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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전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아그립바’의 등장과 활동이 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역사적 의미.
바울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 운동』은 초월적 경험에 사로잡힌 몇몇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다.
그레코-로만의 역사적, 사회 정치적 정황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 큰 파장을 일으킨 문명사적 사건이다.
헤롯 대왕과 그의 자손들은 초기 로마 제정기에 주요한 등장인물이었고, 아그립바 2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바울을 대면하고 기독교 신앙을 두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고대 지중해 사회의 주류 계층 속으로 깊이 들어갔고, 전도를 받은 모든 사람이 믿지는 않았더라도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한 세계의 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둘째, 신학적 의미.
본문에 등장하는 아그립바 2세의 아버지 아그립바 1세, 증조주 헤롯 대왕, 작은할아버지 헤롯 안티파스는 모두 예수님과 12제자들을 대면했던 사람들이다.
헤롯 가문은 하나같이 기독교를 적대적인 태도로 박해해 왔다.
그러나 본문(26장)에 등장한 아그립바 2세는 적대적이 않다. 적어도 바울의 변론을 주의 깊게 듣고 솔질하게 응답하는 자세를 보인다.
베스도와 아그립바 입장에서 이 만남은 사건 조사 혹은 심문으로 여겨졌겠지만, 바울에게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전도 집회이고 설교이다.
사울의 눈을 뜨게 하라는 명령을 받은 아나니아가 거부의사를 표명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나의 원하는 것보다 더욱 응답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내가 기대하는 믿음의 자리에 머물지 말고, 나를 사용하실 곳에 서십시오.
신앙을 초월적으로만 해석하려 하고 체험과 감동의 신비적인 것으로 탈역사화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로마제국 총독의 이름을 통해 구체적 역사와 상황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역사적 현실에 등을 돌리거나 일상적 삶의 경험에 눈을 감는 신앙은, 그리스도에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가 세숫대야에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마27:24)라고 말한 것처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척하는 기만일 뿐이다.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개역개정)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개역한글)
삯꾼 목자들의 충동에 속지 마십시오.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자기 욕구 충족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마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오늘 말이 길었습니다. 을지훈련 기간을 잘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도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과정 가운데 함께하시고, 세속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른다면,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보호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겁한 통치자 벨릭스 때문에 2년이나 갇혀 지내야 했던 바울의 답답함이 얼마나 컸을까요! 며칠, 몇주, 고린도에서 1년6개월,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것이 에베소에서의 3년 정도였는데. 복음 전도의 열망 속에 살았던 바울에게 2년이라는 시간의 구금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하고 비겁한 자들도 사용하셔서 사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겠다는 바울의 요구는 오직 그의 ‘선교의 비전’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날이 무덥습니다.
기도하지만, 기대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실 것입니다.
아직 응답의 때에 이르지 못한 것이지,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순간에 최고로 응답하십니다.
인내 가운데 소망을 이루게 하소서!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보다는 유대인 전도에 특화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박해했고, 스데반이 죽도록 부추겼던 과거의 행적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이 예수 부활을 증언한다면 유대인들에게는 더욱 강력한 충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바울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화려했던 경력과 명성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십니다.
바울에게 이 길은 분명 더 어려운 길입니다.
바울에게는 동족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자신처럼 예수 믿기를 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원했던 길, 자신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 대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순종했습니다.
맡기고 순종하십시오!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잘 하는 일을 선택하기보다 부르신 곳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Who are you, Lord?
I am Jesus of Nazareth, whom you are persecuting.
주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여기에 주님은 뭐라 답하실까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주님, 오늘 나의 삶을 주님께 맡깁니다. 내 집과 재산, 아내와 자녀를 맡깁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가리치소서.
주님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모른척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주님보다 나의 필요를 먼저 채우지 않게하소서.
주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난 위기와 악한 상황도 선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위기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위기와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만 신뢰하십시오.
믿는 자에게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23.8월13일 주일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남은 우리의 시간이 주님의 은총을 더욱 깊이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신 생명수를 마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거룩한 생명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증언하도록 부름 받은 천국의 대사입니다.
