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50「나의 아름다운 수국」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가는 줄에 아슬아슬 매달린 수국 하나
한순간 툭! 하고
부러질까 무서워
두 손에
받치고 보니
할머니 남색 치마
- 하미정의 「나의 아름다운 수국」
줄기에 비해 꽃이 크다.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 두 손을 받쳤더니 아, 할머니의 남색 치마이다. 울컥 할머니 생각이 난 것이다.
할머니는 손주에겐 조건이 없다. 수국이 할머니의 남색치마로 치환되는 몇 초의 순간, 할머니와의 특별한 추억을 잡아냈다. 시간과 공간의 순간 이동이다.
시조는 크로키이다. 윤곽만 그려도 윤곽속의 어느 한 사건이 활성화되어 시조 한 수가 완성된다. 시조는 종장의 마법사이다.
상해버릴 마음을 간장에 절인다
밀봉된 슬픔들이
견딜 만큼 익으면
인생은
더 짜지지 않아
살 만큼 간이 맞는다
-하미정의 「장아찌」
마음을 간장에 절인다. 슬픔들이 익으면 짜지지 않는다. 간이 맞는 것이다. 그렇다. 인생은 견딜 만큼의 슬픔이다. 이것이 삶이란다.
장아찌를 삶에 견주었다. 사물을 인생에 의탁해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다.
슬픔이 밀봉되어야 견딜 만큼 익는다. 견딜 만큼 익으면 인생은 더 짜지지 않는다. 에디슨만이 아니다. 시인도 못지않은 발명가이다. 에디슨은 불편해서 시인은 그리워서 발명을 한다. 시인은 은유의, 상징의 위대한 발명가이다. 시인을 언어의 연금술사라 하는 것도 괜한 말이 아니지 않는가.
-주간 한국문학신문,2024.10.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