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압박 받던 부동산원 노조 2019년 경찰 제보, 靑도 인지… 그럼에도 실질적 조치는 없어
문재인 정부가 아파트 가격 통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들은, 조작 지시를 받고 거짓 통계를 만들어내야 했던 한국부동산원 조사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부동산원 조사원들이 속한 부동산원 노동조합이 2019년 가을 경찰 정보관에게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아파트 가격 통계에 외압을 가하고 있다’고 제보한 정황을 입수했다고 17일 밝혔다. 그러나 제보를 전달받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실질적으로 외압을 막는 조치를 했다고 확인된 것은 없다. 관련 부서에 “부동산원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이날 대통령실은 전 정부의 통계 조작에 대해 “기업으로 치자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인 국민, 해외 투자자와 해외 시장을 기망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15일 감사원이 문 정부가 집값과 소득, 고용에 관한 정부 공식 통계를 장기간 조작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자, 문 정부 청와대 참모 및 장관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사의재’는 “통계 조작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통계 조사와 작성에는 수많은 공무원, 조사원들이 참여한다”며 “이런 모든 이들이 조작의 의도를 가지고 한 몸처럼 움직여야 감사원이 주장하는 통계 조작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공무원·조사원들은 청와대와 국토부 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원치 않게 통계를 조작하면서도, 그 불법성을 거듭 지적하는 한편으로 조작의 내막을 보여주는 기록들을 남겼다. 감사원 관계자는 “국토부 실무자들과 부동산원 직원들로부터 확보한 진술과 기록이 수천 쪽 분량”이라고 했다. 이들은 청와대와 국토부 고위층이 통계 조작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압력을 넣으면서 한 말들을 온라인 메신저 등에 적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 보고한 아파트 가격 상승률 통계 중간 집계값에 대한 고위층의 반응과 분위기, 하달된 지시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각 고위 관리가 통계 조작과 관련해 어느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6월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부동산원에 주 1회 실시하는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 중간 집계값을 만들어 가져오게 했다. 이 조사는 전국의 부동산원 조사원들이 미리 표본으로 선정해놓은 아파트들을 현장 조사해 7일 전에 비해 가격이 얼마나 오르거나 내렸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 실장 요구에 따라, 조사원들은 주 1회 하던 조사를 주 2회 해야 했다. 지난주 조사 시점으로부터 3일만 지난 상태에서 아파트 가격 등락을 먼저 확인해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4년 5개월간 청와대와 국토부는 이렇게 보고된 ‘중간 집계’ 아파트 가격 상승률보다 최종 집계된 상승률이 높으면 ‘가격이 올라간 이유를 대라’라고 요구하는 등의 방식으로 통계 조작을 압박했다.
수사의뢰 대상에 오른 장하성·김현미 - 2018년 9월청와대에서 열린 '포용국가 전략회의'에서 장하성(왼쪽) 당시 정책실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화를 하고 있다. 감사원은 최근 "문재인 정부 시절 통계를 조작한 의혹이 있다"며 장 전 실장, 김 전 장관 등 문 정부 관계자 22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연합뉴스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높게 조사되면, 해당 지역 부동산원 지사장이 국토부로 호출돼 ‘소명’을 해야 했다. 나중에는 말단 조사원까지 국토부로 호출됐다고 한다. 몇 명이 시범적으로 호출된 뒤에는 ‘호출하겠다’고 넌지시 말하는 것도 압박 수단이 됐다. 부동산원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주에는 (국토부 관리) ○○○에게 오셔서 보고하셔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동산원 본사도 지사 조사원들에게 특정 숫자를 제시하면서 ‘상승률이 이 숫자 이상으로 나오게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다방면으로 압박을 받은 조사원들은 직접 조사한 아파트 가격 대신 이를 임의로 깎은 가격을 입력했다. 이렇게 거짓으로 집계된 가격 상승률조차도 너무 높다고 생각되면, 본사가 값을 더 깎아서 청와대와 국토부로 보냈다.
부동산원 직원들은 통계 조작의 원천인 중간 집계값 보고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2017년 8월부터 4년간 12차례나 냈다. 통계법이 금지하고 있는 ‘작성 중 통계 사전 제공’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통계법에 따르면, ‘작성 중’인 통계는 새로운 통계를 설계하거나 기존 통계를 개편하기 위한 경우에 한해서만 미리 받아볼 수 있다. 이 경우가 아니면 작성 중인 통계를 받아보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중간 집계값 받아보기를 2017년 말 잠깐 중단했다가 한 달 만에 다시 재개했다. 나머지 요청은 묵살했다.
참다 못한 부동산원 노조는 2019년 가을 경찰에 청와대와 국토부의 외압을 제보했고, 이 내용은 그해 11월 공직기강비서관실에도 전달됐다고 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실과 국토부가 영향력을 부당하게 행사하고 있다고 보고, 국토교통비서관실에 ‘부동산원에 직접 전화하지 말라’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런 결론을 국토부에도 알렸다. 부동산원에 대한 압박을 중단하라는 취지였다. 이는 김현미 당시 장관에게도 보고됐다고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비서관실과 국토부가 작성 중인 통계를 미리 받아서 통계 최종 수치를 고치게 하는 일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후속 조치를 취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은 최강욱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7일 통계 조작 감사 결과에 대해 “국가 장래를 위해 엄정하게 다스리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의 기본 정책 통계마저 조작해 국민을 기망한 정부는, 기업으로 치자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인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거래 상대방인 해외 투자자와 해외 시장을 기망한 것”이라며 “책임을 묻고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도 회계 조작의 공범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 정부 인사들의 모임인 ‘사의재’는 통계를 미리 받아본 것에 대해 “시장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이런 반박이야말로 ‘작성 전’ 통계를 받아보는 불법 행위를 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문 정부 기간에 고용률이 사상 최고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유하고, “문재인·민주당 정부 동안 고용률과 청년 고용률 사상 최고, 비정규직 비율과 임금 격차 감소 및 사회보험 가입 확대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통계 조작 논란에 우회적으로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pil@chosun.com
첫댓글 노조의 주요역할이 노조원 보호죠. 이런 제보 근거가 없다고 하면 한국부동산원 직원들이 다 덤터기 쓸뻔...
노조원 권익을 위해서는 권력과도 맞설 수 있는 게 노조의 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