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천 공항에서
공항에 도착하니 7시45분, 이른 시각이지만 인천공항은 초만원이다. 먹고살기 힘들다 하더니만 다 거짓말 같다. 연휴가 낀 것도 아닌데 어디고 빈틈이 없다. 베트남 항공 줄에도 골프가방에 화려한 치장을 한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가방을 부치기 앞서서 우리는 입고 온 겨울외투를 정리를 했다. 이곳은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인데 호치민은 영상 33도라 하니 옷이 애매해진다. 나는 신발만 샌들로 갈아 신었다. 갈아 신고 보니 우스운 꼴의 내 모습이다. 위는 겨울철 아래는 한 여름.
지구의 오묘함은 바로 이런 경우 느끼는 게 아닐까. 싱가포르 여행을 갈 때였다. 한 겨울이라 옷이 한 가방을 다 차지했었다. 교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섰는데 비단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난생처음 추운 나라에 와 봤다하며 비싸게 샀다는 겨울옷을 싱가포르 사람들은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다녔다. 그들은 평생 눈 구경이 소원이라 평창에 스키교실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중국 사람들이 제주도를 선호하는 데는 내륙 깊숙이 사는 사람들의 바다에 대한 동경심에서 비롯한다. 그들은 내륙 호수 이름을 바다 이름을 따서 부쳐놓았다.
가보지 못하는 곳은 누구든 흠모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사람이 적도를 그리워하거나 북극을 동경하지는 않는다. 다녀보고 비로소 느끼는 금수강산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만약 우리나라에 산이 없었다면 위도상 별 차이 없는 북경처럼 한 여름에는 푹푹 찌고 한겨울에는 거칠게 불어온 바람을 사납게 맞이해야 할 것이다. 자연 필터링을 해 내려오는 계곡물, 무료에 가깝게 제공되는 식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물 값을 받는 식당을 나는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짐을 부치고 집에서 들고 온 빵하고 삶은 달걀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꼭두새벽에 나왔는데 찐 달걀이라니 이를 준비한 사람 역시 들뜬 마음임에 틀림이 없다. 어릴 적 삶은 달걀로 대변하던 소풍길이 떠올랐는지 소년 티 그대로 모두 환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 세상 인천공항만한 곳도 없다. 수속도 빠르고 일 처리가 그만 아니던가. 벌써 수년 째 공항서비스 세계 1위로 알려진 인천공항이다. 올해부터는 입국장의 외국으로 출국할 때 만 19세 이상 한국인은 얼굴 사진과 지문을 사전 등록을 하지 않아도 인천공항에서 자동출입국심사를 바로 이용할 수가 있다.
우리가 자동출입국심사대 이용을 하면 심사관 대배치가 가능해져 그만큼 외국인들에게 보다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 더 편리한 인천공항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 19세 이상이라는 데 단서가 있다. 이는 바로 주민등록증하고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있는 지문 인식기능을 공항에 옮겨와 편리함을 갖춘다는 그런 구조로써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로직을 구비한 나라가 지구상에는 몇이 안 될 것이다. 아직 주민등록증도 없는 나라가 숫한 마당에 인터넷 강국으로서 우리의 위상을 제대로 알만하지 않은가.
비행까지 남은 한 시간, 대개 한국 사람들은 여기서 면세 상품을 다 산다. 우리가 선호하는 물건은 우리나라에 모두 있다. 비행기 선물 가이드 책자는 우리가 늘 흥미롭게 생각하는 위주로 짜여 있다. 우리가 아끼는 고급 양주의 경우 다른 나라 비행기에서는 소개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싼 양주가 선호대상이 아니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기내에서 예약을 하면 돌아올 때 들고 올 수가 있어 편하기도 하다. 면세점에서 나는 우왕좌왕 하지 않는다. 자연스런 안내자가 있다.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린 곳에 가면 다 해결이 된다.
나는 엄마 선물을 사기로 했다. 물어보지 않아도 잘 아는 엄마 선물이다. 우리 집안 식구들이라면 모두 다 아는 상식 같은 선물, 엘리자베스 아덴이라는 화장품. 동생도 매제도 어김없이 이 화장품을 들고 들어온다. 그 제품이 들어선 위치를 보아도 그렇고 상점 크기를 보아도 그 세계에서는 그다지 우의를 점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엄마는 그 제품만을 찾는다. 과거 어느 때 어렵게 얻은 미제 화장품에 현혹된 것이 길고 길게 자리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엘리자베스 아덴은 테일러 스위프트, 브리트니 스피어스,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연예인 이름을 딴 향수로 유명하였었다.
