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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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태자가 연수국을 향해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 엊그제의 일 같은데 벌써
해명태자가 수도 사비에 거의 다 와간다는 소식에 주희공주는 지금껏 아득하게 느껴
졌지만 지독히도 싫었던 혼사가 벌써 내일이라는 생각에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
하였다.
오늘로써 유모와 여러 대시비들에게 받았던 교육도 끝났고. 이젠 진짜 혼사라는 것이
크게 주희에게 다가왔다. 사비에 점점 가까워져 온다는 그 태자가 이 궁에 도착하면
바로 혼사는 시작될 것이다. 인형처럼 잔뜩 꾸민 자신은 더이상 연수국의 공주가 아닌
은 국의 태자비가 될 것이고. 아이가 생긴다면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은 국으로
그를 따라 가야할 것이다. 정들었던 시비들도 모두 떠나고 유모도 떠나고 어마마마
아바마마도 떠나고 ...
어느새 그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주희. 꿈이었으면. 꿈이었으면 ..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유모가 안되겠다는듯 주희에게 말을 건다.
"공주님."
유모가 자신을 부르자 역시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유모를 바라보는 주희.
그 모습에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유모는 안되겠다는듯 말을 잇는다.
"정말 왜그렇게 겁이 많으세요? 어차피 해야할 혼인이잖아요."
"그래두 이렇게 빨리는.. 이렇게 빠를줄은 몰랐단말야. 갑작스럽게.."
"혼인하는것을 무서하고 싫어하는건 공주마마밖에 없을거에요. 세상에 일국에
공주마마가 고작 혼인을 이렇게 두려워할지 누가 알았을까. 정말 실망입니다."
"......"
공주. 그래 자신은 공주였다. 자신과 해명태자가 혼인하면서 연수국에 어떤 이익이 오는지
아바마마께 듣고 또 들었다. 의무. 이 혼인은 공주로서의 의무. 실망이라는 유모의 말에
풀이죽은 주희. 그런 주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유모가 말을 이었다.
"공주가 얼굴만 예뻐선 할게 없다면서 왕자들처럼 기마도 배우시고 궁술도 배우셨잖아요.
그런 마마께서 뭐가 두렵다고 그렇게 벌벌 떠세요? 은국의 태자가 저승차사라도 됩니까?
낭군입니다. 내일 혼인하시면 부부가 되실거에요. 평생을 같이 지낼 동반자란 말입니다.
마마가 온 마음을 줄 사람이자, 마마의 새로운 식구가 되는 것 뿐이에요. 그저 사랑할
사람이 한명 더 늘어날 뿐입니다."
"그 사람하나 사랑하려고 내가 이 곳을 떠나야해? 여긴 아바마마도 계시고 유모도 있잖아.
하지만 거기엔.."
"지금에야 그렇게 말씀하시겠지만 태자의 사랑을 얻고 그분의 품에 안긴다면 달라질걸요?
또 그쪽으로 가시면 마마만의 가족이 생겨요. 마마를 꼭 닮은 공주님이 생길지도 모르고
태자마마를 닮은 왕자님이 생길지도 모르죠. 시간이 지나면 여기보단 그곳의 가족을 훨씬
더 사랑하실겁니다."
그 분의 품에 안긴다? 꼭 닮은 공주랑 왕자? 유모의 그 말을 들은 주희는 얼마전부터
유모와 대시비들에게 배웠던 그 서책들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낯뜨겁고 무서운 이야기가..
겨우 유모의 말에 용기를 얻나 했는데 혼인하면 꼭 해야하는 그 일. 초야가 떠오르자
금새 얼굴이 창백해 주희는 다시 창가에 몸을 기대고 푹푹 한숨을 쉰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한것인지 이제서야 상황파악이 된 유모는 황급히 주희를 달래보려하지만
이미 늦었다는듯 세상 다산것같은 웃음을 지어보인 그녀.
'어...어찌한다..'
당황스러워하는 유모가 시비들까지 동원하여 그녀를 달래보려하지만 영 소용이 없다.
한편,
"마마 저 앞 보이는것이 연수궁입니다."
진의 말에 해명은 듣는 시늉만을 한다. 연신 미소를 보이는 해명. 자신을 환호하는 연수국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백성들은 의외로 친절한 은국의 태자에게 연신 환호를 보내고있다.
