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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에 앞서.
말을 글로 옮기는 일에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품이 들어가는군요. 한 시간이 조금 넘는 대화 중 일부를 재구성하는 데에만 꼬박 몇 시간이 걸리다니. 좋은 경험을 하였고, 당분간은 신중해야겠습니다. 🙄
1. 관객과의 대화에서
본 내용은 간략한 메모로 재구성한 내용이며 실제 발언이나 맥락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재구성 과정에서 발언의 본래 취지가 왜곡되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작성자인 저에게 있습니다.
- 이희섭 감독, 조은성 제작, 나응식 원장. 이하 이, 조, 나.
- 실제로는 '길고양이'로 발언되었어도 '동네 고양이'로 일괄 표기.
- '캣맘'과 '캣대디'를 '캣맘'으로 일괄 표기.
관객:
영화에서 주민센터에 일하는 공무원이 고양이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고자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 현장에서 공무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나:
수의사들 사이에는 지역마다 분회라는 집단이 있다. 관공서 중 구청에는 경제과가 있고 여기서 해당 정책들을 담당한다. 그러나 내가 겪어본 바로는 대개 경제과의 담당자는 동네 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동네에 캣맘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분들의 역량에 의해 해당 지역의 동네 고양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좌우된다. 그러나 그분들도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의 자원을 내놓은 것이기에 그분들의 힘만으로는 지배적인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예를 들어, 서울 관악구에는 캣맘이 천 명가량 있다. 이곳의 동네 고양이들은 비교적 우호적인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손이 적은 동네에서 이와 같은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해진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동네 고양이, 넓게는 길 위에서 지내는 동물들에 대한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 동물권과 동물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학습 내용을 넣는다든가. 동물에 대한 인식을 제도권 교육으로써 개선할 방안이 필요하다.
앞서 제도적인 지원을 말하였는데, 각 지역의 수의사들과 구청의 담당자, 그리고 캣맘들이 머리를 맞대어 의견을 교류하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도 필요하다. 담당자 공무원 한 명의 행정적인 시각과 이해해서 일률적이고 일방적으로 실시되는 정책이 아니라 동네 고양이를 둘러싼 지역 구성원들의 고민이 반영된 정책이어야 실효성이 있다.
한편, 고양이 학대 또 넓게는 동물 학대에 대해 법적 제도로 엄중히 다룰 필요가 있다. 동네 고양이는 지역이라는 사회적 공간에 이미 존재하는 존재이면서 또 계층적으로 인간보다 취약한 조건에 자리하는 약자이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나는 크게 두 부류로 이해한다. 하나, 소시오패스인 경우. 과장이 아니라 정말이다. 이들은 약자를 학대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학대 행위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약자를 학대한다는 맥락의 연장선 상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노인이다. 이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존재에 대한 반감을 영역에서 그 존재를 내쫓고 더 나아가 공격하는 등의 행위로 표출함에 거리낌이 없다.
소시오패스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강력한 제재와 처벌이 필요하다면 노인에 대해서는 인식을 개선하는 접근법이 필요할 거 같다. 예를 들어, 사회적 일자리를 마련하여 동네 고양이가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밥과 물을 규칙적으로 주는 역할을 부여하는 거다. 좋든 싫든 챙기는 과정에서 인식이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여러 말씀을 드렸지만 쉽지 않은 문제이다. 여러 집단의 협력이 필요한 문제이다.
이:
영화 속 화면에 여러 고양이를 담으면서 '고양이는 귀엽다'는 틀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고양이 옆에 존재하는 집사에 대한 인식을 영화를 통해 바꾸고자 한 의도가 있다. 이 영화,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에 속하는 부류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볼 거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차피 안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전제를 두고서 영화에서는 여러 집사들 중에서도 모범적이라 할 분들의 모습만 내보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양이를 정성껏 보살피는 사례들만. 그럼으로써 이 영화를 매개하여 동네 고양이의 존재와 더불어 집사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과 그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고자 시도한 셈이다. 동네 고양이와 집사, 고양이와 사람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둘러싼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하였다.
나:
'I SEOUL U'로 유명한 서울 브랜드에는 '함께 공존하는 서울'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묻게 된다. 고양이는?
조:
관이 주도하는 마을 특화 사업 중 고양이를 내세운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사업의 일환으로 도로도 정비하고 고양이 모양을 한 표지도 설치하고 벽화도 그린다. 그러나 고양이가 있을 자리는 없어 보였다. 정작 고양이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건의했다. 그 지역에서 이미 잘하고 있는 캣맘 분들이 있을 테니 그분들에 대한 지원을 마련하고 정책 수립에 필요한 의견 수렴에 있어 그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게 낫겠다고.
