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 여행2 - 조에쓰시 다카다에서 일본 3대 밤 벚꽃으로 이름난 다카다성을 보다!
우리 부부는 니가타현 남부에 설국의 도시 에치고유자와 에서 신칸센을 타고는
나가오카 長岡(장강) 에 도착해 메이지유신의 전장터 나가오카성 을 보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동해(일본해) 바다를 달려 나오에쓰 直江津(직강진) 를 지나.....
조에쓰시 上越市(상월시) 다카다 高田(고전) 역에 내려 15분 남짓 시내를 가로질러 걸어서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옛날 성의 해자인 강에는 연꽃 이 가득 자라는 모습을 봅니다.
연(蓮) 은 전쟁과 흉작으로 빈궁해진 다카다한 高田藩(고전번) 의 재정을 세우기 위해서
다카다성 바깥 해자에 연을 심어 연근 을 수확한 것이 시작이라고 하는데
아름다움과 규모에서 동양 제일이라니 해마다 연꽃 이 피는 7월 하순에 축제 가 열립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다리를 지나 강을 건너가노라니 개중에는 막 분홍빛깔 연꽃 이 피어
나는 모습도 보이고..... 춘하추동 을 읊은 시비며 조각상 들이 늘어서 있어 볼만합니다.
다카다코엔 高田公園(고전공원)은 에도 막부 번주 마쓰다이라 다다테루 가 쌓은 다카다성
(高田城고전성) 으로 여기 밤벚꽃춪제 요자쿠라는 일본 3대 밤벚꽃노리아는데 예전에는
4월에 왔던지라 산에는 눈이 쌓여있고, 성 주변에는 벚꽃이 만개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기 조에쓰시 다카다성 밤 벚꽃 축제 는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성 공원, 도쿄 우에노온시 공원과
함께 일본 3대 밤 벚꽃 축제에 들 정도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또는 히로사키성과 우에노
를 빼고.... 오사카성에 시코쿠섬 고치성 그리고 여기 다카다 코엔을 3대 요자쿠라 라고도 합니다.
공원과 주변에 10여종 4000 그루의 왕벚꽃 나무가 앞다투어 피는 벚꽃의 계절이 되면
이곳에서는 "다카다성 백만인(百萬人) 벚꽃 놀이" 가 개최된다는 데....
이 축제는 1926년 부터 개최됐으며 올해는 4월 2일부터 18일 사이에 열렸다고 합니다.
사메가성 (鮫ヶ城 상어성) 또는 세키성 (関城)으로도 불리는 다카다성 高田城(고전성)
은 16세기 일본의 센고쿠(전국) 시대에는 이웃 가스가야마 산성 에
자리잡은 에치고국(니가타현) 의 용 이라고 불리었던 우에스기 겐신 의 영지였습니다.
일본 무로마치 막부 시대인 1467년 쇼군 아시카가 가문에서 어린 아들과 삼촌 사이에 서로
쇼군직 계승을 놓고 교토에서 10년간 시가전 이 벌어져 교토의 절반이 불타니 이를
오닌의난 應仁亂 이라 하는데, 승부가 나지 않으니 지방에서 올라온 무장들은 전리품을
분배받지 못하자 전비를 감당할수 없는지라 귀향해 독립하니 다이묘로 센고쿠 시대 입니다.
영주 중에 교토로 올라가 쇼군 을 차지하려는 야망을 품은자 다케다 신겐 인데 나가노에서
20년간 다섯차례 전투를 치르며 저지한 자가 니가타의 우에스기 겐신 이니 그가 죽고
아들 가게카쓰 대에 이르러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세우고 일본을 통치하면서... 우에스기 가문을 견제 하고자 자기 아들 을 보냅니다.
곧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6남 마쓰다이라 다다테루 松平忠輝 가 부임해 축성했는데 설계와
감독은 다다테루의 장인 센다이의 다테 마사무네 가 도와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다테 마사무네는 센다이의 용 으로 20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일본의 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야심찬 인물인데.... 이에야스는 사돈을 맺어 쇼군 히데타다의 상담역 으로 모십니다.
