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늙고싶다.
유옹 송창재
오늘부터 설날연휴이다.
나이를 먹기 싫은 사람들도 이제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양력 설에는 구정을 쇤다고 우기다가, 이제 우리 재래의 설날을 맞으니 달리 도망갈 길이 없다.
명실상부 생리적으로는
한 살을 더 보탤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정말 어른이 되어야 할텐데 판단력은 떨어져 아이들의 판단에 눈치를 보며 자기의 의견은 마치 노인냄새나는 시골 두엄인양 표현도 못하고, 아이들의 주장은 모두가 진보적이고 멋진 첨단의 사고라로 아부하며 설날 모인 자식들의 눈치만 본다.
그동안 살아오며 느끼고 경험하며 몸소 체득한 지혜나 판단력은 늙다리 보수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젊은 아이들의 설익은 억지에 맞장구를 치며 자기는 현대인인 것처럼 그리고 싱싱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멋진 젊은이인 것처럼 눈물겹게 맞장구를 친다.
자리에 끼고 싶어 애처로운 몸부림으로 어른이라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며
살아가는 좋은 소리를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구한다.
어른의 사고나 지혜는 없어지고 가치의 기준은 아이들에게 맞추어 가정의 오피니언 리더도 젊은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만다.
껍데기만 남은 허수아비가 그렇게 팔만 벌리고 서있을 망정 자기도 한 몫한다고 억지를 부리며 광장에서 떨쳐 나가지 않으려고 참새들에게 아양을 떠는 꼴이 되어 버렸다.
참새는 저희들의 나락을 까먹기위해서 떠들면서 떼거리로 몰려 다니는데
허수아비는 그냥 눈치만 보는 허수아비 꼴이 되어 버렸다.
어른은 허수아비인가?
어른의 사고와 지혜는 모두가 진부하고 고루한가?
어른의 지혜는 노망이 들었고 어른은 진정 없는 것인가?
나이가 들면 많은 단어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면서 표현해야 할 사고도 자연스럽게 잃게된다.
젊었을 때는 어휘가 풍요해서, 필요한 때에는 적재적소에 적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 순발력있게 튀어나와 내가 나타내고자 하는 고급스런 지적영역의 표현들까지도 거의 스스럼이 없었는데...
이제는 어렸을 적보다 더 많은 농익은 깊은 단어들이 필요한데도 무슨 표현을 하려면 마땅한 단어가 머릿속에서만 빙빙 돌 뿐 도대체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러다 끙끙대다 덮어버리면 우연히,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엉뚱한 상황에서 그 단어가 튀어 나온다.
참, 황당하여 내가 늙어 가는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잃어버리는 단어를 끝까지 고수하기 위한 발악이나 하는 것처럼 오히려 속말은 많아진다.
나이가 들어 생각은 늘이되 가슴속에 있는 말들은 점점 줄여나가야 할 나이건만, 오히려 쓸데없는 말들과 필요없는 참견이 더 많아진다.
돌아 생각해 보면 단순히 공해에 불과한 “말 같지 않은 말”을 하고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노인 복지관에 가서 나를 비롯한 영감 할멈들의 행태를 보면,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보인다.
누가 한마디라도 운을 띄우면, 말 못하고 죽은 귀신들이라도 들린 듯 모두 거들어 한마디씩 한다.
나이가 많아서 경험들이 많으니 젊었을 때의 한가락 한 것까지 끄집어 내어서...
그런데 정작 영양가있는 제대로 된 말들은 많지가 않다.
“삶은 옥수수 알갱이에서는 돼지고기 한 첨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말만 알알이 길뿐이지 영양가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그 소리를 남들이 꼭 들어야만 해야 한다는 결기로, 온 힘을 다하여 소리 지르듯이 말을 한다.
이것은 표현이 아니라 수채 싸움이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는 자기도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남들에게 지기 싫은 욕심에 한마디씩 하는 소리들일 뿐이다.
따라서 정작 해야하는 말은 닫아버리고 만다.
