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Wd0krwMlT0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교리?! (토라포션 출35:21-29)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출35:21-29)
성경은 마음이 감동된 자가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고 지혜로우 자가 물품을 제작하게 하셨으며 누구든 자원하는 자가 필요한 물품을 드리도록 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모두에게 예물을 드리라고 강제하지 않으셨고 모두에게 성막에 나와 봉사하라고 하지 않으셨으며 모두에게 필요한 물품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성경은 이처럼 풍성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완전한 허용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전쟁에 나갔을 때 두려워하면 집에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이렇듯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가 자유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무책임하기를 원하실까? 물론 아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원하는 심령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게 드리는 마음이다.
그러면 자원하는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바뀌는데 말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모든 마음을 다하고 모든 힘을 다하고 모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릴 수 있고 자발적으로 봉사할 수 있고 기쁜 마음으로 물품으로 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자발적인 의지 즉, 자유의지이다.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하고 드리기로 결단하는 의지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유의지를 믿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봉사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하고 자신의 의로 일하는 자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고 말한다. 성령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상반되는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간절히 소망이 성령의 인도하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는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쉽게 미혹되고 속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길이 옳은지 조차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 안타까운 것은 사단은 빛의 천사처럼 다가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역사하는 성령이 여호와의 영이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혹시 빛으로 가장한 천사가 아닌가? 이것을 분별하기 위해 우리의 판단력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 66권이 정경으로 정해질 때도 지혜서는 정경이 되지 못했다. 이유는 지혜서에 자유의지에 대해 나오는데 개신교는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지 않은가?!
또한 가톨릭은 마카비서중 일,이서만 채택했다. 왜냐하면 사서에는 자유의지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변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왜 자유의지에 대해 설명하는 사서를 채택하지 않았을까?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계명과 함께 모든 명령을 주시고 제일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자유의지였다. 또한 생사화복을 주시고 선택하라는 말씀이었다.
이것이 자유의지이다. 쉽게 말해 자유이다. 자유의 가치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너무나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정말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자유를 통해 자발적으로 선과 복을 선택하여 성장하기를 바라셨다. 그 방법이 오래 걸리고 많은 믿음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기에 허용하신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안다면 우린 자유를 더 소중히 지킬 것이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
자유의지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서로 충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만약 아무 생각없이 성령의 인도하심만 따르기를 바랐다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스스로 선과 복을 선택하고 악에서 돌이키는 결단을 하는 이성적인 인간이 돼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선택은 좋은 판단력에서 온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깊으신 뜻을 알았으면 좋겠다. 할렐루야!
기도제목!
1, 의지적으로 선와 복을 선택하고 죄를 거절하게 하소서.
2,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성도의 기본임을 알게 하소서.
3, 위선자로 맹인이 아니라 법을 실천하는 자유자가 되게 하소서.
4,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게 하소서.
5, 진리를 행하는 것이 성령의 뜻임을 알게 하소서.
6, 자유의지로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7, 자유의지를 부정하여 죄를 합리화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