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40「자드락비」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저, 허공
연금술사가 하늘을 주물러서
배 주린
사람들에게 실컷 먹어보라며
국수를
찰지게 뽑아 내려주시는 잔칫날
- 김강호의 「자드락비」
연금술사가 저 허공, 하늘을 주물러서 배 주린 사람들에게 실컷 먹어보라며 국수를 찰지게 뽑아 내려준다고 한다. 자드락비 내리는 날은 잔칫날이다.
작달비를 국수로 은유했다. 은유는 세상에 단 하나여야 한다. 그것을 발견했다. 자드락비는 굵직하고 거세게 퍼붓는 비이다. 타닥타닥 땅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비이다. 배 주린 사람들에게 작달비는 그야말로 잔칫날이다. 그것도 실컷 먹어보라며 찰지게 국수를 뽑아 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휴머니스트이다.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이런 시조를 쓸 수 있다. 기질은 타고나야한다. 시인은 이런 운명 같은 시를 써야한다.
긴 문장 움켜쥐고
수만리 달려와서
한 소절도
읽지 못하고 쓰러지는 파도의 일생
저렇게 생은 끝났다
포말만 남겨둔 채
-김강호의 「니힐리스트」
파도와 인생은 닮았다. 긴 문장 움켜쥐고 수만리를 달려왔으나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종국엔 포말만을 남겨둔 채 생을 끝내고 만다. 이것이 인생이란다. 니힐리스트란다. 움켜쥐지만 말고 베풀라는 말이 아닌가.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아닌가. 파도는 포말로 사라지지만 인생은 흙으로 사라진다.
시인은 은유의 연금술사이다. 아니다. 은유를 넘은 상징의 연금술사이다. 인생은 가장 늦게 도착하는 포말, 파도는 가장 늦게 도착하는 후회이다. 제대로 된 시 한편 도 쓰지 못한다. 바로 우리들의 군상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24.7.10.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