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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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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동네의 가운데 집
무악 산 추천 1 조회 286 26.07.29 13:22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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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7.29 13:52

    첫댓글
    인심 좋은 집인가 봅니다.
    누구라도 쉬어갈 수 있는 집,

    여기서도,
    저기서도,
    모여드는 편안하고 크고 넓은 집.

    가운데 집이라고,
    명명하였는 가 봅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그런 집인가요.
    그런 뼈대 있는 집의 자손,
    무악 산님은 효자라고 소문이 났지요.^^

  • 작성자 26.07.29 20:35

    그당시 봇다리 장사꾼들이 많이 다녔었는데
    할머니 께서 그분들께 밥도 주고 잠자리도
    재워주고 하였습니다.
    거지 들도 많았는데 그거지들 한테도 꼭 상을
    차려서 밥을 대접하셨었지요.
    제주도 에서 온 꿀장사는 묵어 가면서
    꼭 꿀을 한숫가락 작은 종지에 주고 가기에
    그꿀맛 생각 나서 제주도 날라리꿀장사 오기를
    기다리기도 하였습니다.

  • 26.07.29 16:09

    가운데집에 우리도 놀러가고 싶군요.
    요새 아침프로 인간극장에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사는 26세 청년얘기가 재밌어요. 그곳이 김제시골마을이고 이청년은 음대출신인데 아버지가 하던 산양농장을 맡아 합니다. 양젖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모악산 축제에서 파는게 오늘아침 나왔답니다.

  • 작성자 26.07.29 20:40

    예...저도 그프로 보고 있습니다.
    그프로를 볼때마다 할머니 생각 이 많이
    나지요.
    할머니와 저는 뜻이잘 맞아서 집안일 함께
    끌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언제던 한번쯤 은 김제로 수필방 님들 초대할
    계획도 세워봅니다.
    모악산 이나 지평선축제 기간에 좋은 구경 할수
    있습니다.

  • 26.07.29 16:29

    역시 무악산님 글은 고향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64년 전 제가 살았던 제 고향집 툇마루에는 산나물 뜯어 가시던 아주머님 분들도 쉬어가시고 방물장수 하시는 분들도 쉬어가시곤 하셨더랬습니다. ^^*

  • 작성자 26.07.29 20:54

    황하장사가 방물장사 인것 같습니다.
    황하장사 아지매 등에는 젖도 떼지않은 갓난
    아기가 업혀있어서 지금도 젤로 기억에 남아
    있지요.
    수피님 집도 우리집과 바슷한 대문 개방집
    이었었나 봅니다.
    고향집 어렸을적 기억은 언데나생생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

  • 26.07.29 19:12

    동네 가운데 집이 동네 사랑방 역활을
    하셨군요.
    무악산 님 글을 보니까 저도 고향에서 보냈던
    제 인생의 황금시절이 아련히 떠 오르네요.

    무악산 님께서 구순의 어머님을 모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아버님 생각났어요.
    저희 아버지도 정년 퇴임하시고 고향에 내려
    가셔서 할머니를 20년 가까이 모셨거든요.


  • 작성자 26.07.29 21:07

    사랑방도 되고 동네 큰일 치를때 집에서
    지원도 해주고 그랬던것 같습니다.
    이제 옛날 처럼 살아보자고 은퇴후 귀국을
    결정 하였고요.
    지금 6년 지나서 7년이 되어 갑니다.
    시골에서 자랐던 사람들은 항상 고향과 고향집
    생각 을 하지요^^.
    나무랑님 부친께서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
    훌륭 하셨네요.

  • 26.07.29 21:22

    집도 좋았겠으나 넓은 마당처럼 주인의 마음도 넓은 집이군요.

