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시조 70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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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제pen한국본부
국제pen한국본부 창립 70주년 기념 선집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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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조선전기
3부
조선중기
4부
조선후기
5부
기녀시조
6부
잔시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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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고시조 70선을 펴내며
신라의 향가도 사라졌고 고려 가요, 조선 가사도 사라졌다. 시조만이 유일하게 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시조는 향가에서 비롯, 어언 천여년간을 이어져 온 우리만의 고유의 문화 유산이다.
본『고시조 70선』은 국제펜협 한국본부에서 70주년 기념 일환으로 시리즈로 펴내는 두 번째 문학 선집이다.
고시조는 5,500여수나 된다. 그 중에 70수의 시조선은 작은 시조집이다. 우리 문화를 알릴만한 시조들로 선정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거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들이다.
구성은 원문과 주석, 작가 소개, 현대어 풀이, 시조 창작 배경 순으로 실었다.
원문은 원본 표기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주석은 ‘표제어+풀이’ 형태로 제시했다. 한자어의 경우 한글 득음을 병기했다. 현대어 풀이는 고시조의 정취를 최대한 살리도록 했다. 마지막엔 시조 창작의 시대적,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실어 시조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본서는 국내 외 교양서이다. 국내 외 많은 이들이 읽어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신 국제 펜 한국본부 김용재 이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강호제현의 질책을 바란다.
기녀시조의 예
소춘풍 「당우를 어제 본 듯…」
笑春風 ?~?
唐虞를 어제본 듯 漢唐宋오늘 본 듯
通古今達事理ᄒᆞᄂᆞᆫ 明哲士를 엇더타고
저 설 歷歷히 모르는 武夫를 어이 조츠리
해동가요(일석본) 135
악학습영 558
당우(唐虞) : 도당씨(陶唐氏), 유우씨(有虞氏). 곧 요임금과 순임금을 말함. 여기서는 태평스러운 요순시대.
한당송(漢唐宋) : 중국의 한ㆍ당ㆍ송나라로 경학이 융성하던 시대.
통고금(通古今) : 옛날과 지금에 두루 통함.
달사리(達事理)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매우 밝음.
명철사(明哲士) :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선비.
저 설 : 제가 설 곳.
역역(歷歷)히 : 뚜렷이. 똑똑히.
무부(武夫) : 무사.
조츠리 : 따르리.
소춘풍(笑春風,?~?)
생존 연대 미상. 영흥 명기. 『해동가요』에 시조 2수,『청구영언』에 1수가 전한다. 성종 때 서울로 뽑혀 올라온 선상기로 가무와 시가에 뛰어났다. 특히 풍자와 해학에 능하여 성종의 총 애를 받았다. 차천로의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 그의 시조 3수에 관한 일 화가 전하고 있다.
하루는 성종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술자리를 베풀었다. 소춘풍에게 명하여 대신들에게 술을 따르게 했다. 그리고 새노래를 지어 문사들을 칭찬하라 명했다.
“소춘풍아, 여러 대신들에게 일일이 권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라. ”
임금께는 감히 드리지 못하고 영의정 자리로 가 술잔을 올렸다. 그리고 임금의 성덕을 노래했다.
순임금 계시건만
요 임금이 바로 내 님인가 하노라
-상신에게 술 권하는 노래
이 때 무신 병조판서는 ‘상신에게 잔을 올린 뒤에는 마땅히 무신에게 잔을 올릴 것이니 이번에는 술잔이 내게로 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소춘풍은 문관인 이조판서 앞으로 가 잔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당우를 어제본 듯 한당송 오늘 본 듯
통고금 달사리하는 명철사를 어떻다고
저 설 데 역역히 모르는 무부를 어이 좇으리
요순 시대를 어제 본듯 한․당․송나라를 오늘 본듯, 고금을 두루 알고 사리에 밝은 명철한 선비가 어떻다고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무인을 어찌 좇으리.
‘당우’는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던 요순시대, ‘한․당․송’은 경학이 융성하던 시대를 말한다. ‘통고금 당사리’는 고금의 일을 두루 알고 사리에 밝은 것을, ‘명철사’는 명석하고 사리에 밝은 선비를 말한다.
누가 보아도 무관을 무시한 희롱조의 노래이다. 병조판서는 노기가 등등했다. 눈치채지 못할 리 없는 소춘풍은 이제는 병판에게 다가가 술잔을 올렸다.
