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42「너도바람꽃」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사랑불
내게 긋지마
재가 될까
두려워
피다가
떠날거면
피지말고
그냥 가
봄 뒤안
눈물 훔치며
아니온 듯
가는 꽃
- 김강호의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이란다. 사랑불 긋지 말라. 재가 될까 두렵다. 떠날 거면 정 주지 말고 그냥 가라. 누가 날 바람꽃이라고 했는가. 난 그런 바람꽃이 아니다. 재가 될까 두려워 그냥 피지 말고 가라니 이런 법이 어디 있나. 뉘한테 이 애틋한 마음 전하랴. 그래서 바람꽃은 봄 뒤안에서 눈물 훔치며 아니온 듯 가는 것이다.
시조는 억울한 마음도 초ㆍ중ㆍ종 삼장으로 다 잡아낸다. 이 오묘한 천ㆍ지ㆍ인인 삼장에 비밀 병기가 다 들어있다. 시조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떠나라고
욕설을 퍼부어도
아무데나 뿌리내려
꽃 피우는 개망초
내 가슴
묵정밭에 피는 꽃
망할 놈의 그리움
-류안의 「망할 놈의 꽃」
떠나라고 욕설을 퍼부어도 아무데나 뿌리내려 꽃을 피우는 개망초, 내 가슴의 묵정밭에 피는 꽃이다. 망할 놈의 그리움아. 아무리 욕을 해 대 보라. 떠나는가. 욕설 먹은 거기서 뿌리를 내린다. 입만 아플 뿐, 묵정밭에 피는 내 가슴의 개망초를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은 죽어서야 끝난다. 아니다. 인연이란 끈이 달려 있어 갈 데가 없다. 그 자리서 뿌리 내린다. 45글자 가지고도 이런 시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무섭다. 시조가 괜히 천여년을 건너왔겠는가.
12개의 돌이 자기 자리가 있다. 거기 놓여져야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곡조 음악이 되고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시조이다.
- 주간한국문학신문,2024.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