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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아내가 허리 통증으로 인해 침대에 얹혀 수술실에서 나올 때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 가족이나 형제들이 큰 수술을 하고 나오는 모습을 나는 본 경험이 없다. 당시 축 쳐진 모습에 처절하기만 했다. 그저 가엽기만 하고 모든 것이 내 잘못으로만 생각이 들었다. 입원실로 돌아와 아파 아파 하면서 여보! 기도 해 달라며 신음하는 소리는 안타가운 심정 그대로였다.
인터넷의 뜻을 찾아보니 나이 40이면 불혹(不惑)이라고 하여 어느 환경에서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라는데, 아내를 만나며 함께 한 삶이 사십년이 되었다. 굳이 한자를 빌리면 취옥(翠玉)이라고 하여 여름날 푸른 나무들 처럼 늘 청명하고 푸른 모습으로 힘차게 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는 선물은 금으로 된 것이 아닌 에메랄드를 소재로 한 선물이 품격에 맞는다고 했다.
10월 중순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 사무실 근처 여행사에서 제주행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새벽에 떠나는 시간과 저녁 늦게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으로 예매를 했다. 물론 저가 항공에다 이른 시간대라 항공료는 저렴했다.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제주도 어딜 가고 무엇을 먹고 하는 계획도 없이 말이다. 며칠이 지난 후 여보! 11월초 제주도에나 잠시 다녀 오자고 하니, 제주도에는 왜! 하며, 왜! 라니. “10월 30일이 당신과 백년을 약속한 날이 잔아” 하며 점잖게 말을 했다. 미쳐 거기까지 생각은 안했는지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10월 31일 수락공항터미널에 도착하니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공항버스 타지 마시고 기다리라는 전갈이다. 김포공항까지 모셔드린다고 했다. 중장비 크레인을 운전하는 아들은 밤 새 일을 마치고 온다고 하니 고맙기는 했다. 새벽 6시 김포공항 대기실은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탑승수속을 밟고 있었다. 가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늦가을인데도 가족관광과 단체나들이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4년 전 인도로 선교여행을 다녀온 후 항공기 여행은 처음이다. 공항 활주로와 주변은 새벽이 가시지 않아 활주로 주변에 보안등과 공항일대에 주거지에 가로등도 차분하게 아침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비행기 창문 쪽에 앉은 아내는 창밖을 보더니 잠시 눈을 감아야 한다고 했다. 활주로 끝에 "요이 땅" 하면 이륙 할 비행기는 서서히 출발하며 출력을 더해갔다. 이륙 성공이다. 45도 각도로 힘차게 하늘을 치솟고 있다.
20년 전 제주여행을 하고 김포공항에서 나오며 들려오는 음악이 생각났다. 안치환의 "내가 만일" 이라는 노래다.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대 곁에 물들고 싶어”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제주공항 상공에 진입한 비행기는 착륙을 준비하고 있다. 일기는 좋았으며, 남쪽이라 그런지 확실히 춥지 않은 착한 날씨다. 불과 한 시간 거리의 제주인데도 서울과의 기온 차이가 많이 나며 11월인데도 따뜻하다.
제주공항을 빠나와 렌터카를 예약하는데, 그만 운전면허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며 예약을 할 수 없었다. 주민등록증은 안 된다고 했다. 안내원이 경찰서에 인적사항을 말하고 본인인증을 해야 한단다. 본인인증을 확인 한 후에야 렌터카 회사 미니버스를 탈 수 있었다. 많이 변했는지 내가 무지했는지, 하기야 내 스스로 렌터카를 빌리는 것은 처음 이었으니 모를 수 밖에 없었고, 항공권 예약 할 때에도 여행사 직원은 운전면허증이나 주민등록증 중 어느 한 개 만 소지 하면 된다고 말했으니까.
렌터카를 인수 한 후 골목길을 지나 서귀포로 가는 대로로 진입했다. 도로 양쪽에서 정렬해 서있는 야자수들이 팡파르를 불며 환영했다. 오전 시간이었지만 넓게 펼쳐지는 도로는 예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차선도 우리내외를 반기듯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멀리서 햇빛에 반짝이는 서귀포 앞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성 비서인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예약한 콘도미니엄에 도착했다. 호텔 못치 않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해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말도 탈도 많던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작은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제주에 올 때마다 들렸던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긴 치마폭을 내린 모습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힘찬 폭포수는 내리 쏟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채 아내는 마냥 즐거운가 보다. 행복의 증표인 사진도 휴대폰에 담았다. 폭포 조금 못미처 갯바위에서 해물모듬을 한 접시 시켜 그늘진 곳에서의 먹음은 짜릿한 행복의 순간이다. 반짝거리는 쪽빛 바다를 보면서 말이다. 평일인데도 젊은 연인들도 꽤 보인다. 북적대는 휴가철 보다 한적해서 그런가 보다.