센고쿠(戰國 전국) 시대 오랜 전란이 끝난 탓인지 다카다 성은 보다이가하라(菩提ヶ原)
에 지어진 평지성 으로 중심에 혼마루를 두고..... 그 주위를 니노마루가
둘러싸고 있으며 니노마루의 남쪽에 산노마루를 북쪽에 기타노마루를 배치하였습니다.
주변 세키가와강과 아오다강 을 해자 로 삼았으며 흙으로 쌓은 토성 으로 석벽이
일체 없는데..... 저습지 에 축성한 탓에 배수 기능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의 천수각 은 1614년 3층 3계로 지어져 오산가이 야루라 즉 3층망루로 불리는데....
성주 다다테루의 고향인 에도성(도쿄) 의 후시미 망루를 닮았다고 전해져 옵니다.
성주 마쓰다이라 다다테루 松平忠輝 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6남으로 원래 성씨는 마쓰다이라
(松平 송평) 였었는데 이에야스가 성공한후 도쿠가와 로 바꾸지만 일족은 옛날 성씨를
썼으니, 다다테루는 시나노 18만석 마쓰다이라 야스타다에게 입양 된뒤 성씨가 또 바뀐
것이니 다다테루는 마쓰다이라씨 - 도쿠가와(德川)씨 - 마쓰다이라씨로 성이 바뀐 것이네요?
1610년에 도쿠가와 가문에 액운이 들어 도쿠가와 이에야스 의 차남 마쓰다이라 히데야스,
사남 마쓰다이라 타다요시, 오남 다케다 노부요시 세명이 차례로 죽으니...
마쓰다이라 다다테루 는 엉겁결에 “사실상 차남” 이 된지라 영지는 62만석으로 늘어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왕이나 쇼군 중에는 유레를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자녀가 많으니
부인 10명에 자녀가 16명 인게 놀라운데, 하지만 조선의 세종은 부인 13명에 자녀가 25명
이니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종 보다 위가 있으니 태종은 자녀가 29명 이고, 성종은
28명, 선조가 25명에 정종은 23명이니 여자 거느리는 것은 조선의 왕들이 한수 위인가 합니다?
미카와국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8살에 스루가국(시즈오카현) 에 인질로 가서 성장해
영주 이마카와 가문의 여인 과 결혼해 낳은 장남 노부야스 는 오다 노부나가 의
사위 가 되었으나 고부간 불화 로 다케다가와 내통 한다는 혐의를 받으니...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의심을 풀기위해 1579년 "처와 장남을 자결" 시켰던 것이지요?
이후 1605년에 들어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쇼군직을 장남은 옛날에 자진시켰고 차남은
병으로 죽었으므로 사실상 장자가 된 3남인 히데타다 에게 물려주고는 시즈오카현
슨푸성(시즈오카) 으로 내려가 오고쇼 라 불리며 조선의 태종 처럼 후견정치 를 합니다.
62만석을 받은 다다테루 는 우쭐해져 셋째형인 쇼군 히데타다와 대립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사카성 을 탐냈는데, 이는 태평양을 건너 스페인에 자신의 가신을 사신으로 보낼 정도로
엣날 부터 외세 지향적이었던 장인 센다이 번주 다테 마사무네 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의 사돈이자 센다이번의 번주인 다테 마사무네 는 일본 동북지방
의 미야기현에 센다이시를 건설 한후 태평양을 넘어 "에스파냐와의 통상" 을
꾀했으니... 1613년 센다이 영내를 방문한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3세의 사절
세바스티안 의 협력을 받아서는 갤리온선 인 "산 주앙 바우티스타호" 를 건조합니다.
