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34]외국에서 설 쇠고 조기귀국한 까닭은?
민족의 명절 설 연휴을 맞아, 호주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은 지난해 추석 즈음 계획했다. 원래 일정은 시드니에서 아내와 둘이 1주일쯤 관광한 후 국내선 비행기로 브리즈번공항(1시간 반 걸림)으로 가 근처 골드코스트에 사는 둘째아들네 집을 방문, 1주일쯤 있기로 한 것이다. 아들내외에게 우리가 알아서 갈 테니 신경쓰지 말라고 거듭 말했건만, 보름동안 휴가를 내 시드니공항에서 영접을 하니, 어찌할 수 없는 일. 무궁화 5개 호텔을 5일간 빌려놓고 날마다 세계적인 유명 관광코스와 맛집들을 정해 놓았으니, 그저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는 일. 우리야 솔직히 어떤 신경도 쓰지 않으니 그저 좋기만 했다. 블루 마운틴도 가고, 하버 브리지도 걷고, 오페라 하우스의 위용에 놀라고, 도심의 거창한 식물원(보타닉 가든)도 산책하고, 하이드공원, 마리아성당 등 시드니의 명소는 모두 섭렵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관광도 좋지만, 무엇보다 2년여 못본 아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다는 게 ‘쵝오’였다. 초저녁엔 와인 한 잔씩을 마시며, 여러 가지 얘기와 토론도 하는 등 최고의 ‘패밀리 힐링’이 수확이었다.
5일 후 아들네가 공동명의로 장만했다는 아파트 5층에 들어서는데 가슴이 설렜다. 어떻게 이 먼 타국에서 제 집을 구입했을까? 믿어지지 않았다. 비즈니스 영어도 웬만큼 잘 해야 할텐데,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무튼, 잘 살고 있었다. 전주대 간호학과 2학년을 마친 후 여자친구와 워킹 홀리데이를 가겠다고 한 ‘맹랑한’ 아들, 2014년 시드니에서 둘이 워킹 홀리데이 1년을 한 후 ‘폭탄선언’을 했다. 선샤인대학교 간호학과로 둘이 편입을 하게 해달라는 것. 여느 부모는 이럴 때 어떻게 할까? 나의 막막한 심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가장이자 남편인 나에게 상의조차 하지 않은 채, 익산으로 아들과 달려가 여자친구의 부모를 만나 “애들을 결혼시켜 보내자”고 했다한다. 1주일 후 “미안하다”며 고백하는데, 나로선 유구무언할 수 밖에. 2015년 가을, 혼례를 마친 후 떠난 ‘유학留學 장정長征’. 말도 잘 통하지 않은데도, 알바를 해가며, 그 어려운 전문용어 수백 개를 외우며, 강의를 따라가는 등, 유학생 부부로서 신산辛酸한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문제는 돈! 그리고 어려운 간호학 공부와 뼈 아픈 고독! 그 생각을 하면 어찌 애비로서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흐흐.
얘들은 마침내 해냈다. 영예로운 졸업장을 받고(총장이 일일이 호명하여 1대1로 수여), 대학병원에 짜란히 취직을 하고(물론 그 과정에서 3개월여 찢어져 있는 등 고난도 있었다), 영주권도 받게 되었음에야. 마음을 푹 놓아도 되었으니, 팔불출이라고 욕하면 어떠랴. 부부夫婦 메리트로 같은 병원에서 같은 시프트shift(組)가 되어 걸어서 5분 거리를 출퇴근한다니, 이만큼 복 받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벌써 햇수로 10년이 되어가는데, 그 어떤 경우에도 직장 갑질이나 인종 차별, 직업 차별을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것이 선진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아르바이트 비용도 그렇다. 우리나라를 보라. 어떤 계층이나 분야든 ‘그 놈의 갑질’로 나라가 망하게 생겨 쪽팔려 죽을 지경이 아닌가.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 온갖 기득권 카르텔 그리고 또 갑질까지? 도대체 불쌍한 경비원 몇 명이 더 죽어나가야 이런 갑질이 사라질 것인가? 아예 ‘천박한 문화文化’가 되지 않았던가.
맨먼저 눈에 띈 것이 거실 벽에 붙어있는, 세계 각나라를 상징하는 배지badge이다. 애들이 지난 가을 55일간 두 달 휴가를 받아 유럽의 각 나라를 돌았다는 ‘거사擧事’의 증표이다. 알록달록, 아기자기, 그 배지판만 보면 둘이 체험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솔솔솔 피어나리라. 바라보기에 심히 좋았다. “세상에, 이것 좀 봐, 이게 얘들이 다 다녀온 나라네” 화들짝 반기는 아내도 나와 같은 심정이라. 어찌 흐뭇하지 않겠는가. 얘들은 아기를 갖기 전에 올해는 북미주를 한바퀴 돌겠다는 것이다. 야심찬 계획이 아니고 당근 해야할 일을 하나씩 해치워가는 아들네가 부러운 것보다 보기에 너무 좋았다. “그래, 잘 했다. 우리 아들며느리 멋짐 폭발!” 연거푸 칭찬을 해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들이 보여준 서류 한 장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작년 아파트를 구입하여 입주하는데, 시장市長이 보낸 인사장이다. 대충 읽어보는데, 세상에, 우리나라에 비해 이렇게 멋진 시장이 있을까 싶었다. 입주를 축하한다(Congraturations on taking ownership of your new property. I am confident you will enjoy all that we have to offer)며, 간략히 시city의 규모, 환경, 기후 등을 설명한 후,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으면 홈페이지를 참조하라고 url를 써놓았다. 마지막 문장에 압도overwhelm됐다. As I always say, there are two types of people-those who live on the Gold Coast and those who wish they did!.
