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있는 절, 외로운게 싫고 사람이 그리운 승려들
산속에 많은 절들이 있고
산과 마을 사이에도 조용한 절들이 있다
미국에도 한인 승려들이 사는 절들이 산 속에 있다.
헌데 승려들이 외롭다고
주중에는 절을 피해 떠나서 도시로 내려왔다가
주말에는 불자들이 찾아오니 얼굴을 보여야하므로
주말에만 절에 들어간다.
목사들은 산에 없다.
교회가 도시나 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산에는 기도원이 있고 거기에는 관리인만 산다.
승려가 되는 길은 외로움을 참아야하는 생활인가?
아니면 외로움은 승려가 가야하는 당연한 길 인가?
외롭다는건 승려가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절이
산에 있거나
도시에 있거나
왜 승려들은 할 일이 없을까?
신부 수녀가 되고싶지 않아서 입학이 정원미달이다.
승려들의 출가자 불교대학 입학이 정원미달이다.
시대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승려들에게는
왜 도박을 할 돈은 있으면서
노후 대책이 없는가?
승려들의 사회보장은 정부가 보장하는가?
종단이 보장하는가?
아니면 아프고 병들면 외면하고 버리는가?
수녀가 대중가요를 불러서 인기가 대단하다.
비구 비구니는 왜 찬불가만 불러야하고
대중가요 경연대화에 못나가는가?
왜 아이돌, 방탄소년 같은 노래 춤을 안하는가 못하는가?
요가는 움직이며 한다.
명상은 왜 가만히 앉아서만 해야 하나?
왜 건강에도 도움이되는
움직이는 명상, 율동적 명상은 없을까?
시대적 문화에서 밀려버린 종교는 쇠퇴한다
첫댓글 도박을 할 수 있는 승려는 주지승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암자든.말사든.본사든....
나머지 스님들은 노후대책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목사와 다른 점입니다.
기독교는 큰 교회에서 작은 교회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목사들은 자기 노후를 위해서 개척을 많이 합니다.
산 속 불교를 탈피한 종교가 바로 圓佛敎(원불교)입니다.
원불교는 한국에서 비교적 깨끗한 종교입니다.
스님이나 목사의 역할을 하는 敎務(교무)라는 직책을 갖고 있는
貞女(결혼 안한 숫처녀)들 때문이죠.
참선과 명상은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선을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안 해 본 사람으로서
명상과 함께 똑같이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남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자기 자신의 허물을 고치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말이 있는 줄로 압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샤나한 처럼 8년동안 수행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샤나한이 하는 결가부좌선수행을 비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피아노를 쳐본 사람만이 피아노를 비판 할수있는건 아님니다. 피아노를 못쳐도 음악을 아는 사람은 비평을 할수가 있지요.
악기를 다를줄 몰라도 들어서 비평을 할수있고 , 노래를 못해도 들어서 비판 할수는 있지요.
명상수행을 해본 사람만이 명상을 아는건 아님니다.
일반법, 종교교리, 행정법,,, 먼저 상식으로 이해할수 있어어야 합니다.
법을 공부 한 사람만이 법을 비판 할수 있는건 아님니다.
신부 승려는 결혼을 안하고도 부부상담을 함니다. 수행과 허물은 별개 입니다.
명상을 하는 사람은 허물이 없다는게 아니라 사람은 허물이 있어도 잘못된건 비판 할수 있지요.
촛불시위는 허물이 없는 국민만이 할수 있는건 아님니다
물론입니다. 門外漢(문외한)도 名人(명인)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見識(견식)의 차이에 따라 그 評價(평가)의 깊이도 다르겠죠.
시골 촌놈이 서울 한 두 번 가본 것 보다는 2~30번 가본 놈이 그래도 서울에 대해서 잘 알겠죠.
신부.승려도 부부상담을 하지만 상담의 깊이가 다르겠죠.
체험을 통한 경험으로 상담하는 것과
머릿속 지식으로만 상담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느끼는 바가 다르겠죠.
연기자들을 보고 농익은 연기를 잘 한다고 합니다.
노총각 노처녀들이 성인연기를 하는 것과 결혼 경험이 있는 배우가 연기하는 깊이가 다르죠.
세상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요.
@한자선생 수행과 허물은 별개가 아니지만 수행을 통해서 허물을 줄여 나갈려고 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겠지요.
百聞이 不如一見이요
百見 .百說이 不如一行 입니다.
남이 좋아서 하는 일을 한 두 번 충고해줄 수는 있으나
重言復言(중언부언)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촛불시위하는 국민들에게 당신들은 허물이 없느냐고 물으면,,, 허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비판 할수 있으나
그 비판하는게 자신에게도 해당이 된다면 문제이지요. 그러나 명상을 비판하는 내용중에 내게 해당하는건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봄니다. 간디처럼,,
나의 허물이 뭔지 알려주시고 말을 했으면,,, 알지도 못하며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보라는건 편견 입니다.
남을 알고 그런 말을 해야합니다. 그것이 한자님의 허물 FAULT 입니다.
ㅋㅋ허물이 뭘까요?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기도 합니다.
충고를 하는 방법도 여러가지 입니다.
때로는 강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약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부드럽게 해야 할 때도 있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상대방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면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죠.
한국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의 빚을 갚는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 교훈이 되는 말을 할지라도 세속에서 말하는 言語예절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때로는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일러 舌禍(설화)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