에도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인을 얻은 마사무네는 프란시스코회 선교사 루이스
소테로를 사절 로 임명해 가신 하세쿠라 쓰네나 (세례명 돈 펠리페 프란시스코) 등
180명이 탄 배는 쓰키노우라(月浦) 에서 출항해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아카풀코 에
상륙후 내륙을 걸어 베라크루즈 에 도착해 이번에는 스페인 배를 타고 대서양 을 건넙니다.
다테 마사무네의 사절 하세쿠라 쓰네나가 는 세비야에서 스페인왕을 알현 하고 다시
지중해를 건너 로마 교황도 알현 했는데 17세기에 일본인이 로마 교황을 알현한
사실은 일본의 외교사에서도 특필되고 있는 실적으로 7년후에 귀국 하니....
일본에 천주교 금지령 이 내린지라 그의 이름은 과자 하세쿠라 야키 로만 남았습니다.
지금도 스페인 세비야 근교 코리아 델 리오 (Coria del Rio) 에는 하세쿠라를 따라갔다가
그리스도교인 생활을 갈망해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고 머무른 센다이 번사 6명의 후손
800여명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일본” 을 뜻하는 “자폰 Japon” 을 성씨로 삼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유럽에 사람을 보낸건 이보다 더 빠른 임진왜란 10년전인 1582년 인데....
13세의 신학생 소년 4명 을 포함 12명 이 나가사키를 출발해 인도와 희망봉을
돌아 포르투갈 스페인을 경유해 3년후 로마에 도착해 교황을 알현 하고
3년간 유럽에서 공부한 후에 1590년 서양 문물를 가지고 일본으로 귀국 합니다.
이보다 앞서 일본 상인 들은 임진왜란 이전에 벌써 동남아로 진출해 필리핀, 베트남, 태국
말레이에 거류지 저팬타운 을 건설하고 무역 에 종사했으며 태국 아유타야 저팬타운
사람들은 칼을 들고 태국 왕위계승 전쟁에도 참전해 공을 세웠다는데.... 그 이전인
14세기 무렵에는 고려(조선) 와 명나라 해안지대를 약탈하는 해적 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지방의 일개 영주 (다이묘, 번주) 가 어떻게 배 까지 건조해 수만리 떨어진 유럽에 사신 을
파견하나? 이는 일본 전국에 270여명이 넘는 영주 들이 사실상 "국왕" 이었기 때문이니
영주 신분은 자식으로 "세습" 되며 대를 이어 충성을 바치는 가신과 무사 들을 거느립니다.
영지에서 세금 을 징수해 가신과 무사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며 백성에게 사법권 을 행사하고
이웃나라와 외교 를 하여 혼인 동맹 을 맺으며 군대를 양성해 이웃 지방을 침략해
영토 를 넓히는데... 일본에서 忠(충) 이라고 하면 천황(일왕)이나 막부 쇼군이
아닌.... 지방의 영주(번주)인 다이묘에게 바치는 것이니 유럽의 봉건제 와 흡사 합니다.
일본 270여개 번에서 백성들이 이웃 번으로 장사나 여행을 가자면 사전에 번주(영주)
다이묘에게 허락을 받아 여권인 통행증 을 지참하는데..... 이웃 번과의
경계에 "관소" 를 설치하고 통해증 검사 와 소지한 물품에 "관세" 를 거두었습니다.
1636년 다테 마사무네 가 병으로 죽었을때 함께 죽어 무덤에 같이 묻힌 "순사자"
는 가신 15명에 배신 5명 합하여 스무명 이나 되었으니.... 저승에
함께 따라 가서라도 주군을 모시겠다는 갸륵한(?) 忠(충) 이라?
젊은 시녀 5명은 몰라도..... 늙은 가신들은 진심 이니 스스로 자원했다고 합니다!
사돈인 다테 마사무네 에게 영향을 받아 대외 팽창을 꿈꾸는 욕심을 부렸던 다다테루 는
쇼군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영지를 몰수 당하고 구금된후 유배 에 처해지는데
여러 유배지를 돌아다니다가 최종적으로는 시나노의 스와 에 정착하였으니...