앞 말은 희롱이라 내 말을 허물마오
문신 무신 일체인 줄 나도 이미 알고 있사오니
두어라 용맹, 늠름한 무부 아니 좇고 어이하리
병판은 아직도 노기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술자리가 어색하게 돌아갔다. 성종은 자못 놀랐지만 결말이 어찌 되어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소춘풍은 병조 판서를 보고 생긋 웃으며 다시 노래 한 가락을 멋들어지게 뽑아댔다.
제나라도 큰 나라요 초나라 또한 대국이라
조그만 등나라가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었도다
두어라 둘 다 좋으니 제나라, 초나라도 섬기리라
절묘한 응답이었다. 등이라는 조그마한 나라가 대국인 제나라와 초나라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니, 제나라인들 어찌 무시할 수 있으며, 초나라인들 어찌 무시할 수 있으랴. 모두 다 나의 낭군으로 알고 한결같이 섬기겠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 소춘풍의 이름이 온 나라에 알려졌다.
성종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자 소춘풍은 서울을 떠나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입산시 28세로 법명은 운심이었다. 성종의 은총을 입었다는 설도 있다.
- 신웅순 주해, 『한국고시조 70선』(오름출판사, 2024),149-152쪽.
장시조(만횡청류)의 예
「저 건너 월앙 바위…」
저자 미상
져 건너 月仰바회 우희 방즁마치 부헝이 울면
녯사ᄅᆞᆷ 니론 말이 ᄂᆞᆷ의 싀앗 되야 ᄌᆞᆺ뮙고 양믜와 百般巧邪ᄒᆞᄂᆞᆫ 져믄 妾년이 急殺마자 죽ᄂᆞᆫ다 ᄒᆞ데
妾이 對答ᄒᆞ되 안해님겨오셔 망녕된 말 마오 나ᄂᆞᆫ 듯ᄌᆞ오니 家翁을 薄待ᄒᆞ고 妾 새 옴 甚히 ᄒᆞ시ᄂᆞᆫ 늘근 안님 몬져 죽ᄂᆞᆫ다데
청구영언(진본) 564
월앙(月仰)바회 우희 : 월앙 바위 위에. 바위 이름.
밤듕마치 : 밤중쯤. ‘-마치’는 ‘-만치’. 조사 체언의 뒤에 붙어, 비교의 대상과 거의 비슷한 정도임을 나타내는 보조사.
니론 : 이른.
싀앗 : 시앗. 남편의 첩
잣믭고 양뮙다 : 얄밉고 얄비워. 아주 얄미워. ‘잣믭다’는 ‘아주 얄밉다’의 뜻. ‘양뮙다’ 는 ‘얄밉다’.
백반교사(百般巧邪) : 온갖 간사한 꾀로 환심을 사려고 애씀.
져믄 : 젊은.
안해님겨오셔 : 아내님께옵서. 첩이 본처를 부르는 말.
가옹(家翁) : 남편
첩 새옴 : (본처가) 첩을 시기함
몬져 죽ᄂᆞᆫ다데 : 먼저 죽는다 하데.
작자 미상
저 건너 월앙바위 위의 방중쯤에 부헝이 울면
옛사람 이른 말이 남의 씨앗 되야 얄밉고 얄미워 백반교사하는 젊은 첩년이 급살 맞 아 죽는다 하데
첩이 대답하되 아내님께옵서 망녕된 말씀 마오, 나는 듣자오니 가옹 박대하고 첩 시 샘 심히 하시는 늙은 아내님 먼저 죽난다 하데
저 건너 월앙 바위 위에 밤중 무렵 부엉이 울면
옛사람 이르는 말이 남의 남편의 첩이 되면 몹시 잔밉고도 얄미우며 온갖 간사한 꾀로 환심을 사려고 하는 젊은 첩년은 급살맞아 죽는다더라. 첩이 대답하기를 아내님 망녕된 말 마시오. 내 듣자하니 남편 박대하고 첩 심히 시기하시면 늙은 아내님이 먼저 죽는다더라.
처와 첩 사이의 갈등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아내가 있는 남자의 첩이 되면 첩은 급살 맞아 죽는다고 말하니 남편을 박대하고 첩에게 시샘하면 아내가 먼저 죽는다고 첩이 맞받아치고 있다. 장군하니 멍군한다.
당돌하기 짝이 없는 첩의 대꾸에 본처가 한대 얻어 맞은 형국이다. 첩이 본처를 꾸짖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첩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는 듯 가부장제 하에서는 당시 처첩제도는 이렇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런 말도 할 수 있다니 상전벽해요 격세지감이다.
- 신웅순 주해, 『한국고시조 70선』(오름출판사, 2024),204-205쪽.