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애정생활
문종은 이조 제 사대 임금 세종의 맏아들로 휘는 향(珦)이요, 자는 휘지
(輝之), 태종 십사년 갑오(甲午=西紀 1,414)년 십월 삼일에 한양 사저에서
출생하였다. 세종 삼년 신축(辛丑)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을축(乙丑)
에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대리했고 경오(庚午) 이월 이십이일에 별궁에서
즉위했으며 임신(壬申) 오월 십사일에 경북궁 천추전(千秋殿)에서 삼십구
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는데 재위 이년에 불과하였다. 슬하에는 일남 일녀
가 있었다.
문종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때나 몸에서 병이 떠나
지 않았다. 임금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역시 몸이 시원치 않아서 늘 누워
지냈다. 그러나 문종은 자기의 몸보다도 아들 걱정에 신경을 쓰게 되어
몸이 더 나빠지게 되었다.
"세자는 불쌍하게 자랐다. 이제 나이가 열살이 넘어 크게 걱정은 되지 않
는다만 내가 이꼴이니... 내가 병이 없어지지 않는 한 세자에 대한 걱정은
더욱 심해질 것 같구나. 나를 살리는 것은 결국 세자를 힘차게 또는 영광
스러이 살리는 일이 될 텐데..."
문종은 어느날 침전(寢殿)에 누워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는 것을 보자 문종은 중관을 시켜 집현전(集賢殿)에 나
와 있는 여러 학사(學士)들을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 용촉(龍燭)으로 상
하 사방을 밝히게 한 후 술상을 준비하도록 이르고 슬하에 있는 세자 단종
(端宗)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간곡히 학사들에게 부탁했다.
"과인은 세자를 경 등에게 맡기고 싶소. 이 아이는 낳은지 아흐레만에 모
비(母妃)를 잃은 불쌍한 아이요. 이 아이가 오늘날 왕세자가 되었지만 과
인이 죽어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 자리를 잘 지니게 될는지가 의심
되오. 내몸이 튼튼해져 좀 더 살게 되면 이 애도 더 장성해서 안심되겠지
만..."
문종은 침상에서 내려와 여러 학사들과 똑같이 평좌(平座)를 한 후 친히
잔을 들어 여러 학사들에게 술을 권하였다. 이때의 술자리는 임금과 학사
와의 좌석 같이 보이지 않았다.
평등무차 별함이 지기(知己)와 지기(知己)와의 술좌석 같은 화기애애하였
다.
사람은 나를 알아 주며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기도 하는 것이
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의기(意氣)에 감동하는 동물이다. 공명(功名)고
부귀도 의기 앞에서는 위세(威勢)를 못 부리는 것이다. 이날 술좌석에 모
여진 집현전의 학사는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등 여러 학사였는데 그들은 문종의 지우(知遇)에 감격하여
감읍(感泣)하면서
"신 등이 일개 심장적구(尋章摘句)하는 학구(學究)에 불과하오나 신 등을
알아 주옵시는 수우(殊遇)에 보답하옵고자 왕세자 저하(低下)의 현재 및
장래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감히 맹세하나이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아뢰었다. 문종은 이말을 듣고서 웃으며
"이젠 과인은 좀 안심하겠소. 세자를 어린 동생이나 조카로 다르고 수호
해 주오. 과인은 세자로 하여금 여러 학사를 나이 많은 형이나 아저씨로
섬기게 하겠으니..."
하고 부탁했다.
그럭저럭 밤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문종의 몸은 오랫동안 앉아서 말을 주
고 받고 할 만한 건강의 소유자가 못되었으나 억지로 괴로움을 참아가면서
"오늘의 세자가 열살이 넘도록 튼튼히 자란 것은 혜빈 양씨(세종의 후궁)
의 공덕이요. 혜빈 양씨로 말하면 과인의 어마마마뻘이 되는 분인데 혜빈
의 말씀에 의하면 재덕을 겸비한 튼튼한 애다 합디다. 과인이 틈만 있으
면 시험해 보았는데 혜빈의 말이 옳은 것 같소. 여러 학사들이 잘 지도하
고 보호만 해 주면 임금으로서 한 몫 일을 할 것이오."
하고 재삼 부탁했다.
그러나 학사들은 문종이 괴로워하는 것을 살피고 어전을 떠났다.
문종 시대의 의정부 三정승은 다음 세 사람이었다.
영의정(領議政) 황보인(皇甫仁)
좌의정(左議政) 남 지 (南 智)
우의정(右議政) 김종서(金宗瑞)
이중에서 영의정보다도 뚜렷한 존재가 되어 있는 사람은 우의정 김종서였
다. 그는 세종의 유위주의(有爲主義)에 찬동함과 동시에 이를 받들고 육
진(六鎭)을 개척하였기 때문이고 또 용력과 담력이 열 사람 백 사람에 뛰
어났기 때문이다. 이들 삼정승도 어느날 문종의 소명을 받고 함께 참내하
였다. 문종은 이날도 침전에 누워있었다.
"공들을 청함에 있어서도 누워 청하게 되니 미안함을 금할 수 없소이다.
사십평생을 병고에서 떠나지 못하니 이런 불행한 사람도 더러 있을까?"
문종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정승의 인사를 받았다. 문종
은 다시 말을 이어
"과인이 공들을 청한 것은 나를 보라고 청한 것이 아니요. 짐의 병이 심
상치 않아가니 세자 걱정이 더욱 심해 가는 까닭에 그 걱정을 좀 나누어
볼까 해서 청한 것이요."
그리고는 왕세자를 불러 오게 하였다. 이때 세자의 나이 십이세에 불과하
였지만 매우 숙성해 보였다. 그러나 워낙 나이가 어렸으므로 얼굴에 치기
(稚氣)가 가득해 보였다. 이때 영의정 황보인은 세자에게로 가까이 가서
"저하의 나이 지금 몇이십니까?"