히데다다의 치세에는 대우가 나쁘지 않았고 3대 쇼군 이에미쓰는 집까지 지어 줍니다.
마쓰다이라 다다테루는 스와에서 60년간을 평화롭게 살다 1683년 향년 91세로 사망하는데
문예, 노래, 춤 등 기예에 뛰어났다고 전해지며 위 사진에 나오는 御用(어용) 은...
번주는 영지에서는 사실상 왕 으로 무사들은 천황이나 쇼군 이 아닌 번주에게 충성 했지요?
이에야스의 7남, 8남은 어린나이에 사망하였으나 그 다음인 9남 요시나오는 오와리번,
10남 요리노부는 기슈번 그리고 11남 요리후사는 미토번주 가 되었는데...
에도 종가에서 대가 끊어지면 쇼군에 오를수 있으니 고산케 (御三家 어삼가) 라 불립니다.
다카다 성은 메이지 시대 육군 13사단 의 주둔지로 사용된 탓에 성루 및 해자가 매몰
되어 혼마루를 포함해 성루, 해자 일부가 남아 있고 공원으로 정비되었는
데..... 현재는 성의 서쪽 반 정도만 남아 있으며 3층 망루는 1993년에 재건했습니다.
다카다성 내부를 구경하고는 나와서는 연꽃 가득한 강변을 걸어서....
부지가 엄청 너른 초등학교 를 지나 다카다역 으로 향합니다.
걸어가는 도중에 길가에 현대식 건물이 보이고 웨딩드레스 를 입은 신부의 사진 아래에
“Duo Cerezo" 라고 적힌 글귀를 보는데 듀오란 듀엣 일테지만.... 세르조란 벚꽃???
일본에서는 신사 에서 양가 부모와 가족등 소수가 참석해 전통 결혼식 을 가진 다음에
이처럼 예식장이나 또는 레스토랑 에서 초청장 회신을 받은 사람 들을
대상으로 피로연 을 겸한 결혼식 을 또 올린다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터입니다?
유럽은 독일처럼 대학 학비가 무료이거나 프랑스 처럼 고등학교 수준의 학비를 받지만
미국은 학비 를 내야 하니 본인이 대출 을 받고 졸업후 갚는게 원칙이라고 하는데....
"벌거벗겨진 채 얼굴이 가려진 이라크인들의 성기를 담배를 입에 물고 손가락질하며
웃는 여군, 나체의 이라크인 인간 피라미드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여성…"
"전 세계를 분노에 떨게 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에 연루된 미군들
중 유일한 여성으로 관심을 모았던 린다 잉글랜드 이병(21) 은 사진 속에 드러난
‘악마성’ 과 달리 평소 학구적이고 성실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합니다."
그녀는 버지니아주 출신으로 대학 진학을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해 입대한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학비를 부담해야 하는걸로 인식하는데
그 이후 결혼 비용은 일본에서는 저녀들 본인 책임 이지만....
한국에서는 그것마저도 부모가 일부 를 부담하니 세계에서 가장 힘든가 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고교를 졸업하면 부모에게서 독립하며 일본은 대학 졸업후 홀로 서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결혼식 때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손주 까지 돌보아 주는 것이라?
하지만 일본인들은 어릴때 부모로 부터 반복해서 받은 첫번째 교육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 히또니 메이와쿠오 카케나이 ひとに迷惑めいわく をかけない 이니!
일본에서는 자식은 결혼식 때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본인 책임 으로 하고...
이후 손주를 돌봐 달라는 그런 부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부모
또한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려고 부양을 바라지 않으니 따로 사는게라!
"히또니 메이와쿠오 카케나이" 는 남에게는 물론 부모와 자식간에도 유효 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은퇴후 5년 정도 살았지만 지금은 30년은 살아야하는 시대에 한국에서도
이제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니 몰빵했다가는 만년이 비참해지는 것이라!
그러니 우리나라 부모들도 저 돈을 아껴 미리 자신의 노후생활비 를 저축해야 할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