거룩한 연민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전도의 소명을 감사와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분노와 경멸, 증오와 음란, 폭력과 질투의 죄악이 날로 늘고 있는 마지막 시대에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복음의 발걸음으로 새 길을 가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해 두 손 들게 하시며, 귀를 열어 주의 말씀을 청종하고, 눈을 열어 영원한 세상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일본에게 36년 동안 지배 받을 때 이 민족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억압받는 백성의 고통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성도들의 기도와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으셔서 독립의 영광을 얻게 하셨고 열방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이 민족을 여기까지 세워주셨습니다.
죄를 두려워하게 하시고, 우상을 섬기려는 마음들을 돌이키시며, 악한 귀신의 권세를 대적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이 땅이 황폐함에서 벗어나 주의 은혜가 바다와 같이 넘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임하게 하시고, 거짓된 곳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회복되게 하시며, 낙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주의 소망이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피 값으로 누리는 자유와 해방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구주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안전한 곳에 머물러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환난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담대히 나아갑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했지만 바울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단호하게 사명의 길을 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단은 성도를 강하게 합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결단하고, 목숨을 걸어야 할 '사명'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바울의 고별설교를 듣는 에베소 장로들의 마음이 어찌 뜨거워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은 바울이 아시아에 처음 발을 들여 전도하던 날부터 지켜보아 왔던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말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전한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목숨까지도 복음을 위해 아낌없이 바친 바울이 선교는, 성령의 거룩한 그릇이 되어 온 유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울처럼 복음의 증인으로 살며, 복음을 전하는 데 따르는 환난은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사명을 위해 죽고자 할 때 다시 살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누구에게나 떠나야 하는 이별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잠깐의 이별이든 영원한 사별이든 이별은 떠난 자와 남은 자 모두에게 중요한 순간이 됩니다. 그래서 이별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이별하기 전에 남은 자를 돌아보며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했던 바울처럼, 우리도 그렇게 멋진 이별을 준비해요!
에베소 극장에서 소동이 원만히 마무리된 후,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1).
지난 전도여행기간 중에 자신이 세운 교회들(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을 돌아보고 작별의 시간을 가진 후 헬라 즉 아가야 지방으로 내려갑니다(2). 이곳에서 석 달 동안 머물며 고린도교회를 보살피며, 아마도 이곳에서 로마서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려는 계획과 그 이전에 예루살렘을 먼저 들리게 될 것을 알립니다(롬15:22~25).
바울이 교회를 돌아보고 제자들을 권하며 글을 기록한 것은 마치 유언을 남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시는 곳, 보내시는 곳으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하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바쁜 일상 중에서도 종종 걸음을 멈추고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살피고 돌아보며 그들을 믿음으로 굳세게 하십시오.
이것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사역입니다.
바울이 설교하던 중 유두고라는 청년이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아마도 그들 중에는 너무 길게 설교한 바울을 탓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유두고가 살아있다고 말하며 그를 부둥켜안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눈앞에 펼쳐진 불행한 상황을 바라보는 대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울의 믿음대로 유두고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사역을 감당하던 중 갑자기 불행이 찾아오면 당황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줍니다. 바울은 믿응로 인해 불행한 사건은 오히려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올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기도할 때 불행을 복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2023.8.6. 성령강림 후 제10주
풍성한 생명의 능력으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의 백성들을 은혜의 방패로 보호해 주시고 생명의 힘으로 삶을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계속되는 이상 기후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폭우와 폭염으로 생명을 잃고 터전을 잃어버린 이웃들에게 주의 자비하심으로 위로하시고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더위로 인해 지쳐버린 탓인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폭력과 폭행으로 무차별적 난동을 벌이는 일이 사회 곳곳에서 발생되고,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불안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위험천만한 일들 앞에서 천군천사로 호위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주의 자녀들을 지켜 주옵소서.
미래세대에 비전과 꿈을 심어주는 학교와 선생님들이 되게 하시고, 마음껏 교육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교권을 지켜주는 사회와 국가가 되게 하옵소서.
‘항상 준비되어 있으라’는 스카우트 정신은 옷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음을 생각할 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새만금 잼버리 대회로 염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세계에서 방문한 아이들이 아무 사고 없이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은데 기도 없이 살아가는 저희를 긍휼이 여겨주시고 삶에 지쳐있기보다는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