄 파편들이 램프의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번쩍 빛을 발한다. 수억, 수십억 년 동안 깊은 땅 속에 매장되어 있다가 억센 광부의 팔뚝에 의해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검은 진주’, 석탄이다.
나는 까맣게 탄가루를 뒤집어 쓰고 일을 하는 막장의 광부를 보며 숭고한 성자의 모습을 느꼈다. 나도 어떻게 어떻게 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저 광부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어놓고 이 깊은 지하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탄광이든 인생이든 막장은 앞이 가로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이다. 오직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눈물은 유치한 감상이다. 궁즉통이라, 오직 뚫어야 산다. 눈물이 아닌 뜨거운 땀방울만이 목숨을 살리는 길이다. 살아야 한다!
17세 어린 나이에 경험한 지하의 막장은, 이후 무시로 나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아프고도 소중한 경험. 막막하지만 불끈 생(生)의 근육이 살아나는 현장이다. 당시 함께 실습을 나간 친구들이 만나면, “우리는 이래 봬도 인생의 막장까지 가 본 사람이다!” 하고 말하곤 한다. … 그런데 광산과를 졸업하고서 광산에 취직한 친구는 거의 없다. 모두 지하가 아닌 지상의 꿈을 찾아 세상으로 나아갔다. 유수한 기업의 사장도 있고 특히 학교의 선생님이 된 친구들이 많다. 삼영전자(주) 사장 김대호, 서울 명일초등학교 교장 서종태, 문경시교육청 홍남섭, 단양우체국장 고재우 등이 그들이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사북탄광에 실습나간 문경관광고등학교 교장 전병대도 있다. … 나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맨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 대학에 진학했다. 막장을 치고 올라온 67학번이다.
서울에 와서 나는 가정교사를 하면서 대학에 다녔다. 당시 서울에서도 집집마다 구공탄을 사용했다. 겨울이면 골목마다. 연탄재가 쌓인 것을 본다. 나는 그 연탄재를 볼 때마다, 장성광업소 수직갱을 타고 내려가 그 굴속의 지하 막장에서 보았던 그 빛나던 광석을 생각했다. 그리고 암울한 막장의 숨 막히는 현장을 떠올린다. 아, 그 빛나는 광물이 자신의 온몸을 벌겋게 태워 그 역할을 다하고 이제 가난한 동네의 골목에 버려진 것이다. 한참 후에 나온 안도현의 시「너에게 묻는다」를 읽고 온몸이 전율했다. 그 시를 접할 때마다 내 자신을 생각하며 나의 가슴은 후끈거리곤 한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 (하략)…
—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 [태백시 장성읍 ― (점심) 막국수는 강원도의 힘이다!] ☞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침에 준비해 온 물도 다 떨어지고 문득 배도 많이 고팠다. 그러고 보니 장성에는 두 번째로 온 것이다. 55년전이나 지금이나 장성에 올 때는 늘 배가 고프구나! 생각하며 유창하게 흐르는 강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아아, 세월이 강물처럼 흐른다! 오늘 밝은 여름날 내가 찾은 장성은, 엄혹했던 옛모습을 떠올릴 어떤 것도 없었다. 낡고 지저분한 탄광촌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평온하기 그지없는 산중도시이다.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방황하고 있는 내 마음을 한때 가두었던 춥고 어두웠던 장성 ― 오늘 나는 강물을 따라 흐르는, 허허로운 나그네가 되어 이곳을 지나간다. 조용히 눈물이 흘렀다.
이 대장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했다. 다리를 건너 약국에 들어가, 그 주인이 가르켜준 맛집을 찾아 장성중앙시장까지 나아갔으나 그 유명한 맛집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결국 우리는 평범한 음식점에 들어가 간편하게 ‘막국수’를 먹었다. ‘막국수’는 언제 먹어도 맛이 있다. 어제도 태백에서 ‘막국수’를 먹었는데, 오늘 다시 먹어도 좋다. ‘막국수’는 강원도의 힘이다. …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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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변화한 장성에서 55년전 학창시절 아련한 옛 모습이 기억이 나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고문님! 남은구간 무사히 완주하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