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49「선물」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그리운 사람이여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보고픈 사람이여
마음에 늘 고여와서는 떠나잖는 당신이여
- 김민정의 「사랑」
수 많은 시인들이 사랑이라는 시를 썼다. 지겨울만도 할 텐데 지금도 끝없이 인생 오브제를 생산해 내고 있다.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마냥 그립고 보고픈 게 사랑이란다. 가슴에 고여 떠나지 않는 당신이 사랑이란다. 이 신비를 이리도 쉽게 쓸 수 있고 이리도 쉽게 읽힐 수 있을까.
가다가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보는 시조이다. 미련이 남았나 보다. 진정한 국민 시조는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딱 하나 그 꽃 앞에선
내 낯이 먼저 붉다
무심결 오줌을 누다
담장 너머 들킨 후부터
날 보면 없었던 일처럼
부러
부러
하품만
한다
-고정국의 「호박꽃」
담장에 오줌을 누다 호박꽃에게 들켰다. 그 호박꽃은 나를 보면 일부러 하품만 한다. 그러니 그 꽃 앞에서 내가 먼저 낯이 붉을 수 밖에 없다.
호박꽃과 하품의 매치가 절묘하다. 호박꽃도 꽃이라고 누가 말했나. 이 말이 무색하다. 시조가 지금까지 천여년을 이어져 온 이유를 알겠다. 시조 형식 아니면 이런 것을 담아낼 수 없다. 시조 한 수에 한 장면이면 되지 더 담으려다간 망신이다. 시조는 절제이다. 세상만사가 시조 같아야하는 것 아닐까. 과유불급 이것이 시조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24,9.25(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