입을 열었다.
"열두살이오."
"제가 무엇하는 누구인 줄 아십니까?"
"영의정 황보인이요."
황보인은 다시 좌의정 남지를 가리키면서
"이 사람은 누구인 줄 아십니까?"
"그 사람은 좌의정 남지요."
황보인은 세자의 총명에 놀라면서 또 우의정 김종서를 가리키고
"이 사람도 아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우의정 김종서요."
황보인등 세 사람은 세자의 마음 가짐이 범인에 지나는 것에 감동하여 이
번엔 좌의정 남지가 문제를 만들어 물었다.
"육조란 것은 무엇을 일컬어 말하는 것일까요?"
"육조? 육조란 것은 이조(吏曹), 예조(禮曹), 형조(刑曹), 병조(兵曹), 공
조(工曹), 호조(戶曹)를 말하는 것이요."
"그리고 각 조의 우두머리 자리에 있는 사람을 무엇이라 부르나요?"
"판서(判書)라 부르오."
"삼공 육경이란 무엇을 일컬어 말하나요?"
"삼공이란 의정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자리에 있는 사람 셋을 말하는
것이고, 육경이란 육조의 판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여섯을 말하는 것이
요."
세자가 대답하는 것을 듣고만 있던 우의정 김종서는
"참 세자 저하는 좀 더 장성하면 훌륭한 임금이 되시겠소. 참 총명도 하
십니다."
세자를 칭송하였다.
세자와 삼공 사이의 문답으로 인하여 한때 중단 되었던 문종과 삼공과의
이야기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런데 세자 저하의 건강은 어떠한가요?"
"건강도 좋은 편이요."
"글도 많이 읽고 계신가요?"
"나이로 보아서는 많이 읽고 있는 것 같소."
"오늘의 문답으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총명도 남만 못지 않으신 모양입
니다."
"한번 본 것, 한번 들은 것을 잊지 않으니 총명하다 할 수 있소. 그런데
다 사람됨이 단아(端雅)해서 과인의 마음엔 꼭 드는구료."
"부왕(父王)을 닮아서 그러신 것 같소이다. 그러즉 마음씨도 어질실 것이
올시다."
문종은 이 말을 들은 후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좀 들어보오. 세자에게는 삼촌이 너무 많아서
걱정되오. 과인이 병신(病身)일지라도 왕위에 있으니까 궁내가 안온한 것
같이 보이지만 과인이 죽어 없어진다면 궁중이 편안해질 것같지 않소. 과
인이 지금 죽으면 세자가 곧 내 뒤를 계승하여 임금이 될 것이요. 이 어
린애가 아무리 총명해도 궁중의 이구석 저구석에서 일어나는 폭풍우를 어
찌 제지 하겠소?"
하고 가장 중대한 걱정거리를 내놓았다.
문종이 이러한 말로 입을 열자 삼공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아무 대
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문종은 또 입을 열었다.
"과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며칠 못 가서 저 어린것에게 왕위를 내주어야 할
것 같소. 과인은 저 어린 것이 장성하여 어른이 될 때까지 살고 싶지만
천수(天壽)가 이만인데 어찌하겠소? 과인이 오늘 죽을는지 내일 죽을는지
알수 없지만 하여간 세자가 어린 임금으로 즉위하면 저 집현전의 여러 학
사와 손을 잡고 보좌해 주고 수호해 주오. 그리해 주면 과인은 지하에서
라도 그 은혜에 보답하겠소이다. 삼공의 생각은 어떠하오?"
문종의 이 말에 세사람은
"신 등은 전하의 심경을 잘 살피고 있습니다. 신 등은 전하의 지우(知遇)
에 감격하여 목숨을 돌보지 않고 세자를 보필하고 또 수호하겠사오니 신
등을 믿어주소서."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문종은 여윈 얼굴에 일말의 광명을 띠우고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감사하오. 오늘부터 세자를 삼공의 아들로 맡기
겠소. 이제 해도 저물었으니 어떻게 그대로 돌아가겠소. 술상이 준비되
어 있으니..."
술상을 내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세 정승은 황송히 받아 마시고 어전을 물러나 각각 집으로 돌아
갔다.
문종의 비(妃)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증영의정(贈領義政)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경혜공(景惠公) 권전(權專)의
딸로 태종 십팔년 무술(戊戌=西紀 1,418년) 삼월 이십일 홍주 합덕현(洪州
合德縣) 사제에서 출생하였다.
세종 십삼년 신해(辛亥)에 동궁(東宮嬪)으로 뽑혀 들어와 처음엔 승휘(承
徽)로 책봉되고 좀지나서 양원(良媛)으로 진봉(進封)되었으며 정사(丁巳)
에 이르러서는 순빈(純嬪) 봉씨(奉氏)가 폐립(廢立)되자 이어 세자빈(世子
嬪)으로 책봉되었다.
문종이 왕위에 나아가자 종전까지 빈으로 있던 권씨는 왕후(王后)로 책봉
되었다가 신유(辛酉)을 하직하였는데 당시의 춘추는 이십사세였다.
슬하에는 일남 일녀가 있었다.
王妃所生의 王子와 公主
一남, 단종대왕(端宗大王)
一녀, 경혜공주(敬惠公主)
后宮所生의 翁主
一녀, 경숙옹주(敬淑翁主)
이 옹주는 사칙(司則)이란 직함을 가진 양씨(楊氏)의 소생이다.
문종은 천생 약질이었으므로 삼십구년간 궁중 꽃밭에 있었음에도 불구하
고 그의 애정생활은 쓸쓸할이만큼 별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