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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묵상글 ( 12월 19일. - 12월 19일 -가슴이.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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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2월 19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가슴이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오늘 주님의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그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고 얘기하고,
이어서 그것이 그의 기쁨일 뿐 아니라 많은 이의 기쁨이 될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즈카르야는 아이를 달라고 청원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 청원은 소싯적 청원이었을 것입니다.
설마 70 넘어서까지 자식을 달라고 했겠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정말 주책바가지라고 해야 하겠지요.
그러니 이 청원은 젊었을 때 한 것이고,
그야말로 묵은 청원이 이루어진 것인데,
그렇다면 응답이 주어졌을 때 기뻐 날뛰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불신의 태도를 보입니까?
진정 늙은이가 애를 낳는다는 것은
아무리 하느님이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제 생각에 그런 것은 아니고
그래서 즈카르야의 불신을 너무 나무라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일이 자기에게 생긴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너무 엄청난 일이 닥치면
순간은 믿기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그래서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곤 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어두운 데 있다가 바로 밝은 데 나가면,
반대로 밝은 데 있다가 바로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너무 눈이 부셔서 또는 너무 캄캄해 감각 기능이 순간 망가지듯
우리의 믿음 기능도 순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불신의 말은 입에서 나오지 말아야 하기에
구원의 찬미가 제대로 터져 나올 때까지 벙어리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영적인 냉가슴을 앓아야 합니다.
그리고 냉가슴을 앓는 동안 늙은이의 가슴은
젊은이의 가슴처럼 다시 그리고 점차 끓어올라야 하고,
고작 자기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는 작은 가슴이 아니라
인류 구원이 이루어진 것을 찬미하는 큰 가슴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사는 너도 기뻐할 테지만 많은 이가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즈카르야처럼 늙은이라고 생각되는 분이 있다면
고작 젊어지거나 젊게 살려고 애쓰지 말고 구원을 살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식이 구원의 도구가 됨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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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2월 19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우리는 어제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곧 어제는 “의로운 사람”(마태 1,19) 요셉의 이야기였고, 오늘은 “하느님 앞에 의로운 이들”(루카 1,6)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이야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예고는 구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고 너무 늙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서 거룩한 인물이 태어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사실, 성경에는 여러 거룩한 여인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창세 11,30), 이사악의 아내 레베카(창세 25,21), 야곱의 아내 라헬(창세 29,31),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1사무 1,2),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삼손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판관 13,2), 그리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루카 1,7)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거룩한 인물들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장소와 시간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곧 오늘 <복음>의 장소인 성전의 ‘두 제단’은 두 계약을, 그리고 옛 계약에 따라 ‘제사를 드리는 시간’에 벌어진 이 일은 구약 시대와 신약을 연결해줍니다. 따라서 요한의 출현은 옛 계약의 율법과 사제직이 끝났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경계가 무너지는 일입니다. 벽이 무너지고 막힌 것이 사라집니다. 이는 우리를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사실, 요한은 불임인 늙은 여인에게서 태어나고, 그리스도는 동정인 젊은 여인에게서 태어납니다. 여기에는 어떤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막시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의 인물인 요한은 늙은 여인의 식어버린 피에서 태어나야 했고, 장차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실 주님은 꽃처럼 피어나는 처녀의 몸에서 피어나셔야 했던 것입니다.~그리고 즈카르야는 의심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잃었고, 마리아는 곧바로 믿었기에 세상을 구하는 ‘말씀’을 잉태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아기의 잉태를 알려주면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줍니다. ‘요한’이란 이름은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이처럼, ‘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을 드러냅니다. 곧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루카 1,17)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되새겨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 혹은 우리가 만나는 이 안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탄생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비를 입었으니, 기뻐하며 자비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 1,24)
주님!
당신께서는 저의 무능과 허약 안에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피하고 도망쳐도 보물을 찾듯 찾아오시고,
거부하고 배신해도 목숨처럼 아끼시며 끝까지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 지금 지체치 마시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소서.
제가 응답하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를 이루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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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2월 19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하늘의 별은 여전히 있다
밤하늘이 유난히 빛났습니다. 별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기온은 뚝 떨어졌지만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상쾌했습니다. 가끔은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주님을 찬미할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먹구름에 가려져 별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별들은 별의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지, 모든 별이 아주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은총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항상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내가 그분의 은총을 느끼든 그렇지 않든 풍요로움으로 여전히 있습니다. 담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으면 언제든 충만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흔들비쭉입니다. 기대하는 바가 채워지면 호들갑을 떨고,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면 투덜대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나 넉넉함으로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은총이 왜 꼭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주어져야 하나요? 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심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손을 털고 주님께 맡긴다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어주신”(요한3,16) 그분께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을까요?
