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들이 떨어지며
바람에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교정
썸썽거리는 마음에
교정을 서성거리며 젊은 날에 부르던 노래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노래를 부르다 말고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그저 저만치 앞서 가버리는 가을을
무삼히 바라보았다
참 왜 이리 부질없이
세월이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이 노래를 배우고 부르던 내 젊은 날은
저 낙엽들이 운동장 구석댕이로
초라하게 몰려가 웅크리듯
그저 청소부 아저씨의 빗자라루에 쓸려갈 일만 남아
그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띤 낙엽
붉은 빛조차 퇴색되어져
바람에 마구 흩날리는 교정의 한 구석에 서서
나 또한 젖은 낙엽같은 마음이 되다
쫒기다 쫓기다
강원도 탄광촌 막장까지 흘러들어가
시커먼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쓰러질듯 쓰러질듯
위태위태하던
폐가
거기서 보낸 석달의
가을과 초겨울
송창식의 [날이 갈수록]을
부르고 또 부르며
망가져 가는 내 젊음을
노래에 얹어보던
그 젊은 날
우뚝 막아선 벽 앞에
애둘러서 갈 그 어느 한 곳조차 없이
흘러 흘러서 찾아들은 탄광촌
둘러봐도 둘러봐도
검은 산
웃으면 유독 하얗던 이빨과
폐병의 바튼 기침
기침을 할 때마다 무수히 쏟아지던 별
날파리같이 춤사위를 추면서 떨어지던 별, 별, 별
그것은
하루살이 별들이었다
벽으로 돌아누워
탄가루가 시커멓게 묻은 벽지를 쥐어뜯어가며
어머니를 부르고
하느님을 다시 부르면서
따순 밥 한 그릇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배불리 한 그릇만 먹어봤으면
이 기침이 멈출 것만 같은데
아무도 없었다
기침을 하면 울컥, 넘어오던 각혈
그 선연하던 붉은 피
눈앞에 어른거리느니
그저 잘 차려진 지극히 소박한 밥상뿐이었다
초겨울
첫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리를 걸어가는데
마치 각혈을 하며 바튼기침 끝에
눈앞이 화끈 불에 덴듯 동공이 확장되면서
무수히 쏟아지던 그 별들이
이번에는 첫눈이 오는
허름한 거리
전봇대
아래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회색빛 하늘 가득
하얀 별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었다
보건소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놓고
보건의가 손가락으로 폐가 헐어진 부분을 짚어가며
뭐라고 말을 하는데 그 웅웅거림을 나는 듣지를 못하고
첫눈이 쏟아지는 창밖만 동공이 풀린 상태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약이 한 움큼
손바닥 위에 놓여졌다
약봉다리가
한 보따리 되어
손에 들려졌다
보건소를 나오다가
모로 스르륵, 쓰러졌다
그리고 나직나직
입술조차 바짝 말라 혀까지 말려들어가는
슬픈 음성 쓸쓸한 마음으로
어깨를 흐득거리며
불렀다
나의 청춘은 날이 갈수록
점차 초라해져만 갔다
이 저녁
사십년 저 편의 노래를 나직나직 부르며
대학노트 한 귀퉁이를 찢어 끄적였던
옛글을 다시금 꺼내 읽어본다
공중에 매달린 태양을 보는듯 온통 시야에 가득한 회백색의 점들을 세는 서러움 눈을 감으면 자꾸 나타나는 점 . . . . . . 어두운 밤 수면위를 튀어오르는 저 빛천억광년을 지나 비로소 내게로 온빛
공중에 매달린 태양을 보는듯 온통 시야에 가득한 회백색의 점들을 세는 서러움
눈을 감으면 자꾸 나타나는 점 . . . . . .
어두운 밤 수면위를 튀어오르는 저 빛천억광년을 지나 비로소 내게로 온빛
물고기 비늘
꼭 움켜잡은 주먹에서
스.르.르. 빠져 나간 허공
턱수염을 훔친 손등에서 피가 난다
허공으로 빠져나간 미세 한 입자들을
손가락 끝으로 하나씩 눌러본다
꾹,꾹, 묻어나는 흰빛흐르는 흰빛의 눈물 그 옛날 가지 말라는 길위에서의 망설임
그예 그 길이 끝나는 곳의 쓸쓸함 되짚어 또 먼먼 길을 가야하는
길 나그네
그리움을 심하게 앓는다
바튼기침 마다에 별이 왈칵, 쏟아진다
어머니를 불러보고 하느님을 불러봐도 꼭꼭 닫힌 사방의 벽
밤새껏 죽음이라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다간 몸을 추스린 아침
새털같은 몸무게가 차라리 개운하다
죽음과 그리움으로 조제된
한 웅큼의 약을 삼킨다
폐부 깊숙히 바람 한 조각이 지날 뿐
말을 하면 자꾸 헛돌아 폐부에 박힌다
입안으로 꿀렁, 넘어온 피
다시 삼킨다
가을이 간다
3:34 송창식 - 날이 갈수록 1975年
출처: 국사모(국악을 사랑하는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좋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