관객:
동네 고양이를 챙겨 주면 고양이가 점점 사람에게 길들여지고 경계도 늦추게 될 거 같다. 밖에서 지내는 이들을 오히려 무방비하게 만들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꼴은 아닐지가 걱정된다.
나:
사람 손을 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손을 탔던 적이 있는 고양이도 사람으로부터 핸들링이 3주에서 12주 정도 주어지지 않으면 공격성이 활성화된다. 이렇게 되면 고양이가 사람을 두려워하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 그러면 아파서 치료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수의사가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캣맘 분들에 의해 핸들링이 되어 있는 고양이라면 도움이 필요할 때에 적절하게 개입하기가 한결 낫다.
그럼 무엇이 문제이냐면, 고양이가 사람을 믿어서 따르는데 그런 고양이를 학대하는 행위가 문제다. 동물 학대가 문제이고 이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제도적 무력함이 문제다. 동물 보호법에 힘이 더 실려야 하고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도 더 강해져야 한다. 교육 등을 통한 인식 개선 또한 병행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조:
여러분께서도 연남동 경의선 숲길에서 한 남성이 고양이를 학대하고 살해한 일을 아실 거다. 가해자를 신고한 캣맘 분과 제가 아는 사이이다. 어느 날 그분을 찾아가니 공사가 한창이었다. 무슨 일로 공사하는지를 물으니 가해자가 곧 출소한다더라. 가해자가 출소하고는 찾아와서 고양이와 자신에게 해코지할 수도 있으니 스스로 대비하는 거였다. 여러분도 이런 현실이 익숙하지 않은가? 이 사회에서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두려워한다. 나는 강조드리고 싶다.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향하는 학대는 언젠가 그다음으로 약한 사람을 향할 거다. 고양이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더 안전한 사회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여기에는 행정부에 대한 청원과 입법부에 대한 입법 요구도 포함될 것이다.
관객:
영화에 나온 고양이 레드에 관한 소식을 영화 속 마지막 시점 이후로 접한 게 있나?
이:
안 그래도, 레드를 돌봐주셨던 가게 사장님에게 영화가 개봉한다고 연락을 드렸었다. 참 모순적이게도, 영화는 강원도 춘천에서 시작되었는데 정작 그곳에는 있던 상영관이 사라져서 춘천에서는 영화를 바로 만나지 못한다. 영화 소식을 전해드렸을 때 꼭 보겠다고 말해주셨는데 보셨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전해 들었던 소식은... 레드는 겨울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길에서 살던 애라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여덟아홉 살쯤이었다고 들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길에서 사는 고양이 치고는 오래 살았지' 싶기도 하지만... 정확한 건 알지 못한다.
'영화에 고양이의 모습이 남아있으니까.' 사장님이 영화를 보겠다며 말한 이유였다. 여전히 이름으로는 부르지 않는다더라.
관객:
길에서 마주치는 동네 고양이에 대해 거리를 어느 정도 두는 게 적당할지를 몰라 고민스럽다.
이:
사람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다가오는 고양이는... 예를 들어, 영화에 나오는 조폭이는 사람 손을 거의 안 탄 모습이 나오는데 레드는 사람을 좋아했고 잘 따랐다. 나도 촬영하면서 레드에게 마음을 많이 줬기 때문에 고민했었다. 얘를 데리고 가서 같이 살아야 하나? 하지만 생각해보면 레드에게 그곳은 이미 칠팔 년을 살아온 터전이었다. 그런 레드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그 애에게서 터전을 빼앗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레드를 데리고서 내가 거기서 살든가, 레드를 두고서 내가 뒤돌아오든가.
고민할 게 아니었다. 나만의 욕심이었고 내 마음이 동해서 심란했던 것일 따름이었다.
관객:
내가 동네 고양이를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고 싶다.
나:
뜻밖의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정치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 지역구 의원이 있을 거다. 그 사람 사무실 앞으로 만 원, 이만 원씩 소액이라도 정치후원금을 내는 거다. 그러면 아무래도 의원에게 정책을 요구하는 영향력을 얻게 된다. 자신이 사는 동네의 고양이를 위한 정책을 그 영향력으로 요구하는 거다.