뭐야, 이게? 세상에는 골드코스트(골코)에 사는 사람과 살기를 원하는 사람, 두 뷴류의 인간이 있다는 게 아닌가?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이럴 수가? 시장의 진심sincerity가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우리나라 어느 자치단체장이 입주시민(주민)에게 이렇게 고맙다는 진심어린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인구 소멸위기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귀향, 귀촌,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편지를 보내면 어떨까? 나의 경우는 주민등록지를 옮기니 군수의 “축하합니다”라는 카톡 문자 한줄이 그만이고, 3개월 후 지역사랑상품권 5장 주는 것으로 끝이던데 말이다.
문제는 “얘들은 참 좋은 나라에 살고 있구나.”라며 안심해도 될 터인데, 아들은 이 나라에서 앞으로 산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내내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애비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은 딱 한 가지. “너희는 이미 한국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선진국 체질’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어떤 불합리, 부조리, 갑질 등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다만, 부모형제 그리고 조국을 못잊는 것은 좋으니, 앞으로 30년 후 ‘제2의 삶(노후)’를 어떻게 고국에서 보낼 지를 설계하라. 내 친구 중 미국이민 40년이 됐는데, 전망좋은 곳(임실 옥정호)에 아파트를 10여년 전인 50대에 사놓고,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6개월, 한국에서 6개월 살기를 시작했다. 그런 삶을 꿈꾸면 좋겠다”고 말하며, 이런 내용으로 장문의 손편지를 5장 슬그머니 써놓고 귀국을 서둘렀다. 비행기삯까지 상당히 손해 보고 일정을 5일 앞당겨 돌아온 까닭은, 첫째 아들네가 우리 때문에 24시 붙어 있고, 들어가는 돈도 솔찮은 게 너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처음 느낀 것은 아들네가 우리 때문에 쓰는 돈이 무지하게 아깝다는 것, 부모로서 우리가 저희를 위해 쓰는 것은 얼마든지 아깝지 않고 기쁘기만 하던데, 그게 그리 아까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둘째, 고향의 아버지(98)가 최근 신병으로 병원 신세를 질 상황인데, 외국에서 놀러다니기에는 맘이 몹시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효녀인 여동생들이 번갈아 보살피고 있지만, 아들로서 어쩐지 도리가 아닌 것같았다.
호주는, 특히 브리즈번은 왕래를 할만한 곳이다. 골코는 브리즈번에서 지하철도 있고, 승용차로 1시간10분 정도 걸린다. 시차도 1시간밖에 안된다. 인천공항에서 밤 8시 반에 타면 다음날 오전 6시 도착하고, 돌아올 때에는 아침 8시 반에 대한항공을 타면 오후 5시쯤 떨어지니, 항공료가 문제이지 아주 힘들고 못갈 곳은 아닌 것같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일찍 헤어지는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물론 동의. 공항 플랫폼에서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 아들내외를 보며,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정말 매급시(특별한 이유없이) 눈물이 줄줄줄 쏟아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 아들은 돌아가면서 “(헤어지는 게) 너무 슬퍼. 방금 전까진 엄마아빠 손도 잡고,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어떻게 하겠어? 이게 인생인 것을,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으론 받아들이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인가 봐. 다시 잘 살아 봐야지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래. 아들아. ‘어떻게 하겠냐?’ 이게 인생인 것같다. 네 말대로 힘을 내 ‘다시 잘 살아보아라. 너희는 도전인challenged man이자 성취인achived man이다.’ Just do it! cheer up! We see you. see you, soon!”
추기: 아들네가 사는 아파트 이름이 '브룩Brooke'인데, 현관 벽에 붙어 있는 글귀가 뜻이 깊고 재미가 있어 '루퍼트 브룩'을 검색해봤다. 브룩(1887-1915)은 20세기초 1차대전때 요절한 영국 시인이라 한다. 번역을 하자면 <이 세상에 좋은 일이 3가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시詩를 읽는 것, 두 번째는 시를 쓰는 것이다. 3가지 중 가장 좋은 것은 시처럼 사는 것이다.>일 것이다. 그런데, 시를 읽고, 시를 쓰며 사는 삶은 알겠는데, '시처럼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일까? 아마도 건축주가 평소 브룩을 존경하고 그의 시를 좋아하는 뜻에서 아파트 이름을 '브룩'이라고 짓지 않았을까. 이 또한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