꽃들이 하늘에서 날리고 풍악소리가 울린다. 오늘 밤 연수궁에 들어가 그곳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바로 혼례식이 시작하겠지.
"마마 인기 많은신데요?"
이제 웃는것에도 지쳐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는 해명에게 진이 건낸 말은 가혹했다
웃는얼굴로 그러나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해명.
"닥쳐. 다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경련이 생긴 입술 피곤한 얼굴 웃고는 있으나 잔뜩 화나있는 그 눈. 진은 곧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태자의 곁에만 지켰다. 연수궁은 여전히 공주를 달래기위해 왕후까지
출동하였으나 '초야'와 '아이'생각에 잔뜩 겁은 먹은 공주는 마음을 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때. 주희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마마, 해명태자가 벌써 사비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벌써? 내일이 아니라?"
"예, 마마 하여.. 대왕께서 오늘 밤 혼례준비를 서두르라 하십니다."
"뭐...뭐..뭐라하였느냐!!"
그 누구의 말과 그 누구의 우스운 행동에도 한숨만 푹푹 내쉬던 주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말도안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주희와 반대로 오히려 잘됐다는듯 주희를 보며 흡족하게
미소짓는 왕후와 유모. 이건 안된다며 반항하는 공주를 억지로 목욕소로 끌고가는 시비들은
갑작스럽게 앞당겨진 혼례식 준비에 한참이고
어느새 연수궁앞까지 도착한 해명태자는 연수국왕이 전한 전갈을 받았다. 당자 오늘밤에 혼인을
하자는 그 말. 행여 태자가 무슨 일이라도 벌일듯 전전긍긍하는 진. 아니나 다를까 왕의 전갈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린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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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이미 내일이 혼례식이었으니 혼례준비는 모두 끝나 수랏간에서 연회 음식들을 내오고
문무백관들만 자리를 지키면 당장에라도 거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수랏간과 문무백관
들만 바빠졌지만 이에 만족한듯 연수국의 왕 갈사왕은 기분이 좋은듯 연신 미소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하나밖에 없는 여식이 시집을 가는 이 날에.
어느새 혼례가 거행되는 화륜궁엔 사람들이 꽉 찼다. 왕의 어서빨리 주희를 혼인시키고
싶은 마음을 헤아리기 힘든 문무백관들은 터지는 폭죽들을 보면서 늦은 저녁에 왠 혼례냐며
자기들끼리 쉬쉬거렸고 해명또한 조랑말을 타고 화륜궁으로 오며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하고있었다.
"여기가 화륜궁이옵니다."
연수국 환관의 말에 말은 멈추는 해명태자. 그가 멈추면서 일행의 풍악소리가 멈추고
화륜궁안에서도 드디어 해명태자가 왔다며 처소에서 인형처럼 꾸며진 주희공주를 데리고
화륜궁 앞마당으로 향했다.
"마마 합근례가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입을 여시면 아니되옵니다."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주희. 그저 어서 빨리 이 혼례식이 끝나 자기를 압박하는
얼굴을 가린 이 붉은 천을 때어버리고 싶은 그녀. 아무리 옆에서 두 사람이 자신을 받혀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걷는것이 영 불편했다.
'태자도 이런걸 하는거야?'
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입을 열어서 안된다니 이래서야 물어볼수도없고
답답하고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고싶어도 한숨을 쉴 수도 없고. 아무래도 이런 혼인
하기싫다는 생각이 또다시 머릿속을 지배한다. 제발 태자도 자신같은 처지기를 바라며
어렵게 한걸음 한걸음 걷는 주희.
그런 그때 어디선가 낯선 기척이 들렸다. 문무백관이나 다른 시비, 환관들도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입을 다물고 있는 이 상황에서 들리는 낯선 기척. 주희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누군지 붉은 천 너머 걸어오는 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저런거 쓰면 불편하지 않을까? 왜 뒤집어 쓰고 있는거야?"
"쉿, 조용히하십쇼 마마."
기럭아비를 따라가면서도 피곤한 얼굴의 해명은 모든것이 짜증스럽게만 보이는지 여기저기
트집을 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멀리서 붉은 천을 뒤집어 쓰고 뒤뚱뒤뚱걸어오는 자신에게
시집오는 저 가엾은 공주가 그 대상인듯 그녀를 바라보는 태자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그렇게 걸어 어느새 문무백관과 갈사왕과 왕후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천이 바닥에 나타나고 그 위를 따라 걷는 태자. 점점 공주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
특유의 여자혐오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혹 옷깃이라도 닿을까 걱정되는지 진을 찾는 해명
그러나 진은 태자 일행이 있는곳에 여유롭게 앉아 재밌다는 듯 구경하고 있는 중이다.
