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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가 가난한 사람들의 ‘차별받은 식탁’을 찾아갑니다. 수급자 가구의 식탁을 찾아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또한 중증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맛집을 찾아 함께 밥을 먹으며 모두에게 공평한 식탁은 무엇인지 묻고자 합니다. |
한 때, 그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 포함해 받는 65만 원 남짓한 돈에서 40만 원을 월세로, 15만 원을 관리비로 냈다. 그의 손에 남는 돈은 10만 원. 생활이 될 리 없었다. 밥도 먹을 수 없었다. 그가 사는 집 근처 인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집으로 찾아와 도와줬다. 그렇게 하루 두 끼 먹을 수 있었다. 먹지 못할 땐 굶어야 했다.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에 다니는 신경수 씨(31세, 뇌병변장애) 이야기다. 신 씨는 현재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민들레야학 바로 옆 오피스텔에 산다.
1983년에 태어난 그는 5살에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한 장애인 생활시설에 들어가 26살에 그곳에서 나왔다. 꼬박 21년을 시설에서 산 거다.
2009년 3월, 시설에서 갓 나와서는 민들레야학에 다니는 오명진 씨(청각·뇌병변 장애) 집에 잠시 살았다. 그러다 국가 보조금 500만 원을 지원받게 되면서 그해 12월, 현재 사는 이 집에 들어왔다. 처음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었는데 현재는 집주인이 월세를 깎아줘서 36만 원만 낸다. 오피스텔은 17평으로 실평수는 10평이 조금 안 된다. 공간은 혼자 살기엔 괜찮은 편이고 월세는 혼자 살기엔 목 죄는 수준이다. 몸 뉘일 공간은 있는데 배 채울 쌀이 없다.
그렇지만 비싼 월세에도 현재의 집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월세가 싼 집엔 전동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또한 함께 살던 오 씨 집은 중증장애인 둘이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올해 3월, 현재 함께 사는 최혁 씨(39세, 뇌병변장애)가 들어오기 전까지 신 씨는 이 집에서 혼자 살았다. 지금은 최 씨와 아파트 관리비, 생활비 등을 절반씩 부담한다. 최 씨가 들어오기 전인 올해 1월부터는 계양구청에서 월세를 지원해줘서 월세 부담도 사라졌다. 월세 지원은 올해까지인데 내년까지 연장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신 씨는 기초생활수급비 현금급여로 46만 원, 장애인연금 17만 6천 원, 그리고 계양구에서 주는 연금 3만 원 해서, 총 66만 6000원을 수급비로 받고 있다.
여기서 신 씨는 매달 통신비 10만 원, 아파트 관리비로 겨울엔 15만 원, 여름엔 12만 원가량, 식비 포함한 생활비 10만 원, 적금 20만 원, 청약 2만 원, 용돈 11만 원, 그리고 기타 정수기 관리비용, 야쿠르트, 야학 학생회비 등을 낸다. 관리비는 같이 사는 최 씨와 나눠서 낸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월세를 안 내도 되니 전보다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빡빡한 살림이다.
그래서 생활비도 여전히 10만 원이다. 신 씨는 최 씨와 각각 10만 원씩 부담해 한 달 생활을 꾸린다. 한 달 식비를 비롯해 조미료, 물티슈, 세제, 식용유 등의 물품도 이 돈에 포함된다. 물론 충분하진 않지만 신 씨는 “생활비를 늘릴 계획은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대신 신 씨는 자신에게 스스로 주는 ‘용돈’을 이번 달부터 5만 원에서 11만 원으로 올렸다. 이건 식비 외에 사람들 만날 때 음료수를 마시는 등 개별적으로 소소히 쓸 수 있는 돈이다. 올해 3월에 최 씨와 함께 살게 되면서 만든 것으로 그전에는 없었다. 인상 이유에는 최근 만나기 시작한 ‘여자친구'라는 은밀한 개인사도 포함되어 있다.
신 씨는 일주일에 2, 3일을 라면으로 해결한다. 신 씨는 “물가가 자꾸 올라 힘들다. 식비로 20만 원 정도는 필요한 거 같다.”라고 토로했다.
그래도 신 씨는 ‘선택된 자’다. 현재 계양구의 한 복지관에서 나오는 도시락을 지원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 씨와 같은 집에 사는 최 씨도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지만 최 씨는 도시락을 못 받고 있다. 복지관에서 나눠주는 정원이 한정되어 있어 도시락을 배급받고 싶으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도시락은 주중 오전 11시 이전에 집으로 배달된다. 그러나 그 도시락 품질이 썩 좋진 않다.
