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여수가 고향인 나의 어린시절.
경상도지역을 가본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였다.
다른지역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겠지만 중,고등학교 수학/졸업여행에 참가해야지
겨우 경주쪽이나 가볼 기회가 생기는데 그나마 나는 가정 형편상 그 기회마져
주어지지않아 경상도땅을 30대 후반에야 여행할수 있었다.
6~70년대 그 시절.
전라도와 경상도는 발전속도가 하늘과 땅사이 만큼이나 차이가 나서 호남땅과 사람들이
무척 괄세를 받고 소외되는 영,호남의 갈등이 심화되어 국토발전의 불균형과 민심의
양분화로 정치,경제 사회가 두쪽으로 갈라져서 화합이 어려웠었다.
공군에서 군생활을 했었는데 군대내에서도 유독 영,호남 사람들의 감정,격돌로
부대내의 분위기가 무겁고 사이가 별로 좋지않았었다.
70년대 중반 .직업군인을 전역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전셋방을 얻으려니
전라도 사람이라고 전셋방을 주지않아 살집도 맘대로 구할수없는 웃지못할 사연들이
비일비재 했다.그런 설움을 겪어 보지못한 타지역 사람들이야 어찌 그 심정을 알수 있으랴.
집주인이 호남사람이여서 겨우 셋방을 얻어 봉천1동에서 몇년을 버티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괄시받던 그런 사건으로 내집 장만 하려는 욕심과 오기가 발동하여
구두쇠작전으로 저축을해서 80년대 초반에 일찍 내집 장만을 할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엇 비슷하지만 영,호남사람들은 친교를 맺기가 그 외지역 사람에 비해서
약간 힘이든다. 아마 그 응어리와 한(恨)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역사적인 배경을 굳이 같다 붙친다면 신라인과 백제인과의 천추의 앙금이리라.
망국의 원인이 될 영호남의 지역 갈등과 차별 의식을 해소하여 하루속히 화합과 친교로
자랑스런 조국발전과 나라사랑에 다 함께 앞장서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써
나쁜 악습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굳게 다짐했으면 한다.
요즈음에는 산악회나 잔차여행,등으로 경상도땅을 밟을 기회가 많이 생겨서
유독 그 지역에 호감을 갖고 자주 발길을 그 쪽으로 돌린다.
여기에 경주에서 포항간의 잔차여행중에 촬영한 사진 몇장을 삽입하여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잠못이루는 초겨울 밤을 달래려 합니다.ㅡ감사합니다.ㅡ
ㅡ2012년 11월30일.02시에.ㅡ오동동.ㅡ글.ㅡ
ㅡ포석정에 나타난 오동동.ㅡ내가 곧 왕이로소이다.ㅡ하.ㅡ하.ㅡ하.ㅡ
ㅡ신라의 흠망성쇠가 담긴 역사의 유물. 포석정.ㅡ
ㅡ신라왕능에서 오동동의 폼생폼샷.ㅡ찰칵.ㅡ
ㅡ첨성대를 배경으로 쌩폼잡는 오동동.ㅡ 오동동타령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ㅡ
ㅡ신라천년의 한이서린 안압지 연못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건만.ㅡ
ㅡ상념에 잠긴 오동동의 표정이 무겁기만하다.ㅡ 인생무상이라니......천년이 하루아침에ㅡ
ㅡ안압지 신라 궁궐터에서.ㅡ
ㅡ불국사 정문 이루문 앞에선 오동동의 늠늠, 왕성한 폼생폼샷.ㅡ
ㅡ불국사를 뒤로하고 토암산 석굴암을 향해 40~60도의 오르막을
힘차게 업힐하는 사나이들.ㅡ포기는 없다 오직 오르고 또 오르리라.ㅡ
ㅡ불국사에서 6km지점의 석굴암과 감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아휴 아주 죽이는구먼.ㅡ
ㅡ감은사지 삼층 쌍 석탑 앞에서.ㅡ세월이 유수하니 인생무상이로고.ㅡ
ㅡ감포후방12km지점의 문무대왕수중능앞 동해바닷가에서.ㅡ
ㅡ왜구의 침략을 막기위해 동해의 수호용왕으로 환생한 문무대왕. 수중능.ㅡ감포항부근.ㅡ
ㅡ호미곶의 명물인 손조각에 갈매기가 손가락마다 앉아서 우릴 반긴다.ㅡ
ㅡ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우리가 전부다.ㅡ 우리가 전세낸 셈.ㅡ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ㅡ우째야 쓸꼬.?
ㅡ드디어 포항시내 근교에 도착(비행장 및 해병대 )길가의 예쁜 단장이 넘 멋있어서.ㅡ
ㅡ포항을 대표하는 포항제철정문 앞에서 ㅡ오동동이 여기 왔노라. 보았노라ㅡ
ㅡ 형산강변에서.ㅡ 멀리건너에 포항제철의 용광로가 웅장한모습을 드러낸다.ㅡ
ㅡ너무너무 환상적인 포항해변의 아름다운 풍치와 자유여신의 평화가 우리에게 사랑을.ㅡ
ㅡ서해에서 격침된 동일함종의 퇘역한 포항함 앞에서ㅡ포항구항에 위치함.ㅡ
ㅡ포항에서 유명한 죽도 어시장을 방문하다.ㅡ
ㅡ포항와서 죽도어시장의 물회를 먹어보지 않으면 바보 멍청이래나.?
그 맛이 과히 명품이렷다.ㅡ못 먹어 봤으면 말을 허들 말어.ㅡ하.ㅡ하.ㅡ하.ㅡ
ㅡ3시간동안 포항의 여러명소를 두루두루 구경하고 오후2시 터미널에 도착하여
잔여 여행을 날씨탓으로 접고 1박2일의 잔차여행에 아쉬운 종지부를 찍다.ㅡ
ㅡ우등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영원한 이 시대 진정한 휴머니스인 오동동의 망중한.ㅡ
첫댓글 그떄.그시절이5060세대모습이지요 ..오동동씨고생하신보람으로 자전거로전국일주하신는모습아름답습니다...
예향 남도, 그 중에서도 한려수도가 있는 여수가 고향이시군요.
그 무렵 향토사단 신교대는 본적을 중심으로 특기생을 받았는데 ~
충남 조치원에 입소하니, 경상도 군의관 한다는 말이 ~ 야, 이 멍청도들아, 동작 빨리 못해..,기분 엄청 상했지요.
그 정도는 새발에피요.ㅡ 기본이지요.뭐,전라도 개똥쇠니 하면서 무시하는 별에 별소리가 많았지요.ㅡ 하.ㅡ하.ㅡ하.ㅡ
어린시절을 떠올리셨네요..
수학여행은 모든학생이 가지못하였던 시절...
가난이 원수였지요.
지금은 영호남의 갈등도 어느정도 사그러들고...
좋은시절입니다... 잔차타고 호연지기를 하시는님..
망중한이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