출발 하던 첫날 잠을 설쳐 그런지 간밤에 단잠을 이를 수 있었다. 거실에서 보이는 한라산을 솟아 오른 햇살이 찬란히 비치는 상쾌한 아침이다. 콘도미니엄 편의점에서 사온 김치와 쌀, 작은 호박 한 개와 감자만 넣은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물론 아내의 수고로 편안한 마음 그대로다. 숙소를 나와 조각상 앞에서 부부인증 작품을 담았다. 쾌청하고 맑은 날씨가 오늘을 즐겁게 하리라. 잠시 부동산 관련 확인 차 서귀포 시청으로 향했다. 청사는 깨끗했고 특히 사무실 내부가 칸막이가 전혀 없어 산뜻한 기분이다. 제주는 자유특별자치지역이다.
중산간 도로를 따라 성산 쪽으로 향했다. 아내가 급히 여보! 저기 슈퍼에 좀 들려가자고 한다. 왜! 밥 사먹지 말고 특산물인 제주 통돼지고기와 채소 등을 사서 내일 아침부터 해먹자고 했다. 사먹는 것이 입에도 그렇고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어제 저녁 처럼 숙소에서 그렇게 먹자고 하니 나 또한 싫지 않았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사서 차에 실었다. 운전 중인데도 자꾸 감귤 밭으로 시선이 간다. 그럼 내려 사진이라도 몇 장 찍고 가자고! 말하니 " 그럽시다" 하며 아내의 기분 좋은 답이다. 함께 찍고, 혼자 찍고, 조금 고개 좀 올려 봐~~~ 좀 더. 좀 더. 하나 둘 셋, 찍은 거 보자고! 아냐 다시 찍자. 여러 장을 담으며 마음껏 즐기고 마치 행복의 파노라마다.
쇠소깍 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핸들을 돌려 10분 정도 가다 보니 쇠소깍 해변이 이내 보였다. 지나가다 잠시 들리는 해변이지만, 해수욕장이 있고 주차 공간이 있어 사진 몇 장을 찍고 우도로 향했다. 전날 관광안내지도를 보니 성산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누구한테 들은 기억은 배를 타고 건너 주변을 보고 관광을 하다 보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잘 아는 지인이 제주도에 가면 한 번 가보라는 기억이 있어 달려 왔으나 이미 3시가 넘어 매표가 마감 되었다. 좀 시간을 알아 보고 올 것 그랬다며 약간 후회 했다. 못내 아쉬움 만 남긴 체 차를 돌려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저녁 하늘을 오렌지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석양의 모습은 마치 유희를 하고 있는 듯했다. 대형화판에 힘이 실린 붓으로 휘갈긴 멋진 추상화 그대로였다. 오후 4시. 낮 시간이 짧은 11월이지만, 우리 부부만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꼬불꼬불 입구를 찾아 성산일출봉 주차장에 도착했다. 네 번 제주도를 다녀갔지만, 일출봉에는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성산일출봉이다. 석양에 아름다움을 충만하게 감상하며 성산일출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내려오는 가운데 조금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우리부부와 몇 커플들은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며 우도를 멀리서 바라보니 우도의 자태다. 소가 누운 모습이니까. 우도 머리부터 해안선을 따라 켜진 가로등 불빛이 아름다운 우도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건너편 우도에도 오르는 성산일출봉위에도 달이 떠 있다. 한 폭의 동양화다.
해는 한라산 왼편에 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아내와 함께 성산일출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하기야 해 지기 시작하는데 오르는 사람이 많을 리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봄 허리 수술로 인해 올라갈 수 있을까 했는데 잘도 오른다. 내가 따라가기 힘들 만큼 말이다. 괜한 걱정을 확 날려 버렸다.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 여보!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오르네. 숨이 차 가쁜 숨은 몰아쉬었지만 몸 상태가 매우 좋다고 했다. 거기 서 봐! 몇 장 찍고 올라 가야지. 오르다 보니 마침 모녀 바위 처럼 마주보는 바위 사이에 초점을 맞췄다. 찰깍.