작은 한숨을 내쉰 해명. 점점 공주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이젠 자신의 바로 옆에 당도했다.
사실, 별 독하지 않은 향이었지만 여자와 관련된 그 모든것을 싫어하는 그에게 있어서
주희의 존재는 고통이었다. 애써 미소지으며 시선을 피하는 해명. 주희또한 마찬가지인듯
차라리 붉은 천에 가려 해명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문무백관들이 모두 붉은 천을 거니는 해명과 주희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듯 환관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갈사왕과 왕후. 곧 붉은 천을 거닐고
몇계단 오늘 두 사람. 또 하나의 계단을 더 오를줄 알고 꽃신을 뻗은 주희 그러나 시비의
만류에 아님을 깨닫고 그 모습을 바라본 해명의 한숨만 늘어났다.
"서부종자옥지!"
집례관의 큰 목소리가 들리자 어린 시비 두 아이가 금물항아리를 가져왔다. 태자의 공주의
시비는 그 곳에서 물을 퍼 두 사람에게 내밀고 자연스럽게 손을 씻는 태자. 그 반면에
시비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손을 씻는 주희. 곧 가져온 비단으로 젖은 손을 닦고 이내
집례관이 다시 소리쳤다.
"부선재배!!"
"태자마마께 두번 절하셔야 합니다."
집례관의 소리에 이어진 시비의 설명에 허리를 굽히고 도움을 받아 겨우 태자에게 두번
절한 주희. 태자도 두번 절하냐며 묻고싶은것이 간절하나 입을 열지 말라는 그 소리에
답답해 지기만 한다. 곧이어
"서답일배!!"
이어지는 집례관의 외침. 붉은 천으로 안보여서 망정이었지 자신과는 반대로 단한번 절을
하는 해명을 봤다면 주희는 입을 열고 말았을 것이다.
"서읍부각괴좌"
또다시 이어지는 소리에 무릎을 꿇고 앉는 두 사람. 또다시 어린 시비들이 술동이를 이고오고
태자와 공주의 시비가 술을 받아 그들에게 권한다. 붉은 천 밑으로 술을 받아든 주희 난생
처음 마셔보는 술에 코끝이 찡하고. 시비의 손길을 따라 다시 일어난 그녀 곧 몸을 돌아
갈사왕과 왕후를 향한다. 이윽고 그들을 향해 절을하고 끝나기 무섭게 문무백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결혼을 경하드리옵니다."
그 소리에 맞춰 뒤를 돌아 자신들의 밑에서 조아리고 있는 그들을 본 태자. 주희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짜증만 날 뿐이고. 해명은 덜덜 떨리는 입술로 용캐 미소를
지어보인다.
"도대체 왜 이렇게 급하십니까 태자의 피곤한 얼굴을 보셔요. 공주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데 .. "
이 혼례를 내려다보던 왕후가 탓하는 목소리로 갈사왕에게 묻는다. 왕후가 자신을 탓하든
주희와 해명을 가엾게 여기든 말든 갈사왕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 둘을 지켜보고
그둘 아래 머리를 조아리는 문무관들을 바라본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길 없는 왕후는
이 급한 혼사에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안타까운듯 주희만을 바라본다.
그 모습에 하는 수 없단 듯 입을 여는 왕
"왕후. 나의 나이가 어떻게 되지요?"
"신년이 되었으니... 예순 하나지요."
"그래요. 예순 한살이면 남들보다 10년은 더 오래 살았지요. 헌데 타고난 복이 없어
자식이라곤 여식인 주희뿐이니 죽어서 선왕님들을 뵐 면목이 없소."
"..소첩의 부덕함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왕후의 말에 빙그레 웃어보인 왕은 왕후의 손을 맞잡는다. 그리곤 그 눈으로 서로 나란히
서서 붉은 천을 걷는 해명과 주희를 바라보며 말한다.
"어서 빨리 후손을 봐야 내 속이 편하겠소."