하지만 실적 악화로 2년간 4억 달러에 가까운 적자를 냈고 얼마 전 LG생활건강이 인수를 검토했으나 인수 추진을 중단했으며 미국 메이크업 전문업체인 레브론에 넘어갔다. 나 어릴 적 미제는 무엇이든 알아주었다. 어렴풋이 엘리자베스를 말하던 엄마가 생각나는 것도 같다. 어느 면 인간은 상념을 먹고 산다. 질보다 이득보다 더 소중할 때가 있다. 필시 엄마도 젊은 시절에 갖던 어느 향수 이를테면 귀하게 얻은 가치로서나 아니면 그 향수 괜찮은데 하는 아버지의 따스한 말 한마디에 지금에도 여전히 엘리자베스를 찾는지 모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설령 편견이라 해도 인간이 갖는 달콤한 향수는 상념에 연하고 추억이 또 그 한자리가 아닌가 싶다. 비행기가 고도 13킬로 선상에 올라섰다. 100미터마다 0.6도씩 떨어진다는 지론이 아니더라도 이 위치는 아마 엄청 추울 것이다. 영하 40도, 철저히 단열이 된 비행체지만 그래도 조금은 춥다. 시속 800킬로 이상으로 날라 가다가 도착 40분 전 정도쯤 고도를 3킬로 정도로 낮춰 그때부터 하강준비를 한다. 비행시간 5시간 5분, 아마 돌아올 때는 4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지구 자전과 우리가 동쪽으로 향하는 속도가 맞물려 짧아지는 시간이다.
5시간 만에 거리로서 높이로서 온도 50도를 넘나들고 비행체 하나로 지구 자전도 느끼며 또는 IT 신기술의 복합으로 자동출입국 심사를 말하는 이런 스킬을 상식처럼 느끼는 게 나로서는 어느 면 참 희한한 것이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를 외치며 하늘을 쳐다보던 그 이래 문명인으로서 그렇게 적응하고 적용하며 지금껏 살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와이파이 사용법을 얼마 전 터득했으니 남 하는 만큼 요즘 것도 제대로 잘하고도 있다싶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문명은 어디까지나 혜택 많은 도구나 수단일 뿐이다.
정작 여행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어느 상념이 아닐까. 어찌 살고 어떠한 의식으로 오늘을 이해하는 것인지 가서 보고 느끼는 것이 소중하다 싶다. 나와 다르기 때문 느껴지는 문화이고 삶의 상대성이다. 문화란 바로 이질감 속에서 싹트는 찬란한 빛이 아니었던가. 삶의 우열, 문명의 척도로서의 가치판단은 정말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이 든다. 때로는 못사는 나라라고 업신여기고 골프를 치는 여유로서 상대를 쉽게 파악하려드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개중에는 있다.
엄마의 화장품 엘리자베스 아덴이 말하는 제품을 떠나 이제는 어느 상념으로서 따스하게 내게 작용하듯 필시 여행은 이질감으로 색다르게 내게 자리할 어느 상념이 아닐까. 이를테면 그들의 울고 웃는 모습 속에 담긴 정서와 꿈 그리고 사랑이 내게 반영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싶다. 기내 음식이 제법 괜찮았다. 서비스도 그만이었다. 달콤한 레드와인에 반해 혹시 달랏에 그 유명하다는 와인이 아닌가 싶어 승무원을 찾아갔더니 아쉽게 와인은 프랑스산이었다. 베트남 산을 찾는 내 눈치를 챘는지 승무원이 베트남 산이라고 발포 형 상큼한 화이트 와인을 한 병 통째로 주었다. 순간 베트남이 내게 상큼하게 다가오는 듯싶었다. 어느 참 기체는 순식간 지면에 안착하였다. 나는 랜딩하는 부드러움 정도로 어디를 가든 꼭 기장의 점수를 매기는데 와인 덕분인지 나도 모르게 엄지 척 올라간다. 그렇게 나는 호치민에 살갑게 닿았다. 때는 서로 향하였기에 오후 1시 반, 우리사각으로는 3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