가파른 계단이었지만 탄력이 있는 소재로 설치했기에 다리에 무리는 오지 않았다. 쉬엄쉬엄 오르니 정상에 도착했다. 뉘엿뉘엿 해 지는 순간을 놓치고 십지 않았다.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이 바빠졌다. 남쪽 동쪽 방면에 바다가 훤히 보이는 뛰어난 전망이다. 바다를 뒤로 하고 옆 사람에게 한 컷을 부탁했다. 등산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정상에 도착한 기쁜 마음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늦가을이지만, 백록담 처럼 움푹 파인 일출봉 아래는 시퍼런 모습의 뒤에 배경은 우리를 향해 보여주고 있었다. 땀을 식힌 후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왔던 계단을 위에서 내려다 보며 또 한 작품을 찍었다. 한라산 정상 동쪽이 선명하게 보이며 오렌지색에 석양 하늘에는 남서방향으로 향하는 비행기 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괌에서 출격한 미 공군 항공기였다.
성상일출봉에서 일출을 보지 않고 일몰의 모습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즐거운 마음을 가슴에 가볍게 간직한 채 하산을 해야 했다. 일출봉 아래 해변과 주변 상가의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등이며 상가의 내온사인과 전등을 비롯해 중턱 이하로 내려오니 소가 머리를 들고 누워있는 건너편 우도의 불빛도 보였다. 느리게 보다는 더 빠르다는 표현일까 어둠이 깔리고 있다. 야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여보! "이쪽에서 보니 달이 보이는데 저 바위와 일출봉 옆구리 사이로 좀 서 봐" 일출봉 동편 바위와 수평선 위에 달이 얹혀 있었다. 잘 나오던 흐리게 나오던 휴대폰에 담아 추억을 담았다. 여보, 더 머무르고 싶은데 좀 더 있다 갈까!
"콘도에 가서 저녁 먹어야지" 하는 아내의 대답이다. 콘도에는 어제 슈퍼마켓에서 사온 제주 통돼지와 상추를 비롯해 양파와 깻잎, 야채와 호박 감자 등 구수한 된장찌개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어서 들어가고 싶은 모양이다. 안내양인 내비게이션 명령에 복종하니 올바르게 숙소로 인도해 주었다. 쌀을 씻어 밥과 찌게를 준비하고, 나는 전기스토브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 놓고 통돼지를 궂기 시작했다. 숙소에 들어 오기 전 편의점에서 조금 사온 김치와 양파, 마늘과 된장을 탁자에 차려 놓았다. 한 점 한 점 뒤집어 가며 익은 삼겹살은 둘의 입을 즐겁게 했다. 서울에 어느 식당이나 집에서 구워 먹을 때와 기분이 다르다. 콜라로 건배도 하니 행복의 수치는 수학의 기호처럼 무한대였다. 거실 문 밖 한라산 중간산 도로에 오가는 자동차 불빛이 번쩍인다. 둘째 날의 밤이며, 서귀포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엎드려 지도를 보며 내일 일정을 잡아보자.
셋째 날까지도 하나님은 좋은 일기를 주시며 축복하신다. 짐을 챙겨 놓고 콘도를 끼고 돌아보니 야자수와 함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강한 햇살과 맑은 날씨로 인하여 더욱 선명하게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작은 규모의 주상절리 그림도 있었으며, 강정마을 위 먼 곳에서 내려오는 강정천이 많지 않는 흐르는 물이 서귀포 앞바다로 흐르고 있었다. 아침햇살에 반짝반짝 비치는 앞바다의 모습도 뒤로 하며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정문에서 포즈를 취하고 아반떼의 핸들을 대정읍 쪽으로 돌렸다. 이어지는 도로는 널찍한 탄탄대로다. 천제연 폭포 용머리 해안과 하멜 기념관, 그리고 "생각하는 정원"과 잘 알려진 동보시장과 제주 시내 구경 좀 하고 S호텔 회장이 협조한 식당을 찾아 저녁식사를 하고 마지막 날 여행 일정을 마치려고 했다.