제 5화
예식이 끝나고 여느 혼례식과 다름없이 성대한 연회가 이어졌다. 밤에 혼례식이 거행될줄
몰랐던 백성들은 때아닌 축제에 밤잠을 설쳤다. 그들은 공주의 부마와 공주를 축복하며
술과 춤에 겨워. 허나, 궁의 사정은 달랐다. 혼례의 주인공이 연회에 참석해야 흥이 더
나는 법인데 갈사왕은 뭐가 급했던지 연회에 그들을 부르지 않고 바로 그들이 초야를
치루게 했다.
"공주님 아직 합근례가 남았습니다. 절대, 절대 입을 열지 마세요. 안그러면 이 혼사가
불행해져요."
유모의 단단한 말에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희. 지금은 답답한 이 붉은 천만 없어져도
살맛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태자는 도대체 언제되야 오는지 혼사는 진즉 끝났는데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까지 태자가 엄청난 여자 혐오증 환자라는것을 알리없는 주희.
그저 유모가 일러주던 그 날 밤. 즉 초야밤에 대한 이야기만을 떠올리며 겁에 질려있었다.
"네가 대신가라."
한편. 주희의 처소 화륜궁의 영화당앞에서 발을 때지 못하는 태자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진에게 대신 초야를 치루기를 권한다. 그 말에 해명처럼 파랗게 질려버린 연수국의 환관들
해명이 여자를 혐오하여 은국에서도 여자시비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 없는 그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듯 태자를 바라보았고.
진은 혹 이 말이 갈사왕의 귀에라도 들어갈까 질색을 하며 말했다.
"눈 딱 감으시고 들어가세요. 절세미인이잖습니까 태자비마마는."
"절세미인 좋아하시네. 공주를 한번이라도 보았느냐? 후. 차라리 어릴 적부터 안면을
익혔던 화란과 치루고 말지. 후 심장떨려."
"화란이 들으며 좋아하겠지만 태자비마마껜 실례이옵니다. 사내답게 당당하게 들어가세요
은국의 태자가 초야를 치루기 싫어 벌벌 떤다는것은 사람들이 알게되면 참 좋아하겠습니다."
그 말에 진을 노려보는 해명. 그러나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깊게 심호흡을 하는 해명.
그래, 까짓 여자. 두려울 것 하나도 없다. 그냥 술한잔 마시고 옆에서 하룻밤만 자면
되는거겠지. 마른침을 삼킨 해명. 이윽고 발걸음을 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진과
연수국의 환관들은 그런 해명의 뒤를 따랐다.
한편 침상에 다소곳이 앉아 여전히 붉은 천을 머리에 두르고 화려한 치장을 하고있는 주희는
곧 문을 열고 들어온 해명태자와 합근례 다음 벌어질 그 일(?)에 대해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 주희가 걱정되는지 유모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태자마마가 하시는대로 그대로 따르시고 목석처럼 가만히 계시면 금방 끝날거에요.
허나 절대 싫다, 아프다, 무섭다며 태자마마를 밀치시면 아니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시는대로 가만히 계시면 되요.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되요."
유모의 그 말이 오히려 주희를 옥죄었다면 유모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안심하라는듯 주희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유모. 당장에라도 이 방을 뛰쳐 나가 왕후에게 가서 자신좀 지켜달라고 말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알리없는 유모는 아무런 반응없는 주희가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었으려니
라고 생각하며 어서 빨리 해명태자가 들어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시비들이 급하게 합근상을 내어오고 주희에게 말했다.
"다시한번 당부드리지만 절대 비명을 지르셔도 안되고. 교성을 내어서도 아니됩니다.
합근례가 끝나면 자연히 저희들은 이 방을 나갈겁니다. 꼭 태자마마게서 이 붉은 천을
들어 주신 후에야 입을 여실수 있으니. 절대. 절대 말을 하셔도 안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주희를 보고 싱긋 미소를 짓고 침상곁에 나란히 서는 두 시비. 곧이어 드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태자가 들어왔다. 환관들과 진은 자연스래 뒤로 빠지고 문이 닫히면서
홀로된 태자. 침상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주희를 보니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침상곁에 있는 세 명의 여자. 이 방에 사내라곤 오직 해명이고 모두가 여자다.
"태자마마, 합근례를 하셔야하옵니다."
시비의 그 말에 헛기침 한번하고 침상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해명. 그의 발소리가
들리자 어느새 주희의 공포는 점점 지수가 높아져만 가고 주희에게 다가가는 해명은 태자
답게 꽤 여유로워보이는 걸음과 표정으로 주희의 곁으로 다가갔다.