신 씨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성아무개 씨는 “성의는 고마운데 질이 떨어져 선별해서 먹는다”라며 “음식물이 (배달해오는 도중) 서로 섞이고 냄새가 나기도 한다. 내가 봐도 조금 (안 좋은) 그런 상태”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안 먹고 버리기엔 넉넉한 사정이 아니니 아쉬운 대로 먹는다.
밥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누룽지를 해먹기도 하고 집 반찬이 떨어지면 도시락 반찬을 꺼내 먹는다. 아침은 간단히 식빵으로 때우고, 점심엔 복지관 도시락을, 저녁엔 주로 라면을 먹는다.
도시락 반찬은 김치를 기본으로 채소 위주로 담겨 있다. 매일 약간 바뀌긴 하나 거의 비슷한 편이다. 지난 17일 찾아간 저녁, 신 씨가 꺼내 든 반찬은 그날 오전 배달된 도시락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김치, 콩나물, 미역 줄기, 소시지·양파 볶음이 담겨 있다. 신 씨는 도시락 반찬과 함께 계란국으로 이날 저녁을 먹었다.
신 씨는 쌀도 주민센터에서 지원받고 있으나 이 역시 품질이 좋지 않다. 신청을 취소하면 쌀 대신 현금 2만 원을 줘서 이제까지는 현금으로 받고 신 씨 돈을 보태 쌀을 사 먹었다. 그런데 최근 쌀값이 너무 올랐다. 그래서 이번 달엔 직접 쌀로 받았는데 도대체가 먹을 수가 없다. 결국 주민센터에서 받은 쌀에 찹쌀을 섞어 먹고 있다.
밥도, 반찬도 지원받고 있지만 선뜻 맛나게 먹을 수가 없다. 내키지 않지만 먹을 게 그것뿐이니 아쉬운 대로 먹는다. 그렇다고 신 씨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지난 3월부터 4개월째 신 씨의 활동보조인을 해온 성 씨는 “신 씨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먹는 음식 외에는 경험을 못 해봤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신 씨의 생활 반경이 좁다는 뜻이다. 좁을 수밖에 없다. 현재 신 씨에게 지급되는 돈으로는 한 달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열량을 충족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장을 보러 가서도 신 씨는 참치 통조림, 상추, 오이, 고추 등 채소 위주로 장을 본다. 고기는 비싸서 못 산다. 신 씨에게 고기란, 한 달에 두 서너 번 정도 접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과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을까 말까 한다. 사실상 거의 못 먹는다.
신 씨에게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같은 얼큰하거나 구수한 음식이 좋다. 더운 음식이라 여름보다는 추운 겨울날 집에서 잘 해먹는다.
화려한 식단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설에서 먹던 음식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신 씨는 말한다. 시설에서 먹을 땐, 한꺼번에 대량의 음식을 만드니 영 맛이 없었다. 그리고 집단으로 다 같이 먹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넉넉하진 않지만 재료를 직접 사서 요리해 먹을 수 있으니 그게 참 좋다고 한다. 반찬을 사오면 오전엔 최 씨의 여성 활동보조인이, 저녁엔 신 씨의 활동보조인이 요리를 맡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바깥에서 음식도 사 먹는다. 그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신 씨에겐 이 또한 물리적 장벽으로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지금까지 가본 집 주변의 식당이라고는 깁밥집과 부대찌개 전문점뿐이다. 지난번엔 부대찌개집 옆에 있는 순대국밥집에 너무 가보고 싶었는데 턱이 있어 결국 포기했다.
현재는 동거인 최혁 씨의 활동보조인이자 그전에는 신 씨의 활동보조인으로 일했다는 김아무개 씨는 말한다.
“신 씨가 턱 있는 식당 등을 신고해서 고치는 (배리어프리)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서민이 먹을 수 있는 5~6천 원짜리 집은 대부분 계단과 턱이 있잖아요. 아예 비싼 집들은 엘리베이터, 경사로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신 씨는 최근 만난 여자친구와 주로 동네 조그만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긴다고 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니 김밥, 어묵, 도시락으로 먹거리를 해결한다. 5만 원에서 11만 원으로 용돈을 배로 늘렸음에도 여자친구와 그럴듯한 밥집가서 식사 한 끼 하기 힘들다.
그러나 비단 돈 문제뿐만은 아니다. 여자친구와 근사한 레스토랑, 카페에 가서 차 한잔 하기 위해 신 씨에겐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나는 신 씨의 ‘수급비’이고, 두 번째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신 씨가 접근할 수 있는 편의시설 확충이다.
뒤죽박죽 뒤섞인 ‘도시락’ 밥상을 넘어 집 바깥에서도 자유로이 외식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이 신 씨에겐 언제쯤 도래할까.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