천제연 폭포로 향했다. 이름을 보면 천지연 폭포와 형제간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각각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며 일단 카메라에 담았다. 화려하고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웃에 사는 형제 처럼 띄엄띄엄 떨어져 사는 삼형제처럼 느껴졌다. 오손도손 각자가 다른 모습으로 관광객들의 시선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세 명의 멕시코 젊은이 들이 한국을 섭렵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유학생 모습이다. 아치모양의 하얀색의 무지개 다리가 보이는데 건너가면 돔 처럼 생긴 투명건물이 여미지 식물원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오래 전에 보았는데 열대식물을 비롯해 두루두루 살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용머리 해안으로 향했다. 조금 지나니 이내 송악산이 제일 먼저 환영인사를 한다. 산방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정표를 따라 향하니 하멜기념관과 용머리 서쪽 해안이 보인다. 예전 에 한 번 들렸던 곳인데 좀 자세히 살펴 보아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용머리 해안으로 가는 입구에 하멜기념비가 있다. 네델란드 국적의 무역선 "스페로 호크"가 심한 풍랑으로 이곳 해안에 표류되었다는 안내문이 쓰여져 있었다. 그런데 하멜의 이야기 보다 2002년 월드컵 축구에 "거스 히딩크"감독이 먼저 떠오른다. 네델란드와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좋은 우방국가다. "스페로 호크호"를 바로 뒤에 욤머리 해안 입구가 나왔다.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자마자 해안 절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온 젊은 연인들과 꽤 많은 사람들이 해안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관광 할 만한 곳이다. 꽤 많은 광광버스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파도로 깎이고 깎인 모습들이 장관이다. 해안가 바다 속이 투명하게 보인다. 찰싹거리며 들며 나는 얕은 파도소리가 또 다른 정감이다. 바위 바닥에 찰싹 붙어있는 게딱지를 뜯어보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동화이며 그림이다. 모퉁이로 돌아 기암괘석의 깎인 모습들을 휴대폰에 열심히 담았다. 산방산 동편과 진입로에 차량들의 앞 유리가 이따금씩 반짝거린다.
대정읍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해 놓은 식당으로 향했다. 대정읍사무소 맞은편에 자리 잡은 식당은 s호텔사장의 후원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6호점이었나!……. 산뜻하고 작은 규모의 식당인데 쌈밥이 주 메뉴였다. 상추 깻잎 쑥갓의 야채와 고등어 조림 한 토막과 도자기에 우럭 된장과 숙주나물 콩나물 국이다. 알맞은 양념에 호텔음식을 기준으로 해서 그런지 반찬들이 맵고 짠 듯한 맛은 전혀 없었다. 정갈하고 단순했지만, 가격도 요즘 말로 착했으며 먹을 만했다. 우리 부부처럼 처음 오는 고객들과 부부고객 간편한 복장의 젊은 연인들도 들며 나며 했다. 맛의 특징은 없었지만, 거부 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괜찮았다. 이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은 모두 대정읍사무소에 주차를 했다. 제주특별자유지역 다뤘다.
어제 저녁 내일의 일정 중 마지막으로 가볼 곳은 제주시내와 공항근처 그리고 동부시장과 대정에서 공항 가는 중에 가까운 곳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대정사무소를 벗어 나며 십여 분 정도 가니 "생각하는 공원" 이정표가 보였다. 오후 3시다. 그런데 관광지도에 나올 정도면 어느 정도 유명한 곳일 텐데 넓은 주차장에는 승용차 십 여대와 대형관광버스 한 대만이 주차해 있었다. 이상했다. 입장권이 일만 오천 원. 어~! 생각보다 비쌌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가격에 입장료라면 들어 가 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그냥 가자고 했다. 내 생각처럼 사람도 많지 않고 비싸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이왕 왔으니 들어가 보자고 했다. 거금 삼 만원. 입장료, 문화사용료, 제주 방문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함께 천천히 거닐며 이 정원이 생기게 된 동기서 부터 식물 생태계의 자라는 모습과 특징을 알리는 알림판과 수많은 꽃나무 과일수 등 전혀 알지 못하는 종류의 관상수들이 저마다의 달란트를 알리듯 무언으로 내용을 알리고 있었다. 가을에 흔한 감나무 분재서 부터 무화과 나무 등에 이르기 까지 종류도 많았으며 작은 규모의 인공폭포와 정원들의 모습이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있었다. 자료로 소중하게 보관하기 위해 녀석들의 모습과 생장하는 과정들을 설명과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생각하는 정원은 시골에서 태어나 제주로 건너온 가난한 젊은 님자에 의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오랫동안 가꾸었다는 안내문을 보며 한사람의 수고와 노고가 이곳을 찾은 국민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있었다. 마지막 돌아 나오는 곳에 기념관을 보고 연못에 잉어들에게 과자 몇 개를 뿌리니 물탕을 튀기며 죽자사자 밀치며 난리다. 생태계 살아가는 모습은 인간이나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같은가 보다.
