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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글쟁이 선생님
01. 냉장고를 정리했다.
냉장고를 정리했다. 이젠, 엄마의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다. 엄마의 손길도 느낄 수 없어졌다.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엄마는 살아있지만….
Writer : 춤추는 거북이
냉장고를 정리했다.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 규칙적으로 질서 정연히 맞춰둔 퍼즐처럼 내부정렬은 완벽했지만, 남자는 밀폐 용기를 열었다가, 물병을 꺼냈다가 다른 방법으로 집어넣기를 속절없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심경이 복잡할 때 냉장고를 괴롭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 일로 인해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머리를 연신 흔들어 털어내 보려 할 뿐이었다. 이제 냉장고에서 경고음마저 울리기 시작했지만, 어째서인지 쉽게 차가운 냉장고의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Writer : 케로
냉장고를 정리했다. 그녀가 떠나간 지 어언 석 달 만이었다. 이 무심한 기계는 무언가 가득 차 있었다. 분명 내 집에 있건만, 내가 모르는 음식들은 조금씩 썩어갔다. 내가 몰랐던 너의 마음이 이랬을까.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던 콩자반이 차게 식었다.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처럼, 여전히 난 음식을 대할 줄 몰랐다. 괜스레 반찬통을 하나둘 꺼내어 식탁에 늘어놓았다. 천천히 씹어 삼키며 목이 막혀오는 걸 느꼈다. 아, 맛있네. 이렇게 쉬어버려도. 맛이라는 걸 모르는 난 음식에 대해 도통 모르는 남자였다. 오늘도 난, 냉장고를 정리하지 못했다.
Writer : 데인 드한
냉장고를 정리했다. 리치같이 새하얀 그녀의 안구가 달걀 칸 맨 끝쪽에서 두 번째에 자리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피서리가 서 있는 새하얀 리치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안부를 물었다.
당신, 꽤 맛있었어.
처음엔 처치 곤란이었던 것이 어느새 냉장고 구석구석 휑하게 비어 있었다. 새로운 컬렉션으로 냉장고를 다시금 채워 넣고 싶은 마음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보름이 되는 날, 다시 사냥을 나서야겠다.
Writer : 랭보
냉장고를 정리했다. 락앤락 통을 닫는데 2초, 제자리에 넣는 데 5초, 달걀을 한쪽에 몰아넣는 데 1분, 상해버린 식혜를 싱크대에 버리는 데 15초. 그의 냉장고에 있는 락앤락 통은 8개, 이 남자가 냉장고를 정리하는 데에 든 시간은?
Writer : 차승우
02. 난간에 기대어 섰다.
난간에 기대어 섰다. 이걸로 내 인생은 끝이다.
이제,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이 난간 끝,
Writer : 춤추는 거북이
난간에 기대어 섰다.
얘가 또! 옷에 먼지 묻는다 그랬잖아! 얼른 안 떨어져?
흠칫 놀라 뒤로 돌아보아도 검은 옷의 물결뿐. 어느새 따라 나온 동생은 옆에 서서 담배 한 개비를 문다.
"끊었다며."
"뭔 상관, 아빠도 피던데."
담배 끊은 지 20년도 넘은 아빠가? …그럴 만도 하지 싶었다.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속으로만 삭이는 것보다는 힘듦을 알 수 있었으니까.
집엔 어떻게 가지. 그 공간에 어떻게 돌아가지.
눈물 대신 한숨과 담배 연기와 검은 물결들이 흩어져 갔다.
Writer : 휴먼히읗체
난간에 기대어 섰다. 오늘은 포근하다더니 제법 쌀쌀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강바람 때문일 것이다. 이곳 춘천 MBC에서 바라보는 춘천은 과연 호반의 도시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이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책 코스였고, 너와의 첫 데이트에 꼭 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난간에 기대어 조금 추운 날씨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 너는 복숭아 꽃처럼 밝게 웃었다.
아, 조금 이른 봄의 시작이었다.
Writer : 침대에 누워서 폰 보는 보노보노
난간에 기대어 섰다. 우리도 한때는 이 다리를 같이 거닐곤 했는데…. 널 많이 좋아했던 난 지금 네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네가 잘살기를 가슴 한편으로 빌기만 할 뿐이다.
Writer : 똘망똘망 다람이
03. 나의 바람은 죽었다.
나의 바람은 죽었다. 평생을 함께하자던 그 바람이, 내게 과분했던 걸까.
잘 가, 내 사랑 '바람'.
Writer : 온뇨쇼
나의 바람은 죽었다. 더 이상 이런 바람은 안된다.
알프스 산의 청정한 공기를 직접 맞는 느낌으로 자체 초나노 와칸다에서 직 수입한 비브라늄 필터로 알프스의 그 공기를 느끼게 해주는 엘지 휘쎈 2019 신 모델~
씽씽 불어라 시원하게 불어라
씽씽씽씽 시원하게 불어라
Writer : 김주영
나의 바람은 죽었다. 어느 여자를 만나도 만족하지 못했던 나였다. 여자친구라는 단어에 떠올리는 여자도 여러 명이었다.
그랬던 내가 너를 보았다.
나의 바람은 죽었다.
Writer : 인공눈물
나의 바람은 죽었다.
드넓은 바다에서 바람은 날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기는커녕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죽어버렸다.
Writer : 깡슬
나의 바람은 죽었다. 나는 바람을 잃은 바다 위의 돛단배였고 바람을 잃어 추락하는 연이었다.
그간 나를 밀어왔던 바람이 봄바람 같은 훈풍이었는지, 여름같이 휘몰아치는 폭풍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나는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음에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쉴 새 없이 부는 바람에 피곤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보아라. 바람이 멈추고 정지해버린 내 모습.
이제야 멈추었지만, 내가 딛고 있는 땅과 바다는 늪이 되어 나를 삼킨다. 나는 추락하거나 침몰하여 아래로 끊임없이 내려간다.
바람이여. 이제야 간절히 바람을 찾지만, 날개는 타버리고 돛은 찢어진 지 오래다. 추락하는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오직 지나가는 바람뿐.
나는 덜컥 겁이 나 맨살뿐인 팔을 뻗는다. 이 형편없는 팔에도 부디 받쳐줄 바람이 불기를. 깃털 없는 날갯짓을 해본다. 불어라 바람아, 바람아….
나의 바람은 죽었다.
나의 죽음에 바람은 죄가 없다.
Writer : 보노보노 프로덕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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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감성과 조금 다른, 저녁감성 글!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D
+) 도란도란 [부사] : 여럿이 나직한 목소리로 서로 정답게 이야기하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첫댓글 냉장고 재밌네 다양하게 뻗치네 이야기가
요렇게보니 뿌듯하당
우와 나다!
드디어 나왔네! 맞는 사진 찾느라 오래 걸린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