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경험의 기록과 전승
-구자행 샘의 실천 기록을 읽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는 학문이 바탕이다. 교육과정은 학문의 지식을 학교 급별로 어느 범위까지 얼마나 깊이 가르칠까를 담는다. 교사는 학생이 알아듣도록 교육과정을 다시 구성한다. 존 듀이는 이를 두고 교과 논리의 심리화라고 했다. 지식이 많아도 학생이 알아듣지 못하면 소용없는 이치다. 그래서 학교 교육에서는 학생에게 뜻깊은 교육활동과 수업이 중요하다. 교사는 교육활동과 수업을 통해 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교육어)을 터득한다.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20년 넘게 실천한 교육 경험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교사의 교육 경험이 후배 교사에게 잘 전승될수록 교육은 잘 될 것이고 학생은 성장할 것이다.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2024년 1월호에서 구자행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고등학교에서 시 맛보기와 시 쓰기(132-166)’에서 구자행 선생님은 지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의 알맹이를 알기 쉽게 정리하였다.
나는 시 하면 비유, 직유, 은유, 환유, 3 4조, 7 5조, 주제, 소재, 상징 같은 개념이 떠오르고 밑줄을 친 다음 그 뜻이 무엇인지 답을 맞혀야 하는 경험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다. 도대체 시가 무엇인지 아직도 뚜렷하지 않다. 초등 저학년부터 시가 나오는데 시가 무엇인지, 시보다 먼저 글은 무엇인지, 시를 읽고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몸으로 체득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만나서 조금 느끼게 되었고, 박문희 선생님의 마주 이야기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말한 것을 읽으며 이래서 말을 하고 글을 쓰는구나 싶었다. 구자행 선생님의 글은 이렇게 하면 고등학생들도 시를 읽고 쓸 수 있겠다 싶었다.
시는 그리는 시와 말하는 시로 나눌 수 있으며, 말하는 시는 다시 혼자 말하는 시와 말을 건네는 시로 나뉜다. ❶그리는 시를 읽을 때는 대상이 담고 있는 느낌이나 상징을 읽어야 하는데 뜻 겹침(비유), 뜻 건넘(상징)이 알맹이다. ❷혼자 말하는 시는 화자가 처한 처지와 그 마음을 읽어야 하며, ❸말을 건네는 시는 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읽어야 한다. 그리는 시는 대상이 초점이고, 혼자 말하는 시는 화자가 초점이며, 말을 건네는 시는 청자가 초점이다. 이 갈래는 시를 읽을 때뿐 아니라 시를 쓸 때도 쭉 쓰인다. ➀한 대상을 붙잡아 시 쓰기는 대상에 눈길이 가닿고, 그 대상에 마음이 오래 머물고, 그런 다음 그 대상을 자세히 그려내야 한다. ➁혼잣말로 제 마음을 담아서 시 쓰기는 절실한 제 마음을 드러낸다.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는 마음이 일렁이는데 이 마음의 움직임을 잘 붙잡아 보여준다. ➂말을 건네는 시 쓰기는 상대(청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뱉어낸다. 참았던 말을 속 시원히 풀어내는 시다. 이에 따른 교육방법은 그리는 시는 대상을 자세히 보고 그리도록 가르쳐야 하고, 혼자 말하는 시는 상황을 또렷하게 그리도록 가르쳐야 하며, 말을 건네는 시는 꼭 하고 싶은 말을 했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설명으로 끝나지 않도록 갈래에 알맞은 본보기 글을 내보인다. 본보기글은 고등학생들의 또래글뿐 아니라 박문희 선생님의 유치원 마주이야기 글부터,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서 나온 초등학생 글까지 아울러 보여준다.
이와 같은 구자행 선생님의 실천은 여러 깨달음을 준다. 첫째, 가르칠 지식을 통틀어 가장 알맹이가 되는 지식(부르너의 핵심 아이디어)을 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쉽게 알려준다. 그리는 시, 혼자 말하는 시, 말을 건네는 시는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페북 글(2024.1.23)에서 본 것인데 우리 말법을 설명할 때 ❶꾸미는 꼴과 ❷푸는 꼴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도 훌륭했다. 우리말은 ‘두 잔의 커피’라고 하지 않고 ‘커피 두 잔’이라고 한다든지, ‘참 밝은 달이구나’ 하지 않고 ‘달이 참 밝구나’ 한다는 것이다. 푸는 꼴로 된 문장이 우리말답고 자연스럽다고 한다. 『국어 시간에 소설 써 봤니?』에서는 ❶적기 ❷쓰기의 차이를 학생들에게 물어가며 소설 쓰기를 끌어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대로 옮기는 적기와 나름의 경험의 판단이 들어간 쓰기의 차이는 소설 읽고 쓰기의 알맹이를 학생이 쉽게 깨우치게 한다.
둘째, 지식을 묶는 안목이 뛰어나다. 이는 물론 학생들을 가르치며 반응을 깊이 관찰하고 연구한 열매이다. 이홍우는 학문과 지식을 가르치는 까닭을 안목을 주기 위함이라 했다. 안목은 교사가 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기존의 지식을 묶을 수 있을 때 기를 수 있다. 나선형 교육과정은 가운데를 비우고 계속 둘러싸거나, 앞에서 가르친 것은 되풀이 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차시만 가르쳐서는 이룰 수 없다. 밑바탕이 되는 알맹이는 늘 되풀이되어야 한다. 그러하려면 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써야 다음 지식을 붙여나갈 수 있다.
셋째, 초등 국어교육에서 내가 고민하던 지점과 겹쳤다. 나는 알맹이(핵심 아이디어)를 으뜸꼴이라 여겼다. 초등 튼튼학교(1-3학년, 기초 튼튼), 슬기학교(4-6학년 생각 키움)로 구분하고, 일곱 선 동무로 한글 가르치기, 한 음절 낱말로 어휘 불리기, 깔대기꼴로 글쓰기, 알자더알(알맹이, 자세히, 더 자세히, 알짜) 말하고 쓰기 으뜸꼴, 생왜예그꼴(생각, 왜냐하면, 예를 들면, 그러니까)로 생각 펼치기, 물하따꼴(물론, 하지만, 따라서)로 반례 들기 따위다. 이렇게 한 까닭은 학생들이 듣고, 말하고, 읽고 쓰기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고 의미 있게 써먹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저학년 단계에서 겪은 일을 넉넉히 말하고 쓰기를 하고 다음 단계는 겪은 일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쓰는 에세이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고민하고 있다. 어린 단계부터 지나치게 빨리 갈래 구분을 하여 가르쳐서 오히려 학생들이 시, 동화, 소설을 멀리하고 삶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겪은 일을 넉넉히 말하고 여기서 나온 느낌과 생각을 넉넉히 쓸 기회를 주면 좋겠다. 교과서에 시, 동화는 많이 나와도 정작 자기 삶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시, 소설로 가기 때문에 교과서에는 학생들이 쓴 글이 별로 없다. 교사로서는 뼈 아픈 일이다.
구자행 선생님은 2021년 양철북에서 20년 동안의 교육 실천을 담아 『국어 시간에 시 써 봤니?』, 『국어 시간에 소설 써 봤니?』 책을 냈다. 국어교육을 하는 사람은 박문희 샘의 마주 이야기 관련 책들, 이오덕 샘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관련 책들, 그리고 구자행 샘의 시, 소설 쓰기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2024.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