김하연 사진작가가 늘 얘기하는 말이 있다. '정말 될 수 있으면 가능한 한 캣맘이 되지 마라.' 고양이를 정말 아끼는 분이지만 고양이를 책임지는 일에 있어서는 역설적이게도 극구 말리는 거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의 삶에 관여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완전히 책임질 수 있을만한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많은 생각이 필요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혹시 동네 고양이들이 찾는 물그릇과 밥그릇이 어디에 있는지 그 자리를 아는가?
관객:
캣맘 한 명을 알아서 알고는 있다. 나보다는 몇 살 어린 친구이고 남자애이다. 하루는 아파트 단지를 같이 돌면서 고양이들이 밥 먹는 곳은 어디인지, 보통 어디서 숨어 지내는지, 또 잠자는 곳은 어디인지를 재잘재잘 안내해주었다.
조:
굉장히 친절한 분인 거 같다. 캣맘들은 보통 고양이들이 해코지당할까 봐 그런 걸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
이:
나는 그분이 하고 있는 활동을 같이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분도 자기 시간을 쪼개서 하고 있을 거다. 그러니 같이 활동하면 그분에게도 도움이 될 거고 그렇게 같이하다 보면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면 할 수 있는 새로운 뭔가가 생기리라 생각한다.
조:
나는 영화 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정치적인 사람인데 (웃음) 같은 맥락에서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어느 후보가 동물권과 관련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약속하는지를 보고 그 사람에게 투표를 하는 일. 나는 투표가 가진 힘을 믿는다.
한편으로는, '무심한 그러나 다정한'이라는 말이 있더라. 매일 밥을 챙겨주는 것만이 고양이를 위하는 방법은 아니다. 동네 고양이를 때리려 하거나 죽이려 하는 걸 막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는 자기가 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생명을 해코지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 소중한 존재를 지켜내기 위해 그들에게 맞서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1. 그 밖의 얘기
나:
사랑하면 닮는다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실제로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과 닮은 외모를 선호한다고 한다. 우리 세 명 다 집사인데, 어떤가? 자신이 고양이와 닮은 거 같은가? 나는 닮은 거 같고 실제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
나도... 내가 표를 안 내는데,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낯을 많이 가리고 말을 잘 못 걸어서 그렇지...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니 레드를 닮은 거 같다.
조:
그런가? 사람을 좋아하는가?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이:
나 사람 좋아한다.
나:
(웃음)
조:
허헣
조:
같이 사는 친구가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영화 포스터를 보며) 저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자주 짓는다. 비웃는 듯한 표정이다. 밥을 줘도 비웃고, 놀아줘도 비웃고, 집에 늦게 오면 늦게 온다고 비웃고, 일찍 오면 일찍 왔다고 비웃고. (한숨) 언제 들어오든지 '야옹야옹' 하고 운다. (나응식 원장을 바라보며) '왜 그럴까요, 원장님?'
나: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 들어오기 전에 얘기를 나누면서도 말했었지만, 분리불안증인 거 같다. '고양이를 부탁해'로 출연을 신청해주기를 바란다.
조:
허헣
1.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조:
저희가 앞으로도 같이 고양이 영화를 더 만들어 가기로
나:
저도...! 미야옹철 선생님과 같이 넷이서.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오리지널로...!
조:
네, 저희 넷이. 넷이서 앞으로도 만들 테니,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이:
이렇게 와주시고 또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하다. 극장에 나오시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위험을 부담하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저는 극장이야말로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확진자 중에서 극장에서 감염된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괜찮으시다면 주변 분들과 많이 찾아들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조:
안 그래도 관객층이 좁은 영화인데 극장을 찾는 인원 자체가 줄다 보니 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나:
영화를 봐주신 건 물론이고, 이렇게 시간을 내어 관객과의 대화까지 참석해주셔서 감사하다. 제 신간이 나왔는데 그 책에도 관심을 부탁드린다. (웃음)
아무튼, 영화 '고양이 집사'. 주변 분들과 SNS에 많은 홍보를 부탁드린다. 마블 영화보다 재밌다, '어벤져스: 엔드게임'보다 더 큰 감동이 있다는 식으로. (웃음)
1. 추신
조:
단체 관람! 매우 가능하다. 불러만 주시면 노트북과 파일을 챙겨서 달려갈 수 있다.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는 게 목표이다.
페이스북에 '고양이 집사'를 검색하시면 공식 페이지가 나온다. 거기에 대관을 문의하는 방법도 안내되어 있다. 필요에 따라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첫댓글 (대충 영화 감상문을 남기는 댓글. 수정 예정)
와~~ 쉽지않은 작업을 하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