즈카르야는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흠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 하면서도 기도가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루카1,13).고 하였지만,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1,18). 하며 보이는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천사가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벙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루카1,20). 하느님 앞에서 의롭고 흠 없이 살아온 즈카르야, 엘리사벳에게도 시련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시련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요? 예기치 않은 처지, 상황을 접하게 될 때 나의 믿음의 현주소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그분의 은총은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시건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왜 그리 힘이든지요! 간절히 청하고는 그저 그분의 처분을 바라는 삶, 그리고 그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둠에 갇힌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없는 것이 아니듯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은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일깨움이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엘리사벳이 잉태한 후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1,25). 은총은 언제나 넉넉히 우리를 기다립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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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2월 19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저는 ‘가족계획’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 세대입니다. 가족계획이라는 말의 의미는 “부부가 생활 능력이나 건강상태에 맞추어 자녀의 수나 출산의 간격을 계획적으로 조절하는 일을 가리키는 가족학용어.”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의미는 ‘출산억제 정책’입니다. 정부에서 발표했던 가족계획의 구호를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표어는 이렇습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71년)→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78년)” 이렇게 강력한 가족계획의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적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인구감소라는 위기 앞에서 정부는 다른 의미의 가족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바로 ‘출산장려 정책’입니다. 이는 2,000년대에 정부에서 발표했던 가족계획의 구호를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표어는 이렇습니다.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입니다.” 정부에서 출산장려 정책을 실시하고, 다자녀 가정에 대해 많은 혜택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가족계획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앞으로도 더 좋아질 가능성은 적습니다. 정부의 혜택이 있을지라도, 다자녀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족계획’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아브람의 몸에서 나온 아이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시고,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내가 너의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이니,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자라야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난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많은 자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하느님의 자녀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사제 즈카르야에게 보냈습니다.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하느님 구원사업의 정점은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의 만남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신앙인에게 가족계획이란 하느님이 창조사업에 함께하는 숭고한 소임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족계획이란 하느님이 구원사업에 함께하는 거룩한 소임입니다. 사제는 혼인성사를 앞둔 배우자들에게 혼인의 목적을 특별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사제는 다음 사항을 알려줍니다. “가톨릭 신자 배우자는 혼인한 후에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것이며 자녀들도 모두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하고 종교 교육을 받게 하도록 노력할 것을 서약해야 합니다. 신자가 아닌 배우자에게는, 신자인 배우자가 혼인 후에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락하며 자녀들도 세례를 받게 하고 종교 교육을 시켜야 할 중요한 의무를 약속하였음을 알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내가 세우는 계획이 나의 영광과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세우는 계획이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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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2월 19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이것은 요한 세례자를 표현한 말 중 가장 정확한 말일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태어나시기 전 주님의 길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외침’, 혹은 ‘소리’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이는 하느님 앞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나이는 우리 인간들이 정해놓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10살이라면 하느님 앞에 어린이이고 나이가 100살이면 하느님 앞에 성인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는 모두가 다 어린이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는 일도 아닌 일,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르는 그 일이 일어납니다. 엘리사벳이 임신을 하게 됩니다. 엘리사벳이 다섯 달이나 숨어지냈던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기적을 사람들은 기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잉태된 요한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즈카르야에게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요한의 탄생을 알려줍니다. 즈카르야 역시 자신이 처지를 천사에게 말합니다. 즉 인간적인 한계를 하느님의 천사 앞에서 말한 것입니다.
이내 즈카르야는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말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과 사랑을 묵상하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침묵 안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길 앞에서 하늘나라를 외칠 소리는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소리를 우리 안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십니다. 우리 마음을 하늘나라로 향하십시오.’라고….
모든 피조물은 약이 필요합니다.
제게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살고 있는 이곳 인천과는 아주 먼
경북 영천에 살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직업은 ‘농약사’입니다.
영천에서 농업에 종사하신다면 ‘동화농약종묘사’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얼마 전 시간을 내어 영천에 내려갔습니다. 친구가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농약 방에 머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각종 농약을 보며, 약이 필요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식물도 아프면 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희는 살아온 이야기, 얼마 전에 있었던 이야기, 가족의 안부들을 물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돌아오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 친구와 했던 그 모든 대화가 우리들의 약이었다는 것을,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우리들의 약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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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2월 19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종종 여행을 갔습니다. 이렇게 과거행을 쓰는 이유는 이제 여행을 잘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좋은 여행을 위해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 여행지에 어떤 것이 있는지, 즐길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풍요로운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여행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힘듭니다. 그래서 공부할 필요 없이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쉼에만 집중하면서 한적한 곳을 찾아갑니다.