생각하는 정원 / 성 범 영 원장
" 글을 일고 생각하는 민족은 문화 민족이 될 것이고, 글을 읽지 않고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민족은 미개 민족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다가오는 변화에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대처 할 것 인가를 심사숙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문화예술을 힘이고 지혜입니다. 문화예술 만이 우리 인간의 삶에 풍요한 기쁨을 안겨줄 것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러 젊은이들이여.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배워 가겠습니까. 생각의 변화는 자신을 개혁시키고 자신의 풍요로운 행복으로 인도 해줄 것입니다." 좀 더 긴 시간을 갖고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고 오감을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현장도 좌우를 살피며 재미는 없더라도 겸허하고 배려와 정원 원장의 "심사숙고"라는 단어가 무게가 느껴진다.
제주에 건너온 사흘 동안 화창한 일기는 계속 되었다. 동보시장으로 향했다. 유명한 과자라는데 가는 길이 공항근처라서 그런지 소통이 원활하지가 않다. 렌터카 반납시간과 저녁식사까지 생각하면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시장까지는 갔는데 둘러 볼 시간이 부족해 이내 차를 돌려 회사에 반납했다. 유명 맛집을 선택했지만, 밖에서 보니 손님도 별로 없고 하여 아내랑 다른 곳으로 향했다. 택시기사가 안내하는 대로 가니 규모 있고 좀 수준 있는 식당이다. 고등어 자반과 갈치구이 1인분 씩을 주문했다. 제 맛은 내는데 예상 보다 비싼 가격이다. 관광특구 제주도이고 외국인을 상대하여 그런지 서울에서 보다 높은 가격을 시에서 인정하는 것 같은 생각이다. 저녁 일곱 시가 넘었다.
제주공항 이륙시간이 아홉시니 시간은 충분했지만, 공항으로 향했다. 가을은 저 멀리 가 있지만 공항대기실은 북새통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리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다. 동보시장에서 지인들에게 간단한 선물 열개를 구입했다. 가격에 부담되지 않고 많이 달지 않은 과자인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사십 년의 아내와의 함께했던 삶이 물질로는 충족하지 않았지만, 우여곡절의 삶은 누구에게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이야기 아내에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삶의 내용이 좋았던 좋지 않았던 서로가 이해하는 마음이다. 남편으로서 그저 아내의 내조가 이유를 묻지 않고 고마울 따름이다. 허리를 수술하고 여보! 아파~아~~~파 기도 해줘! 하며 축 늘어진 채 한 마디만 하고 흰 천에 덮여 나온 그 순간이 그저 가엽기 만 하고 처절한 모습을 생각하면 글 쓰는 이 순간 고마움에 뚝뚝 떨어지는 것은 아내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과 사랑이며 아내에 대한 고맙고 감사의 눈물이어라.
내가 만일(안치환)
내가 만일 / 안치환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 처럼
나 그대 밤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대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어어허-
이런 나의 마음을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대 위해 비가 되겠어
더운 여름날에 소나기처럼
나 시원하게 내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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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내를 만난 지 사십 년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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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제주도를 다녀왔던 기행문입니다.
가장 좋았고 부담 없었던 편한 여행이었습니다.
맹호
제주도에대한 기행문 잘읽고갑니다 한편에소설같네요 좋은 추억만드셔군요
나는 아직 마누라님하고 여행을못가보앗네요 손발이맞아야 여행도가는데 울
마누라는 잘안돌아다닐려고해서 아직 못가보았네요 오늘아침은 날씨가 좀 풀린것같네요
좋은 주말되세요
예. 안녕하세요. 모처럼 다녀 왔습니다.
석달 전이죠!
부인께서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가요?
어제 보더도 더 기온이 올라갔네요.
며칠 있으면 설날 연후가 다가오네요
그런데 어른들은 그렇게 즐겁지는 않은가 봅니다. 왜 그런가요???
아직 못가본 제주도. 가만히 앉아서 제주여행 잘했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지요?
춥디추웠던 겨울도 꽁무니가 보이는듯합니다.그래도 겨울은 뒷끝있으니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