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다시 뭉친
친일파 후예들
현재 윤석열 정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뉴라이트 세력으론 조선총독부 건물을 복원하려다 실패한 박보균 문체부 장관, 친일재산환수법을 반대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 조부가 친일파인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뉴라이트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이 있다. 국힘당의 정진석 전 대표 조부도 친일파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권의 안보와 외교 실세로 알려진 김태효 안보실 제1차장도 대표적인 친일파로, 한미일 정상회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효는 미국 CIA가 안보실을 도청해도 “악의가 없었다”라고 말한 사람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국가 기밀을 유출한 죄로 유죄까지 받았으나 윤석열이 사면해 주었다. 친일파가 친일파를 봐준 셈이다.
얼마 전에 작고한 윤석열의 선친 윤기중 전 연세대 교수는 일본 문부성이 초청한 한국 최초의 일본 유학생으로, 말하자면 일본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사람이다. 그러니 윤석열이 선친의 영향을 받아 대놓고 친일 행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전자전이 아닌가.
그밖에 일본 장학금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며 ‘반일종족주의’를 저술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제국의 위안부’를 저술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 낙성대 연구소 연구원들이 대표적인 친일파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한오섭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김종석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이 뉴라이트 성향 단체 등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또한 국무총리실 산하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부임했던 강규형 명지대학교 인문교양 교수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체제 이후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이사로 임명됐다.
강규형 교수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활동을 두고 '반민족 행위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때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었는데, 그때 강규형은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홍범도가 아무리 독립운동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반민족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철거된다는 소식이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이러한 친일 학자들의 야합의 결과라 보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사실상 김무성이 주도했는데, 거기엔 곡절이 있었다. 광주에 있는 ‘전남방직’을 운영하던 김무성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 일본에 무기를 사주고 조선 청년들에게 전쟁터로 나가라고 홍보한 전형적인 친일파였다. 그 증거는 기록으로 남아 있고, 김무성의 선친은 친일인명서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그러자 김무성이 박정희 유신 독재를 미화하고 선친의 친일행각을 덮기 위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전국 역사 교사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독립 유공자 단체 및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자 슬그머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업을 접은 것이다.
김무성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재등장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무성은 ‘가짜 수산업자 뇌물 사건’으로 한동안 칩거했지만 마포 포럼을 만들어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거기에서 참모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김성태 국힘당 전 원내대표다. 김무성은 친이계로 그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윤석열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국힘당에 뿌리가 없는 윤석열이 자신이 수사해 구속시킨 이명박 세력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이동관도 대표적인 친이계이고, 민주화사업기념회 회장으로 간 이재오는 친이계 좌장이다. 이렇듯 친이계가 윤석열 정권을 장악하자 생긴 말이 ‘엠비시즌2’란 말이다.
이명박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윤석열처럼 대놓고 친일은 하지 않았다. 독도에 가서 쇼도 하고 그랬다. 그 점은 박근혜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윤석열만 노골적으로 친일파 후예 노릇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일본 문부성이 초청한 한국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었던 선친의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골적으로 친일 행각을 벌이고 있으나 이는 패착 중 패착으로, 그 역풍은 내년 총선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친일엔 매우 민감하며, 어떤 정부든 친일을 하면 다음 선거 때 반드시 표로 응징했다.
혹자는 김대중 정부 때 일본과 제일 가까웠지 않느냐 하지만 그땐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일본이 정중하게 사과한 후 일본 문화를 개방한 것이다. 일본문화를 개방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으나, 한국에 상륙한 일본 문화는 맥을 못 춘 반면에 한류가 일본에 전파되어 배용준이 스타로 떠올라 일본인 관광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흔히 미국을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라 하지만, 역사적으로 미국은 수없이 우리민족을 배반했다.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일으킨 3.1 운동에도 미국은 부정적이었으며, 일제의 3.1운동에 대한 엄청난 탄압에도 침묵했다. 미국은 파리강화조약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조선민족의 대표로 선출된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의 회의 참가에도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은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대표로 파리강화조약 회의에 참석키 위해 파리 회의장까지 갔지만 조선의 정식 대표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중국은 미국 외교관들에게 조선 독립 문제를 의제로 삼을 것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은 조선 대표 등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1905년 소위 ‘카스라 테프트 밀약’을 통해 일제의 조선 지배를 인정해주고 자신들은 필리핀을 지배했다. 이 밀약을 통해 을사늑약, 이어서 경술국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미국을 우리의 혈맹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는 것이다. 광복 후 군정을 실시하고 6.25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영구 분단으로 만들어버린 나라도 미국이다. 인구 5000만 이상 국민 소득 3만불 이상인 나라에서 전쟁이 나도 전시 작전권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미일은 사실상 군사동맹을 맺고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데 합의했다. 곧 독도가 일본으로 넘어가게 생겼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하면 미국은 일본 편을 들 것이다.
말하자면 윤석열은 미국에 가서 제2의 카스라 테프트 밀약을 하고 온 것이다. 내년 총선 때 국힘당을 참패시켜야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윤석열은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 놈 그 자체다.
#유영안 논설위원
🐈 독립영웅 흉상 철거와 '캠프 데이비드 정신'
😈 지난 8월18일(현지시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은 한국이 일본의 안보위기 때 지원해야 하는 근거를 만들어 놨습니다. '3국 신속 협의 공약'에 따라 한국은 중•일간 센카쿠 열도, 러•일간 쿠릴열도 갈등이 벌어질 경우 일본 편에 서야 합니다.
🤬 그 역(逆)의 경우도 성립하는데 남북, 한•중 갈등에 자위대가 개입하는 것입니다. 공약에는 '협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미국은 하위 파트너와의 합의문에 '의무'를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제력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서 철거하기로 한 '국내적 사건'은 캠프 데이비드 합의 취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일 군사동맹화로 나아가려면 일본 군사력이 한반도에 출몰하는 데 대한 한국인들의 저항심리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한•일 갈등과 저항의 상징물을 치우고 일본에 협력한 인물들을 받드는 '환경정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를 누구보다도 바라는 이들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에 포진한 외교 엘리트들입니다.
😤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 정책의 중핵은 언제나 일본이었습니다.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냉전 초기 구상한 '거대한 초승달 지대'도 일본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를 포괄하는 그림이었습니다. 한국은 소련과의 대립이나 일본 경제의 부흥이라는 맥락에서만 존재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미국 행정부는 한국 원조계획의 의회 통과를 위해 "남한을 원조하는 것은 일본을 원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 미국은 한국 정부 수립 직후부터 한•일 경제통합을 추진해 1949년 4월 일본의 석탄과 한국의 광물자원을 교환하는 무역협정을 체결시켰습니다. 일본이 한국 지배기간 저질렀던 악행, 그로 인한 한국인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