성지순례를 갈 때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한 만큼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과의 연관성, 그곳 성지의 역사와 유래 등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그 성지에 다녀왔어도 어디 다녀왔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알려고 노력할수록 많은 것이 보이는 법입니다. 그런데 주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어떤 신부가 제게 “너희 동네의 그 집 가봤어?”라면서 맛집을 물어봅니다. 처음 들어보는 집이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그런 곳이 있었어?”라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았고, 또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갑자기 주님께서 나타나셔도 주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늘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은 하면서도, 주님을 보는 순간에 두려움에 벌벌 떨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하느님의 천사가 사제인 즈카르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해 말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성전은 예루살렘에만 있었기에, 사제들을 조로 나누어서 차례로 한 주일 동안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조의 차례가 되면 복음에서 보듯이 제비뽑기하여 분향할 사제를 정했습니다. 바로 즈카르야가 주님의 성소에서 분향하던 중에 주님의 천사를 만났던 것이지요. 이 상황에 대해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루카 1,12)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13)라고 말합니다. 천사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온 존재, 결국 주님을 만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워해야 할까요? 아니면 기뻐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주님 알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주님 앞에서 기쁨의 감정보다 두려움의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주님을 아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큰 기쁨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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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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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2월 19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우리는 모두가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입니다.
-욕심없으면 어디나 천국(天國)-
“오 옛세의 뿌리여, 만민의 표징이 되셨나이다.
주 앞에 임금들이 잠잠하고 백성들은 간구하오리니
더디 마옵시고 어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오 옛세의 뿌리여’로 시작되는 대림 제2부 셋째날 “O후렴”이 참 애절하고 간절합니다. 바로 대림시기 ‘어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주님께 바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그리워, 보고 싶어, 선물처럼 찾아 오시는 주님을 설레는 기쁨으로 깨어 기다리며 마중 나가는 대림시기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만날 설레는 마음, 설레는 기쁨으로 한밤중 일찍 일어나 강론 쓰기로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시처럼 찾아왔네!” 라는 시처럼 날마다의 강론 역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임을 날로 깊이 깨달아 갑니다. 그러고 보면, 비단 특정의 대림시기뿐 아니라 하루하루 일년 열두달 모든 날이 오시는 주님을 설레는 기쁨으로 기다리며 마중 나가는 대림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불암동 수녀원 아랫집 수녀들이
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요셉수도원 보수공사에 가난한 과부의 헌금으로
참여하고자 합니다. 저희의 사랑과 정성으로 받아주세요. 감사합니다.
2023.12.16.불암동수녀원 11명 가족 드림
*<3백만원>선물하셨습니다. 용돈 모으고, 도토리 팔아서 번 돈이랍니다.-
수도원 알림판에 붙은 수녀님들의 참 좋은 선물 내용에 감동했습니다. 눈만 열리며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도토리가 무수히 열리는 수도원 정문옆 수녀원 뜨락의 거대한 참나무를 보며 쓴 “욕심없으면 어디나 천국”이란 22년전 시도 생각납니다. 지금도 여전 거기 그 자리, 정주의 참나무입니다.
“울타리 부근
쓸모없는 땅이라 관심도 없다
욕심없으면 어디나 천국
참 넉넉한 자리다
욕심없으면 어디나 꽃자리!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음이 참행복이구나
볼품이 뭐 대수랴
너와 나 편안하면 그만 아닌가
내 맘껏 가지들 뻗어
하늘 자유 맛보니 만족이다
배밭 전지된 배나무들 하나 부럽지 않다
열매 탐내는 나무 아님이 천만다행이구나
하늘 나는 새들의 쉼터가 집자리가 됨이 기쁨이다
흐르는 구름 은은한 별빛 은은한 미풍 가슴 떨리는 감동이다
어쩜 저리도 늠늠할 수 있나, 초연할 수 있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나를 끌어낼 수 없다
내 이름은 참나무!”-2001.3.23.
이 시는 21년전 2002년 12월에 돌아간, 수도원을 참 사랑했던 레나타 자매님이 참 좋아했던 시이고 자매님은 세상을 떠나면서 외아들 엘리야 신부를 수도원에 선물로 남기고 갔습니다. 아, 바로 이 참나무 열매 도토리를 모아 아껴모은 용돈에 합해 건축 헌금으로 선물한 수녀님들이고 참나무를 닮은 진인(眞人) 수녀님들의 겸손한 사랑이 참 고맙고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나무가 참나무요 옛날에는 재목으로 쓰는 참나무를 진목(眞木)이라 불렀습니다. 나무가 단단하여 가구로, 참나무 숯으로, 또 가뭄시에는 그 열매 도토리는 구황작물이 됐으니 얼마나 고맙고 겸손한 “수도승들의 모범”,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진목(眞木), 참나무인지요!
