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가 누리는 복
오늘 블루마운틴에서 내려와 호주 사모세미나가 열리는 와이용 (Wyong)에 왔습니다.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리조트입니다.
골프장 안에 있는 이곳 경치도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고 기가막힌 풍경이 펼쳐져도 제 마음은 온통 앞으로 전해야 할 말씀에 대한 생각 뿐입니다.
설교는 목회자만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이면서 동시에 가장 심각한 좌절입니다.
저는 설교의 중압감을 말씀 그 자체이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해결하곤 했습니다.
주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는 메시지를 먼저 제가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 때 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깨달아져, 기도 중에 울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어느 전도사님이 “설교를 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하고 물어 왔을 때, “전하려는 설교대로 살아본 후에 설교해 보세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어떻게 설교하여야 교인들이 감동할까?’ 만 고민합니다.
설교자 자신이 전하는 설교대로 살지 않으면 교인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설교자가 그 말씀대로 산 설교는 그 자체가 능력이고 감동입니다.
전하려는 설교대로 살아보면 주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주님의 마음과 다른가를 깨닫고 놀랍니다.
제가 진정한 은혜를 깨닫지도 누리지도 못하기 때문에 ‘믿으라, 기도하라, 기뻐하라, 사랑하라, 헌신하라’ 는 식으로 설교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괴로운 것입니다.
설교는 설교자인 저 자신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 뿐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교인도 은혜의 삶을 살 믿음과 용기와 기대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누구나 기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기뻐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전도하게 되고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면 그렇게 살게 된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제 설교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설교를 잘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가 먼저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설교하지 않았다면 깨달을 수 없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은혜에 눈이 뜨이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느냐 적게 모이느냐가 상관없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의 반응이 미지근해도, 심지어 돌을 던진다 해도, 상관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깨닫게 해 주시니 충분합니다. 설교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을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미 충분히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설교자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증인일 뿐입니다.
저는 설교 때문에 제 신앙이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매주 나의 신앙을 드러내고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듣는 일에 도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충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