공주가 걱정되는듯 유모의 표정은 좋지 않고. 태자를 보고 어느새 자기들끼리 수근거리는
시비들.
그때 바스락하는 옷소리가 났다. 합근상 건너편에 있을 해명태자를 그리며 속이 타는 주희.
해명또한 곧 천을 들어올리면 나타날 여자에대한 생각에 마른침을 삼킨다.
"붉은 천을 거두소서."
시비의 말에 주희는 쾌재를 불렀고. 해명은 식은땀을 흘렀다. 그러나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붉은 천에 손을 가져다대는 해명. 이윽고 주희를 답답하게 했던 그 천이
거두어지고. 새초롬하고 겁에 잔뜩 질린 새신부가 얼굴을 들어냈다.
화장을하고 곱게 머리를 올려 곱게 치장한 공주의 모습은 평소 무릎까지 내려오는 그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청초하게 미소짓던 그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게다가 살짝
겁에 질린 그 모습은 여느 사내라면 귀여워 깨물어주고싶다 말할정도였지만 지금 주희의
앞에 있는 사내는 여자혐오증에 단단히 걸린 해명태자다.
시비들은 예쁜 주희공주를 보며 완벽한 한쌍이라며 미소지었다. 아무런 말도 없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해명의 행동에 다른 사내들처럼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란것이라 생각한
주희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뭐..뭐야 저표정은.'
꼭 자신을 벌레보듯 바라보며 새파랗게 질린 해명태자의 얼굴을 본 주희. 18년 평생을
자신의 외모를 칭송하는 사람들 속에서 둘러살았고. 사람들이 칭소해 마지않을 미모를
갖고있던 주희에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런 말을 잇지 못하는 주희를 보며
애써 마음을 다스리는 해명.
"먹어."
겨우 그 한마디를 한채 자신의 앞에 놓은 술잔을 비워버리고 이에 당황한것은 비단 주희뿐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해명의 행동을 부끄러움이라 해석하는 용한 재주가 있는 유모와 시비
들은 어서 빨리 잔을 비우라며 주희를 재촉했고. 난생 처음 마셔보는 그 술잔을 바라보는
주희.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여느 사내들 못지 않게 잔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는 시비들이 일러주었던 대로 반찬 하나를 집어먹고는 잠시 해명의 눈치를 본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단 하나의 화과를 입에 문 해명. 그러더니 시비들을 보고 이것을
어서 치우라는듯 눈치를 주고.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대단한 능력이 있는
유모와 시비들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주희를 바라본 채 그 상을 치우고는 이내 방을
빠져나갔다.
뭔가 시비들과 유모들에게 주구장창 듣던 것과는 다른 합근례에 잠시 넋을 잃은 주희
그러다 푸른색 혼례복을 벗고있는 해명을 보자 이내 얼굴이 발그레진다.
무거운 혼례복을 벗고 시원하다는듯 약간 표정이 좋아진 해명. 높이 올린 상투도 마저
풀어버리자 이내 기분이 좋아진듯 보인다. 그러나 곧 주희를 보자 표정이 단단히 굳어버린다.
해명태자가 혼레복을 벗었으니. 이제 주희의 혼례복을 벗길 차례. 해명태자가 하라는대로
만하고 따르면 된다는 말에 다소곳이 앉아있는주희. 그러나 해명은 주희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금색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이..이게 아닌데.'
"저..저기."
당황한 주희. 해명에게 말을 붙여보지만 해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때 주희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분에 속이 상했다. 무언가 자존심이 상하고 무언가
굴욕적이며 무언가가 아쉬운 이 기분.
"저기.."
다시한번 해명을 불러본다. 허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뭔가 아닌데, 이건 아닌것 같은데..
그리 생각한 순간 해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색이 돌기 시작한 주희의 얼굴. 허나 촛불을 끈 채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그. 야속하게 그를 바라보지만 더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깜깜해진 방안에 홀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공주. 미동조차 하지 않는 해명을 노려
보지만 이미 그는 잠에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고. 주희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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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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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08 11:06
댓글 4
다음검색
첫댓글 ..여성 혐오증이라니. 이거 곤란한데요 (으쓱)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
재밌어요~ 다른소설과는다르게 독특한 매력이~
어이쿠 감사합니당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