참나무 진목뿐 아니라 제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하느님 참 좋은 선물중의 선물인 참사람 진인(眞人)인 오늘 말씀의 주인공들입니다. 바로 제1독서의 부부 마노아와 그 아내요, 복음의 부부 즈카르야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입니다. 이들부부에게 선물처럼 찾아 오신 주님의 천사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부부들에게 참 좋은 선물인 아기의 탄생이 예고됩니다. 자식들이야마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지요!
“네가 아버지 없이 어디서 나왔니?”
예전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때 이 한마디 말씀으로 제입을 닫아버린 어머니를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와 사는 동안 아버지 비난하는 말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고 늘 아버지를 두둔하셨고 편들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마음 깊이에서는 아버지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깊고 지혜로운 처신이었던지 감동합니다. 세월지나 나이들면서 어머니를 더욱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며 회개하게 되네요. 문득 태진아의 사모곡(思母曲)이 생각납니다. 예전 어머니들은 대개 이러했습니다.
"앞산 노을질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전 빌고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자나깨나 자식위해 신령님전 빌고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이제 수도사제가 되어 매일 미사전례를 통해 어릴 적 부르지 못했던 아버지 이름을 날마다 평생 원없이 불러보게 되었으니 하느님의 섭리 은총에 늘 감사, 감격합니다. 간혹 어쨋던 과오를 저질렀거나 일찍 세상을 떠난 불쌍한 남편들이라도 좋은 자식들을 아내에게 선물로 남기고 홀로된 아내를 돌보게 한 남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의 짠하고 하느님의 그 깊은 섭리에 감동하게 됩니다. 남자없이, 남편없이 이런 자식 선물을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겠나요! 남녀 부부들을 통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자식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다시피 하느님은 참 좋은 부부에게 주신 참 좋은 아기를 선물하십니다. 아 귀엽고 사랑스런 아기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반려견들이 자리잡고 있으니 오늘날 병든 사회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주님 천사로부터 잉태의 기쁜소식을 들은 마노아의 아내는 즉시 남편 마노아에게 사실을 모두 알립니다. 가난하나 참 사이좋은 부부임이 감지됩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고 아이가 자라나는 동안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리셨고 마침내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삼손은 태양을 뜻하는 히브리말에서 유래했으니 말 그대로 태양같은 자식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새삼 아이들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이 선물한 태양같은 귀한 존재들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가난한 노부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을 통한 세례자 요한의 잉태과정의 묘사도 참 아름답고 감동스럽습니다. 앞서와는 달리 주님의 천사 가브리엘은 아기 잉태의 기쁜소식을 엘리사벳이 아닌 즈카르야에게 전합니다. 믿지 못해 반신반의하는 즈카르야에게 천사는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앞서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없이 살아갔던 진인 부부에게도 이런 옥의 티같은 실수가 있었네요. 잠정적으로 벙어리가 되어 일정기간 대침묵피정을 통해 즈카르야도, 또 부인인 엘리사벳도 깊은 성찰 시간을 갖게 되니 말그대로 전화위복입니다. 다섯달 동안 숨어지낸 엘리사벳은 희망과 기쁨이 가득한 마음으로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 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주셨구나.”
마리아와 요셉 부부의 구원자 아기 예수님 탄생에 앞서, 이렇게 참 좋은 부부들의 잉태과정을 소개한 말씀의 배치가 참 치밀하고 섬세하고 오묘하니 이 또한 가톨릭교회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겠습니다. 점차 가까이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앞서 더욱 깨어 지내야 할 남은 대림시기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중의 선물이 날마다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입니다. 역설적으로 주님을 모시고 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설렘의 기쁨으로 가득한 대림시기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남은 대림시기 우리 모두 깨어 기도하고 준비하며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시편71,5-6ㄱ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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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2월 19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두려워하지 말고 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 1,13.14-15ㄱ.20)
하느님의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세요
비록 그 기쁨
아직 그대의 것이 아니어도
기쁨을 낳을 사람이니
지금여기에서 기뻐하세요
하느님의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하세요
비록 그 희망
아직 그대의 것이 아니어도
희망을 낳을 사람이니
지금여기에서 희망하세요
하느님의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세요
비록 그 믿음
아직 그대의 것이 아니어도
믿음을 낳을 사람이니
지금여기에서 믿으세요
하느님의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세요
비록 그 사랑
아직 그대의 것이 아니어도
사랑을 낳을 사람이니
지금여기에서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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