  • 작성자 26.07.29 23:59

    지금은 아니지만 그당시엔 동네에서
    제일 큰집이었던것 같습니다.
    그시절엔 거지들도 많았고 떠돌이 장사들도
    많아서 비교적 여유있고 큰집에서 이들을
    재워주고 끼니도 내어주고 해서
    생업 을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 26.07.29 23:27

    그러고 보니, 우리집도 역시 "가운데 집"이였던 셈이네요.
    안 마당 담장 옆에 있는 우물에 물 길러오는 사람들 때문에 대문도 잠그지 못했었고...
    먼 아랫 지방에서 올라오던 방물장수, 꿀 장수, 인삼장수 아주머니들이 우리들과 함께 안방에서 자고 같은 상에 앉아 밥도 먹고 가곤 했지요.
    전국을 헤메며 장사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동네에 들렀다가 저녁이 되어 잠자리를 찾게되면 동네사람들이 우리집으로 가보라고 했고..
    사랑방에서만 기거하시던 아버지는 낯 모르는 사람을 안방에 재운다고 야단을 하셨지만... 잠자리 구하러 오는 사람들을 어머니는 마다하지 못하셨지요.
    아 ~ 바깥마당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축구도 하고 자치기도 하고 딱지치기도 하며 놀곤했지요. 밤에도 숨바꼭질 하며 뛰어 다니고...
    여름밤이면 바깥마당에 모기불 피우고 멍석 펴 놓고 동네 아주머니들 모여 두런두런 얘기들 나누기도 하고...
    여름밤 삼베 홑이불 덥고 멍석에 누워 쏟아질것 같은 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오늘 문득 그 시절 그 시간들이 생각 나네요.

  • 작성자 26.07.30 00:12

    예..우리집 이야기와 비슷한점이 많습니다.
    글을 간단 명료하게 쓸려고 문장을 줄여서
    그렇지....
    길게 쓴 글이었으면 솔모롱이님 글과 꽤 유사한
    글이었을 것입니다.
    모기불 피우고 평상에 누워서 밤하늘 쳐다보면
    은하수 양쪽에 쏟아질둣 반짝이는 별들 아래로
    떨어지는 별똥별 신기한 세상 이었지요.
    지금은 전기불에 사라져 보이지 않고요.
    희미한 흔적의 은하수에 큰별들이 전부 입니다.
    고맙습니다.

  • 26.07.30 02:30

    가운데 집으로서의 너른 품세와
    골고루 품는 속 깊은 정을
    지니고 있었네요.
    집안분들의 심성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 작성자 26.07.30 09:17

    그당시에는 교통이 불편하여서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작로가 있는 우리동네를 거쳐야만
    읍내로 나갈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우리집이 장사꾼들의 휴식처가 된것
    같습니다.
    할머니 께서 베품을 중하게 여기셨지요.

  • 26.07.30 06:26

    저의 시골은 안집이었지요.
    가운데집이나 안집이나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가운데집에서 안집도 추억해봅니다만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향 또는 시골의 원형이 그대로 배어있는 곳
    안집이나 가운데집, 참 아련합니다.

  • 작성자 26.07.30 09:24

    예 그럴겁니다.
    저의집은 동네 맨앞 들녘이보이는 곳이고
    동네가 우리집을 감싸고 있는 모양새 입니다.
    이제 시골동네도 옹기종기한 모습이 아니고
    커다란 양옥들이 많기도 하지요.
    우리집은 옛날집 그대로 입니다.

  • 26.07.31 09:34

    참. 넉넉한 마음을 베푸 는 집입니다

  • 작성자 26.07.31 15:20

    무더위 에 항상 건강 하셔요.
    야외활동 하기가 힘들어진 요즘입니다.

  • 26.07.31 12:40

    시골의 가운데 집은 동네에서 잘 사는 집이었지요.
    마당도 넉넉 하였듯 그곳에 사시는 무악산님 부모님께서도
    그러셨을것 같습니다 .
    덕분에 제 고향집도 떠올려 봅니다 .

    수필방에 자주 글 올려 주세요.

  • 작성자 26.07.31 16:58

    마당 은 상당히 넓어서 강강술래도 하고
    자치기 같은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민생활 하면서 고향집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귀국 한지도 벌써 6년이 지나서 세월의 흔적이
    아쉽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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