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가 새겨져 있지 않더라도 물가에 높이 솟은 바위절벽은 바위신앙으로서 신앙지 였다. 흔히 학소대라는 이름을 하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는 군위 인각사 바로 앞에 높이 솟아 있는 바위 절벽이 있다. 이름은 학소대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학소대 바로 옆의 산봉이 옥녀봉이다. 옥녀라는 이름도 우리나라 산신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산신은 거의 대부분이 여신이다. 옥녀는 바로 산신이었다.
우리와 아주 친숙한 곳으로 군위 삼존불의 거주처인 석글이 바로 바위 절벽에 뚫여 있다. 삼존불의 주거지인 바위 절벽을 학소대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선발종교인 우리의 토속 신앙지에 후발 종교인 불교가 들어와서, 자신의 성지로 삼은 것이다.
암각화가 새겨져 바위는 암각화가 아닌 바위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었다. 바위가 신성한 곳이므로 바위에 그림을 새겼던 것이다. 바위신앙이라고 하여 산악신앙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앙 형태이다. 바위 신앙은 산악 신앙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는 생활신앙의 모태로서 산악신앙을 꼽는다. 산의 영역에서 신비감을 일으키는 특정 지역을 선정하여 신성지로 삼았다. 특히 바위는 산을 이루는 뼈대로 생각하여 큰 바위가 노출된 곳에서 기도를 하였다. 그 모양이 특이할 때는 신령스러움을 부여하여 제의처로 삼았다. 특이한 바위의 형태로는 우리가 신성시하는 동물인 거북, 호랑이, 용 등을 닮았을 때는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남녀의 성기를 닮은 바위는 풍요와 기자의 기도처로 삼았다.
불교가 들어와서 우리의 신앙으로 정착하는 5-6세기 경이 되면 신앙의 대상은 자연스레 부처님에게 옮겨갔다. 토속신앙의 대상인 바위에 부처님을 새겼다. 부처가 새겨져 있는 바위의 형태가 평범하지 않다. 토속신앙과 불교가 결합되어 가는 것을 보여준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의 위치는 거의 대부분이 산의 정상은 피하고 있다. 약 8부 능선 쯤인 경우가 많다. 산신령을 모셨을 것으로 추측되는 거암이나 특이한 형상의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천신이 아닌 산신을 믿는 우리의 토속신앙과 불교과 결합하였음을 말해준다.
영주 가흥리 마애불을 살펴보자. 이 바위에는 선사시대의 종교 유적지임을 말하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알터도 새겨져 있다. 토속신앙지이다. 바위신앙의 터에 마애불을 새겼다는 것은 토속신앙과 불교의 융합을 보여준다. 가흥리에는 불상을 모셨다. 선발 종교의 신성지를 후발 종교가 자신의 신성지로 차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서 한국의 바위신앙은 청동기 시대로 보는 고인돌이나 선돌에서 그 자취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