또 그 소리는 엄청나게 크기도 하다.
나이가 들으니 청력이 정상인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그래서 말을 하려면 자기의 소리를 주장하고 싶어 목소리가 커지고 그러다 보면 아예 감정이 실려 싸움까지 하게 된다.
어떤 이는 오른쪽 청력이 좋지를 않고, 또 다른 이는 왼쪽이 좋지를 않아..
따라서 왼쪽 귀가 좋지 않은 이는 별로 친하지 않은 이가 왼쪽에 앉으면 좋겠고.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로 앉으면 될 것이다. 상대의 말을 듣기 싫으니까.
그런데 계산이 느린 영감, 할멈은 반대로 잘 들리는 귀 쪽에 싫은 사람을 앉히니, 매일 서로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한다고 구시렁거리며 토닥거린다.
방향을 잘못 잡아 앉아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더 잘 들리니 그럴 수밖에..
내가 알아채고 자리를 바꾸어 앉으시라고 했더니 그 자리가 정이 들어 싫단다.
얼마나 웃기는 고집이고 노욕이냐?
옛말에 “한 집에 늙은이가 둘이면 서로 먼저 죽었으면!” 하면서 눈치를 본다더니 딱 옳은 말이다.
참, 늙는다는 것이 이렇게도 슬프고 한심한 것이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운동중추만 고장나는 것이 아닌 언어중추에도 엄청난 고생이 수반하고 전체적인 종합사고력에게 참 고생을 많이 시키며, 그래도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는 우리 방이 이 정도이니... (이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얼마 전에 어떤 공모전에서는, 자기가 상을 탈 것으로 예상하여 작업을 해둔 영감이, 그 상이 다른 곳으로 가니 서실분위기 전체를 흐려 놓는 몽니를 부리는 꼴을 보면...
이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고, 오히려 상이나 명예욕들이 노욕과 함께 나타나니....
비석에 쓸 장식을 구하나보다 하고 느끼기도 한다.)
닫아 놓은 문틈으로 복도 소파에 앉아 말하는 두, 세 명의 담소가, 담소가 아니라 황소 울음소리처럼 크게 들리니...
방음장치를 해 달라고 관장에게 건의를 해야 할른지?
하기야 방음을 하면 우리 방의 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아 복도가 더 조용해져서 복도에서 좋다고 할른지 모르겠다.
이것이 복지관의 풍경이다.
갈수록 쓸 만한 고급스런 단어들은 잊혀져서, 떠 올리려면 한밤중 잠자리에 들어서라도 기다려야 하는 판국에 쓸데없는 공해의 소리만 높아져가니 한심스럽다.
어떤 이는 나이가 들어 눈이 나빠지니 보기 싫은걸 안보니 좋고, 귀가 먹으니 더러운 소리 안 들어서 좋고, 말이 어눌하니 말수를 줄 일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던데...
글쟁이인 나는 말은 줄이고 글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 더 옳은데, 좋은 단어도 빨리 떠오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말을 안 하고 입을 닫고 있으려니 입에서 풀이 날까봐서 걱정이다.
후두암 .수술로 성대절제를 하여 필담을 나누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왈~~~ “혼자 있을 때는 조용하고 있을 만 해.”하더라.
참, 녀석 내가 얼마나 답답해하는 줄도 모르면서 ~~~~
나이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지만
지갑도 지갑 나름이고 입도 입 나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은 사고의 표현이다.
공해의 쓸데없는 말은 안하느니 못하지만
어른의 말은 하여야 한다.
입 닫는 것은 어른의 책임을 회피하며 눈치를 보며 사는 겨울 논의 허수아비인 것이다.
입도 열어야 할 때는 열어라.
지갑을 닫아야 할 때는 닫아 두었다가 제대로 열어
쓸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른은 어른이어야 한다.
첫댓글 진정, 제대로 늙고 싶네요.
잠시 감상에 젖어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힘내시게요.
행복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화이팅하십시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